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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방랑객 Dec 17. 2019

해안선과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구간

무로란 본선(室蘭本線) 네 번째 이야기

  같은 하나의 이름이지만 너무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무로란 본선. 내륙의 한산한 시골 철도로 시작해서, 도심의 번화한 철도의 모습을 거쳐 이제는 한산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번화하지도 않은 해안가의 철도로 이어진다. 물론 그 사이에는 조금 특별한 지선구간도 따로 분리해서 보냈다.

  마치 사람의 사회생활을 보여주듯, 주어진 환경에 맞춰 적응해 나가는 무로란 본선은 처음 시작할 때 마주했던 하코다테 본선과 다시 마주치면서 그 임무를 다하게 된다. 시작과 끝이 같은 이름의 노선이라는 것도 참 특이하다. 마치 빈 손으로 시작해서 빈 손으로 끝이 나는 사람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처럼. 무로란 본선에도 사람의 희로애락이 모두 들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로란본선의 마지막 전기 설비 구간, 히가시무로란역.


  무로란 지선의 분기가 있는 히가시무로란역. 이 역은 무로란 본선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또는 처음) 전기 설비 구간이다. 이 구간을 넘어 무로란 본선이 끝나는 오샤만베역 방면으로는 더 이상 전기 설비를 볼 수 없다. 그리고 전부는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단선 철도 구간도 등장해서, 열차 간 교행 장면도 마주할 수 있다.


무로란본선 비전철 구간을 달리는 슈퍼 호쿠토호.


  그러다 보니 이 구간을 운행하는 열차는 자신의 존재를 한껏 드러내는 디젤 열차들 뿐. 그 가운데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열차는 삿포로와 하코다테를 이어주는 슈퍼 호쿠토호다. 이 열차는 하코다테 본선이 주 무대지만, 삿포로로 가기 위해서 하코다테 본선으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편에 있는 무로란 본선과 치토세선을 경유하는 특이한 노선이다.

  하코다테에서 삿포로까지 하코다테 본선이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구간별로 열차 빈도가 상당히 차이 나는 이유는 슈퍼 호쿠토호의 운행과 밀접한 영향이 있다. 앞으로 개통 예정인 홋카이도 신칸센은 하코다테 본선과 끝까지 나란히 이어져서 무로란 본선은 열차 빈도가 급격히 낮아질 운명에 처해있다.


슈퍼 호쿠토호가 정차하는 무로란본선 비전철 구간의 중간 정차역들.


  그나마 빈도가 조금이나마 높은 슈퍼 호쿠토는 히가시무로란역에서 오샤만베역 사이에 딱 두 곳의 역에만 정차를 한다. 대상역은 다테몬베츠역과 도야역이다. 이 두 역을 제외하면 이 구간의 역들은 보통열차가 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전철 구간은 무로란 지선으로 이어지고, 무로란 본선은 비전철 구간이 이어진다.


  열차 빈도에 영향을 미치는 히가시무로란역. 이 역에서 전기 설비가 된 구간으로 가면 무로란역으로 향하는 무로란 지선 구간이고, 비전철화 구간으로 이어지면 하코다테역으로 향하는 무로란 본선의 마지막 구간이다. 무로란 지선은 특급 스즈란호가 다니지만, 특급이라는 이름을 떼고 보통열차로 움직인다. 하지만 비전철화 구간으로 달리는 슈퍼 호쿠토호는 여전히 특급을 붙이고 운행한다.


무로란 본선의 비전철 구간 시작은 해안선과 평행하게 이어진다.


  그렇게 지선구간을 보내고, 비전철 구간의 시작을 맞이한 무로란 본선이 맞이하는 첫 풍경은 정동진역을 뺨치는 해안선이다. 때로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처럼 아주 가까이 붙어서 드넓은 바다 위의 배가 된 듯 움직이기까지 한다. 마치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을락 말락 하면서 진행하는 모습이 마치 밀당하는 남녀 간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한쪽은 해안선을, 다른 한쪽은 내륙을 볼 수 있는 구간.


  해안선도 직선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곡선으로 이어지다 보니, 무로란 본선의 해안선이 아주 잘 보이는 곳도 상당히 많다. 여름에는 해수욕을 하고 있는 많은 피서객들이 저 모래사장을 가득 채우지 않을까? 그러나 홋카이도의 여름은 겨울처럼 긴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대신 해안선의 반대편인 내륙으로 눈을 돌리면 언제 녹을지 알 수 없는 설산이 펼쳐진 풍경을 담을 수 있다. 4월 중순을 지나도 여전히 덮고 있는 하얀 눈이 홋카이도의 날씨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이르면 11월부터 눈이 쌓이기 시작하는 홋카이도라서 겨울이 얼마나 긴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코다테 본선과의 합류로 무로란 본선도 끝이 난다.


  그렇게 해안선과 이어지는 무로란 본선은 이와미자와역에서 이별을 고했던 하코다테 본선을 다시 만나게 된다. 물론 전기 설비가 갖춰진 이와미자와역에서의 하코다테 본선과 달리 이곳의 하코다테 본선은 비전철 구간으로 바뀌어있다.

  오히려 무로란 본선으로 이어질 것만 같은 이 구간은 또 하코다테 본선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기에 이른다. 특이한 것은 같은 하코다테 본선이지만, 역 번호는 무로란 본선의 역 번호를 그대로 이어나간다는 것이다. 치토세선부터 릴레이로 이어진 H의 역 번호. 그 역 번호는 이제 진짜 주인인 하코다테 본선에게 물려준다.


그 마지막 역은 오샤만베역.


  H47이라는 역 번호가 적혀있는 오샤만베역. 이 역에서 이어지는 하코다테 본선은 S라는 역 번호로 번호가 이어진다. 물론 그곳으로는 슈퍼 호쿠토호가 다니지 않는다.

  진정한 다양성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무로란 본선. 과연 홋카이도 신칸센이 개통한 이후에도 지금처럼 많은 열차를 수용할 수 있을까? 이 또한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일할 수 있는 젊은 층이 줄어드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무로란 본선은 이런 험난한 위기를 어떻게 해쳐나갈까? 그것을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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