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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방랑객 Jan 11. 2020

철도 노선까지 옮겨버린 아마루베 철교

산인선(山陰線) 네 번째 이야기

  우리나라는 철도 개량을 명목으로 기존 역의 위치를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오직 직선에 가까운 개량한 선로만 추구하다 보니, 역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사항인 접근성을 완전히 배제해버린 것이다. 쉽게 말해서 원래 있었던 역의 위치에 최대한 가까이 새로운 역을 만들어야 하지만, 우리나라의 새로운 역은 과장을 보태서 논 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건물만 있는 이상한 역들이 많다.

  그런 우리나라 철도에 완전히 반대되는 노선을 산인선 구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똑같이 철도 개량이 목적이었지만, 역의 위치는 변함이 없는데 오히려 노선이 직선에서 S코스를 도는 곡선으로 바뀐 아마루베 철교 구간이다. 개량이라 하면 우리나라처럼 곡선으로 되어 있는 구간을 직선으로 펴고, 높낮이가 심한 구간을 터널로 그 차이를 낮추고, 궤도를 새로 정비해서 특유의 철도 마찰음을 줄이는 것으로만 알았지만 일본에서 철도 개량은 천편일률적인 우리나라의 개량과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뭐가 그리 지우고 싶은지 기존의 철도를 새로운 구간에 이설 하면 기존 구간을 없애기 바쁘다. 아니면 그곳을 유지한답시고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식상한 레일 바이크로 꾸미는데 그친다. 그냥 과거를 추억하기 위해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것은 왜 볼 수 없는 것일까? 그렇게 과거와 현재를 단절시켜야만 하는 것일까?


기존 철도 구간도 보존하면서 철도 개량을 진행한 아마루베 철교


  일본 철도 가운데 시골 철도가 항상 부럽게 느껴지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단절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루베 철교도 기존 철골로 이루어진 교각으로 열차는 다니지 않지만, 흔적이라도 살려놓아서 이곳을 다시 찾은 사람들의 기억까지 앗아가지는 않았다.


기존 철도의 흔적을 그대로 살려놓은 모습


  비록 안전상의 문제로 인해 아마루베 철교는 콘크리트 교각으로 대체가 되었지만, 아마루베 철교의 일부 재원들은 여전히 자기 자리에 있으면서 다른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제 교각의 일부로 열차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지탱해주는 역할을 했던 철교 교각들은 하나 둘 해체가 되어 사람들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매개체로서 역할을 대체하고 있다.

  원래 있던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는 철교 흔적들은 전혀 이질적인 느낌도 들지 않고 지금의 교각과 어우러져 또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비록 모습은 많이 바뀌고 세월의 흔적도 많이 지워졌지만, 그것을 기억할 만한 것들이 남아있기에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루베 철교의 흔적들


  더 나아가 아마루베 철교의 예전 모습을 떠올릴 수 있게 기념관까지 만들어 놓아서 마치 지금도 철교가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 사진은 세대 간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주며,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길까지 열어주기 때문에 일본에서 철도는 단순히 운송 수단이 아니었던 것이다.


역의 위치는 그대로지만 승강장의 위치가 바뀐 아마루베역


  기존 것을 유지하면서 그 주변에 새로운 것을 다시 만드는 것. 그것은 상당한 난공사가 요구되는 작업이다. 쉽게 생각하면 지하철 공사를 할 때 통행하는 차량들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굴을 파야하기 때문에 그 공사가 어려운 것과 같은 선상에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이런 공사가 지속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은 바로 원래 자리하고 있는 역을 최대한 그 자리에 두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역이 만들어진 곳을 중심으로 마을이 커졌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으며, 길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새롭게 철도를 개량한답시고 역이 전혀 다른 곳에 위치하게 되면? 그 역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또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마을은 역처럼 그렇게 쉽게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로도 역이 옮겨진다고 해서 즉시 옮겨진 역을 중심으로 다시 만들어질 수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새로운 역 주변은 텅 빈 깡통에서 시작해서 오랜 시간이 걸린 후에야 역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꽤 높은 곳에 자리한 아마루베 철교에서 바라본 아마루베 마을


  아마루베 철교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면 이 마을 주민들도 하루아침에 교통편을 잃는 것과 같은 꼴이었을 것이다. 물론 아마루베역이 승객들로 항상 북적이는 도시의 역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지만, 다른 대체 교통수단이 없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아마루베역이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 이미지와 완전히 달라진 신설 아마루베 철교


  아마루베 철교는 기존에 있던 철교의 흔적을 보호하기 위해서 선로가 조금 달라진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철교 아래 아마루베 마을에서 보아도 바로 구분이 될 정도로 휘어진 구간을 볼 수 있는데, 안 그래도 위험할 수 있는 철교에서 직선이 아닌 곡선, 그것도 S자로 꺾인 곡선이 된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기존 철교의 보존을 위해 부득이하게 곡선이 된 아마루베 철교


  이렇게 곡선이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철교가 끝나는 지점에 등장하는 터널이다. 원래 위치했던 철교가 터널에 맞춰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새로 대체하는 철교는 부득이하게 위치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다고 원래 있었던 터널까지 새로 만들기에는 공사도 힘들고 비용도 많이 들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아마루베 철교의 S자 곡선 구간. 여기서만 속도를 조금 낮춘다면 철교 통행은 이전보다 확실히 안전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특이한 곡선구간을 만듦으로써 또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생기게 되었고, 이 또한 아마루베 철교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내용이 되었다.

  이렇게 꼬리가 꼬리를 물고, 이야기는 이야기를 만드는 일본 철도. 이것이 바로 운송 수단에 불과한 우리나라 철도와 일본 철도가 가지는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는 짧은 철도 구간이나 산인선처럼 긴 철도 구간이나 변하지 않는 특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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