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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방랑객 Dec 13. 2019

보통열차와 특급열차 사이를 오가는 스즈란호

무로란 본선(室蘭本線) 두 번째 이야기

  특급열차지만 보통열차로 운행하는 구간이 있는 열차가 있다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같은 요금이면 좌석도 편하고 차량도 좀 더 최신형인 열차를 선호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반대로 느낄 것이다.

  그런데 무로란 본선에는 특급열차지만 보통열차처럼 운행하는 열차가 있다. 바로 무로란 본선 구간을 주로 운행하고 있는 스즈란호다. 이 열차를 보기 앞서 이 열차의 운행과 관련해서 몇 가지 흥미로운 부분을 살펴볼까 한다. 


스즈란호 표기는 무로란역이 아니라 히가시무로란역까지다.


  스즈란호는 삿포로역을 출발해서 무로란 본선의 도마코마이역에 합류한 후 무로란역 또는 히가시무로란역까지 운행하는 열차다. 하지만 특급열차 운행구간 지도에는 무로란역이 따로 표기되어 있지 않다. 다른 노선도 스즈란호처럼 운행하는 구간이 전체가 다 나오지 않는 노선이 있나 살펴봤지만, 그런 노선은 없었다. 그러면 스즈란호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의 특징이 있는 것일까?


특급열차임을 알 수 있는 스즈란호.


  먼저 스즈란호를 살펴보면 홋카이도의 특급열차와 다른 점을 찾을 수 있다. 홋카이도의 특급열차들을 살펴보면 비슷한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다른 열차에 비해 운전석이 눈에 띌 정도로 높다 보니 열차 전후두부가 상당히 슬림해 보인다.

      - 예외: 오호츠크호(삿포로~아바시리)

  2. 삿포로 이외 지역은 전기 설비가 된 구간이 별로 없다 보니 디젤 열차가 주를 이룬다.

      - 예외: 라일락/카무이호(삿포로~아사히카와)

  3. 열차 이름 하나 당 시종착역이 정해져 있다.

  4. 주로 삿포로역을 시종착역으로 한다.

      - 예외: 다이세츠/샤로베츠호(아사히카와 시종착)

  5. 그린샤를 비롯해서 지정석이 전체 좌석의 절반 가까이 운영하고 있다.

      - 예외: 카무이호


  그런데 스즈란호는 4번 특징에만 해당이 될 뿐, 나머지 4가지는 조금씩 다름을 알 수 있다. 스즈란호는 보통열차에 가까운 전후두부에, 소리 없이 조용한 전동 열차이며, 스즈란호라는 이름으로 행선지가 히가시무로란역이 되었다가 무로란역이 되었다가 한다. 그리고 그린샤가 없는데, 지정석도 4호차의 U시트뿐이다.


스즈란호는 특급열차지만 지정석은 4호차 한 량에 불과할 정도로 쾌속열차에 가깝다.


  U시트의 경우 신치토세 공항에서 삿포로, 오타루를 오가는 쾌속열차인 에어포트호의 지정석으로, 역시 4호차에 해당하는 객차다. 에어포트호는 쾌속열차기 때문에 특급권 없이도 열차를 이용할 수 있어서 자유석이 많은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즈란호는 자유석도 특급권이 있어야 탑승이 가능한 엄연한 특급열차지만 열차 구성이 쾌속열차인 에어포트와 같다. 그리고 특급열차 중 좌석이 가장 편하고 안락한 그린샤 좌석이 없다는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무로란 지선구간을 제외하면 스즈란호가 다니는 구간이 삿포로에서 하코다테를 오가는 슈퍼 호쿠토호와 중첩돼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똑같은 이유에서인지 삿포로~아사히카와 간 운행하는 카무이호도 스즈란호와 같은 편성으로 운행하고 있다.)

  그러니까 스즈란호는 특급과 쾌속 사이에 자리한 별도의 등급을 가진 열차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한때 홋카이도에는 준특급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지금은 찾아볼 수가 없는데, 스즈란호가 바로 준특급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같은 특급열차지만 슈퍼 호쿠토호에 비해 중간 정차역이 더 많다. 


무로란 지선구간은 보통열차로 바뀌는 스즈란호.


  한편 무로란 지선구간에 진입하면 다음과 같은 안내문구를 볼 수 있다. 무로란역에서 히가시무로란역 간 무로란 지선구간은 승차권만 있으면 특급 스즈란호를 승차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고, 그것을 반영하는 듯 지선구간은 '특급 스즈란호'가 아니라 그냥 '스즈란호'로 표기하고 있다. 같은 스즈란호라도 앞에 특급이 붙냐 안 붙냐에 따라서 열차 등급이 달라지는 것 같았다.


무로란 지선구간에 스즈란호가 다니는 시간에는 보통열차가 따로 운행하지 않는다.


  특급 스즈란호가 그냥 스즈란호로 운행해주기 때문에 동일한 시간에 굳이 보통열차를 추가로 투입할 필요가 없어졌다. 같은 요금으로 최소한 히가시무로란역까지는 이동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운영회사 입장에서는 손해가 날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운영회사도 이렇게 부분적인 보통열차화는 충분히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는 세키쇼선의 특례 구간(신유바리~신토쿠 간 특급열차 이용 시 승차권으로 탑승 가능)과 마찬가지로 특급열차를 투입하는 시점에 추가로 보통열차를 또 투입할 필요가 없어서 열차 운행의 중복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비어있는 자유석 좌석을 조금이나마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좌석 점유율도 높일 수 있다.


전동 열차인 스즈란호를 위해 설치된 전기 설비.


  한편 스즈란호가 있기 때문에 무로란 지선구간은 보통열차만 다니는 이와미자와~도마코마이 구간과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전기 설비가 있는 것인데, 전동 열차인 스즈란호가 운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기 설비를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설치되어 있는 전기 설비를 이용하기 위해서 보통열차도 전동 열차를 도입했으면 어땠을까?


스즈란호를 수용하기 위해 길어진 승강장.


  왜냐하면 보통열차도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타서, 2량 편성을 한다고 한들 텅텅 비어 가는 장면은 보기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다. 5량 가까이 되는 스즈란호가 보통열차처럼 다니면서 무로란 지선의 승강장들은 상당히 길어졌다. 그러다 보니 1량 편성의 보통열차는 한없이 작아 보인다.

  스즈란호는 특급열차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운영하는 구간에 따라 특급이라는 이름을 과감하게 버릴 때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 스즈란호가 있어서 무로란 지선도 다른 보통열차만 다니는 구간과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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