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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방랑객 Dec 25. 2019

시코쿠의 다른 노선과 달리 굴곡이 없는 노선

도쿠시마선(徳島線) 첫 번째 이야기

  시코쿠 섬은 일본을 구성하는 큰 섬 4개 가운데 가장 작지만 작은만큼 평지도 그리 많이 찾을 수 없다. 이곳을 운행하는 철도는 주로 해안가를 끼고 가거나 내륙의 험준한 지형을 통과하기 때문에 직선 구간을 보는 것도 쉽지는 않다. 더불어 평지를 달리는 것도 그렇게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도쿠시마선은 마치 홋카이도의 철도를 보는 것처럼 평평한 평지를 굴곡 없이 직선으로 펼쳐져 있다. 평지를 운행하지만 직선을 보기 힘든 해안을 끼고 달리는 철도와 터널로 직선 구간은 볼 수 있지만 눈에 보일 정도로 가파른 경사가 함께하는 내륙으로 달리는 철도로 대변되는 시코쿠의 철도에서 도쿠시마선은 눈에 띄는 노선이기도 하다.


도쿠시마선의 위치.


  도쿠시마선은 도쿠시마현 북부를 횡단하는 노선으로, 노선 자체는 그렇게 길지가 않다. 이 노선도 요도선과 마찬가지로 요시노 강 블루 라인이라는 애칭이 있다. 시코쿠 철도는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는 노선이 아니면 별도의 애칭을 붙이는 것 같았다. 그것은 철도와 나란히 이어지는 강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특징처럼 보였다.


도쿠시마선의 시작인 도쿠시마역.

 

  도쿠시마선의 시작은 도쿠시마역이다. 도쿠시마역은 시코쿠에서 유일하게 3개 노선이 시작하는 역인데, 역 번호는 2개만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중 하나가 고토쿠선이고 다른 하나는 무기선이다. 그러니까 도쿠시마선의 역 번호는 도쿠시마역에서 볼 수 없는 역 번호였던 것이다. 그다음 역인 사코역을 보면 T01번과 B01번이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B로 시작하는 역 번호가 도쿠시마선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도쿠시마선도 처음부터 별도의 노선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토쿠선에 합류해서 운행하는 노선이었던 것이다. 특이하게 반대편 종착역인 아와이케다역도 도쿠시마선 전용 노선이 아니라 도산선에 합류한 다음 나오는 역이라는 점에서 요도선과 유사점을 많이 보인다.


도쿠시마역 다음 역인 사코역을 지나면 고토쿠선과 분기가 일어난다.


  도쿠시마선은 사코역을 지나야 비로소 단독 노선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사코역까지는 역 번호가 2개인 것을 알 수 있다. 시코쿠 철도의 역 번호는 노선별로 각각 부여하고 있어서 사코역과 같이 중간 역임에도 2개의 역 번호를 가진 역이 있다. 그것은 환승 편의를 위해 단독 구간이 끝나더라도 인접한 거점역까지 노선이 연장된 것처럼 간주하기 때문이다.


도쿠시마선의 역 번호만 볼 수 있는 첫 번째 역인 구라모토역.


  도쿠시마선의 역 번호만 있는 역은 사코역의 다음 역인 구라모토역으로, 이전 역과 달리 역 번호가 하나만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구라모토역을 지나면 시코쿠의 다른 지역에서 보기 어려운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마을을 그대로 관통하는 도쿠시마선.


  시코쿠의 철도는 직선과 평지 중 하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지만, 도쿠시마선은 그 둘을 모두 잡은 노선이다. 특히 주변에 마을이 있어도 아랑곳 않고 평평한 곳을 직선으로 쫙 펼쳐진 모습은 갑갑한 속까지 뻥 뚫어주는 것 같았다.

  이렇게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거리에 걸쳐 직선이 이어진다는 것도 놀랍지만, 눈에 띌 정도의 경사도 보기 어렵다는 것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마치 철도가 먼저 개통한 후 주변에 마을이 생긴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약간의 곡선이 있지만 역이 있는 곳은 한결같이 직선으로 이어지는 도쿠시마선.


  물론 이 노선이라고 해서 한없이 직선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비행기가 행선지를 갈 때 방향을 약간씩 돌리듯 도쿠시마선도 간간이 곡선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곡선 구간은 조금 구경하려고 하면 어느새 다시 직선이 펼쳐진다. 특히 역이 있는 곳은 더욱 그랬다.


주변 풍경은 달라져도 직선으로 펼쳐진 선로는 변함이 없다.


  도쿠시마선은 선로만 보면 마치 제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바뀌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주변 풍경은 끊임없이 달라지고는 있지만 그마저도 크게 변화가 있다는 느낌은 받기가 어렵다.

  이 노선을 보면 굴곡 없이 평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사람의 인생도 때론 오르막이 있고 때론 내리막이 있으며, 돌아서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매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람들을 마주 보고 있다고 한들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도쿠시마선은 너무도 평평하다 보니 앞이 뻔히 보인다. 그래서일까? 노선은 짧지만 생각보다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도 분명 이러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너무 평탄한 삶만 추구하는 것도 때론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것을 도쿠시마선이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실질적인 도쿠시마선의 마지막 역인 츠쿠다역.


  도쿠시마선은 도쿠시마역 방면과 마찬가지로 열차들의 종착역인 아와이케다역에 도착하기 전 도산선의 츠쿠다역과 합류한다. 그래서 이 역에도 역 번호가 2개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이 역도 규모가 작은 역이다 보니 도쿠시마역의 다음 역인 사코역과 마찬가지로 특급열차는 외면하는 역이다.


도산선에 합류한 후 풍경이 달라진 모습.


  도산선에 합류를 해서일까? 이렇게 많은 주택들이 운집한 풍경은 도쿠시마선을 거쳐오는 동안 내내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그만큼 도쿠시마선 주변으로 큰 마을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큰 마을이 없었기에 철도는 자신이 가장 짧은 거리를 운행할 수 있도록 직선으로 올곧게 이어졌는지도 모르겠다.


도쿠시마선 운행열차의 실질적인 종착역인 아와이케다역.


  도쿠시마선을 운행하는 열차의 마지막 역은 아와이케다역으로, 이 역까지는 도쿠시마선의 역 번호인 B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인접역을 보면 왼쪽의 츠쿠다역은 B가 붙어있는 역 번호를 볼 수 있지만, 오른쪽의 미나와역에는 B가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도쿠시마선은 아와이케다역이 실질적으로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다. 

  도쿠시마선은 역 개수가 26개(시코쿠 철도의 시점 역은 역 번호가 0번부터 시작)에 불과할 정도로 적은 노선이지만, 시코쿠 다른 지역의 철도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풍경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확실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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