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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방랑객 Dec 15. 2019

역 번호도 부여받지 못한 비전철 단선 구간

무로란 본선(室蘭本線) 세 번째 이야기

  무로란 본선은 하나의 노선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역 번호에서도 잘 나타난다. 역의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역에 역 번호가 부여되는 시코쿠와 달리 홋카이도는 특급열차가 다니는 구간과 삿포로 근교 유동 인구가 많은 노선에 한해서 역 번호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승객이 거의 없는 시골 철도는 역이지만 역 번호도 부여받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다. 예전 중국에 산아제한 정책 때 아이가 태어났지만 정식으로 자기 자식으로 등록을 못한 것과 같다고 해야 할까? 홋카이도는 역 번호를 부여하는 것에 제한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열차 빈도가 뜸한 비전철 단선 구간의 시작.


  무로란 본선도 역 번호를 부여받지 못한 구간이 있다. 해당 구간은 이와미자와역에서 시작해서 도마코마이역으로 이어지는 내륙 구간이다. 이 구간은 무로란 본선을 운행하는 스즈란호도 외면한 구간으로, 한 시간에 한 대의 열차를 구경하기도 힘든 한적한 구간이다.


같은 무로란 본선이 맞는지 모를 정도로 다른 분위기와 열차.


  그 구간을 달리는 열차. 2량 편성으로 보이지만, 뒷 칸은 승객 그 누구도 탑승하지 못하게 막아놓아서 실질적으로 1량 편성의 열차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앞 칸도 좌석이 많이 남을 정도로 승객이 상당히 적다. 승객이 자꾸 줄어드니 열차 빈도도 점점 낮아지고, 원하는 시간대에 열차가 없다 보니 다른 교통수단으로 대체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었다.


유독 가늘게 표기된 노선에는 역번호도 부여받지 못했다.


  승객 수에 따라 굵기가 달라지는 것일까? 유독 무로란 본선의 내륙 구간만 아주 가는 선으로 이어져 있다. 게다가 이 구간만 역 번호도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노선을 둘러싼 다른 노선은 히타카본선을 제외하면 모두 역 번호가 있다는 점에서 너무 소외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열차 내 노선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굵게라도 표시된 히타카본선과도 비교될 정도로 '왜 저 구간만 유독 얇고 작게 표기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무로란 본선 구간을 운행하는 열차임에도 운행 구간 노선조차 볼 수 없었던 열차 내 노선도.


  그런데 이 노선을 운행하는 2량 편성 열차에는 다른 노선의 역만 있을 뿐 정작 자신이 다니고 있는 무로란 본선의 역은 표기조차 없었다. 그나마 노선도라도 존재한 위쪽 사진이 나아보이기까지 했다. 도대체 이 구간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렇게까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는 것일까?


무로란본선 구간의 역은 대부분 뾰족한 지붕이 있는 단층 건물이다.


  무로란 본선 내륙 구간은 역들이 당장이라도 없어져도 모를 정도로 작은 규모다. 승객도 한 역에 한 명도 내리지 않는 역도 꽤 된다. 어쩌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폐선을 염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눈이 수북이 쌓이는 홋카이도 내륙의 특징을 잘 반영한 역사 건물만이 열차를 반갑게 맞이해줄 뿐이다.

  그래도 쌓인 눈을 청소하고 있거나 해놓은 모습을 보면서 역 관리만큼은 정말 잘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단 한 명의 승객이라도 이용하는 역이라면, 최소한 '이 역이 누군가에 의해 관리되는 역이구나.'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은 역명판.


  그래도 한계는 있는 법. 녹슬 틈도 없이 자주 바뀌는 큰 역의 역명판과 달리, 무로란 본선 내륙 구간의 역은 이렇게 녹이 역명판 전체를 뒤덮어도 교체를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녹슨 상태에서 또 눈이 쌓이고, 눈이 녹으면서 생긴 물이 녹슨 곳을 더 녹슬게 만들고, 그러면서 역명판은 부식이 가속화되어 보기에도 좋지 못할 정도로 안 좋게 바뀐 것이다.

  과연 이 역명판이 유동인구가 많은 도심에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바뀌도록 놔두었을까? 그 정도로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이 안 다니다 보니 자연환경은 점점 더 좋아졌지만, 좋은 환경 속에서 달리고 있는 열차는 노선 존폐의 불안감 속에 경치 구경도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아 보였다.


중간에 운전사가 바뀌는 오이와케역.


  무로란 본선은 세키쇼선과 만나는 중간 역인 오이와케역에서 한 번 변화의 느낌을 준다. 먼저 이와미자와역에서 열차를 잘 운행해 온 운전사가 이곳에서 바뀌었다. 그리고 열차는 마치 다른 노선으로 가듯, 오이와케역에서 5분이 지나도록 출발하지 않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주오는 열차를 기다리기 위해서 이렇게 정차하고 있지는 않을까? 했지만.


갑자기 복선 구간이 시작된 무로란 본선.


  그런데 단선으로 잘 이어지던 오이와케역 이전 구간과 달리 도마코마이역으로 향하는 다음 구간은 갑자기 복선 철도로 이어져 있었다. 그러니까 과거에는 많은 열차가 이곳을 운행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복선 구간을 만들었지만 전기 설비를 갖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더 아리송했던 구간.


무로란 본선은 치토세선과 합류하면서 전기 설비 구간이 시작된다.


  그 구간도 잠시, 도마코마이역에 다다른 무로란 본선은 홋카이도에서 가장 많은 유동인구를 자랑하는 치토세선과 합류한다. 그런데 노선 이름은 그대로 무로란 본선이다.

  마치 무로란 본선이 치토세선에 합류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지금까지 왔던 무로란 본선의 풍경보다 치토세선의 풍경이 더 가깝게 느껴지지만 말이다. 게다가 역 번호도 치토세선의 역 번호가 이어지다 보니 치토세선이 무로란 본선에 합류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가 더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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