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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방랑객 Dec 27. 2019

단선철도지만 외롭지 않은 철도

도쿠시마선(徳島線) 두 번째 이야기

  도쿠시마선은 단선철도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전철 구간도 없어서 전형적인 시골 철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도쿠시마 북쪽을 횡단하는 노선이어서 그런지, 열차 빈도는 제법 되어 보였다. 그래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장면 중 하나인 교행 장면. 도쿠시마선은 노선이 짧지만 생각보다 교행 구간이 제법 있었다.

  그리고 교행 구간에는 어김없이 열차가 대기하고 있거나,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특급열차에 탑승할 경우, 교행 시 맞은편에 보통열차가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짧은 구간에 보통열차와 특급열차가 모두 섞여 운행하는 도쿠시마선. 그래서 단선이지만 선로는 양방향의 열차가 수시로 드나들어주어서 심심할 틈도 없을 것 같았다.


교행 가능한 역에는 어김없이 열차가 대기하고 있다.


  도쿠시마선은 열차가 제법 다니고 있다. 교행 구간에 마주치는 열차들은 도쿠시마선의 통행량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이곳은 보통열차나 특급열차 가리지 않고 2량 편성이 기본이었다. 노선이 아무리 짧다고 하더라도 보통열차가 도쿠시마선을 완주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도쿠시마선을 완주하려면 특급열차를 타야 보다 쉽게 완주를 이룰 수 있다. 장거리는 특급열차를, 단거리는 보통열차를 탑승하도록 유도한 것처럼 운행구간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어쩌면 특급열차까지 섞여 있었기 때문에 도쿠시마선의 교행이 잦아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원활한 통행만 가능하면 교행 방향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특급열차는 보통열차를 세워놓은 곳을 피해 비어있는 선로로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은행을 가도, 마트를 가도 먼저 온 순서대로 업무를 보는 것이 상식이지만 철도에서 교행은 이것을 역행하는 것이 더 많다. 선로 위를 달리는 특성상 먼저 들어온 열차가 뒤늦게 들어온 열차보다 빨리 갈 수 있는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열차가 지나간 후 선로 변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먼저 들어온 열차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도 뒤에 들어오는 열차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한없이 머물러 있어야 한다. 하지만 먼저 들어온 열차가 달려온 선로는 그 시간 동안 늦게 들어온 열차가 통행할 수 있게 선로를 바꿔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늦게 들어온 열차가 먼저 갈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철도는 사회의 통념을 벗어날 때도 종종 있다.


선로변에 활짝 핀 유채꽃.


  따뜻한 시코쿠에 속해있는 도쿠시마선은 봄에 가면 선로 주변에 활짝 핀 꽃을 감상할 수 있다. 칙칙한 철길을 화려하게 빛내주는 꽃과 나란히 이어진 선로를 보면 열차가 다니지 않아도 마치 다니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만큼 생기가 도는 모습이 차창 안까지 전달되는 기분이다.


선로까지 넘어올 것같이 활짝 만개한 벚꽃.


  아래쪽에 유채꽃이 만개했다면 위쪽은 벚꽃으로 응답하고 있다. 유채꽃과 벚꽃은 높이와 색깔이 절묘하게 나뉘어 있어서 어느 쪽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다. 물론 둘이 같이 피어있는 곳도 있지만, 주로 따로따로 피어있기 때문에 푸르른 녹지와 함께 또 다른 삼색 조합을 이루고 있다.

  그곳에 열차가 지나가면서 만들어내는 풍경 또한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다. 그래서인지 열차가 지나갈 때 주변에 서서 열차의 사진을 담는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주변의 풍경이 열차에까지 관심을 갖게 만들어주니, 밋밋하기만 한 철도를 달려서 지겨울 법 했던 도쿠시마선 열차도 힘을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요시노 강과 하나가 되어 달리는 도쿠시마선.


  녹색의 푸르름과 꽃들의 화려한 색이 선로 주변을 감쌌다면 이번에는 요시노 강이 도쿠시마선 전체를 휘감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같은 차창이지만 가까이 보는 것과 멀리 보는 것에 차이가 확연히 달라서 마치 다른 공간에 있는 착각을 할 수 있는 것도 도쿠시마선의 매력이다.

  건조한 날씨 속에 강바닥이 드러나서 좀 더 풍부한 파란빛을 볼 수 없었던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얕은 물로 인해 약간의 바람에도 물결을 일으키는 강의 모습을 보면 어느새 열차는 한참을 이동해 있다.


이 풍경은 마치 복선 전철화 전 경춘선을 보는 것 같다.


  요시노 강을 끼고 가는 이 구간은 적어도 우리에겐 외국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철도도 이런 풍경을 보여준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노선이 청량리와 춘천을 오가는 경춘선 열차에서다. 비록 지금은 복선 전철화로 인해 예전 모습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대학교 엠티를 추억하는 데 있어서 경춘선 무궁화호는 우리의 기억 속에 머물러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무분별하게 복선 전철화를 하지도 않을뿐더러, 기존 철도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분명 운송수단이라는 입장에서 그리 좋은 것은 아니다. 유지보수비용도 훨씬 많이 들고, 열차의 속도를 빠르게 가져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철도가 가장 간과하고 있는 것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그 가치는 돈으로 책정할 수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간과하는 것은 바로 세대 간 공감대다. 이전의 모습이 사라진 우리나라 철도는 더 이상 세대 간 공감할 수 있을 법한 것이 없다. 서로가 바라보는 철도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그 모습을 설명해도 이해할 수가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도쿠시마선처럼 기존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철도라면 서로가 시간은 다르지만 같은 공간에서 같은 풍경을 봤기 때문에 충분히 교감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며, 다음 세대로 또 자연스럽게 이어져 나갈 가능성이 높다.


녹색 배경이어서 더 눈에 띄는 빨간 다리.


  녹음이 가득한 이곳에 놓여있는 빨간 다리는 지금 이 공간에 있는 사람들도 말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고, 훗날 언젠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다. 사람이 서로 간에 호감을 가질 수 있는 것도 동질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역할을 철도가 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노선은 밋밋하게 보일지 모르나, 멈춰있는 시간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고 있음은 분명했다. 그 추억팔이를 위해서 시코쿠를 찾을 때마다 도쿠시마선을 찾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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