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도 방랑객 Jan 21. 2020

소박한 역이 만들어내는 조용한 노선

가시이선(香椎線) 두 번째 이야기

  가시이선은 후쿠오카 시내를 중심으로 해서 원을 그리듯 외곽에서 에워싸는 듯한 모습으로 이어진다. 외곽을 이어주는 노선이다 보니 이 노선에서 우리가 흔히 알 만한 유명한 지명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래도 후쿠오카를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우미노나카미치 공원이 있는 우미노나카미치역 정도가 그나마 알려진 곳이랄까?

  디젤 열차가 다른 곳보다 엔진 소리를 좀 더 크게 울렸던 것도 가시이선의 존재감을 나타내 보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러나 이제 그 웅장한 디젤 엔진 소리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된 가시이선. 덴챠라는 독특한 운행 방식의 열차가 등장하긴 했지만, 아직 1년 여 남짓한 시간이 지났을 뿐이라 그런지 의외로 카메라 세례는 보기 힘들었다.

  지나는 역도 버스 정류장을 연상하게 하듯 작은 규모를 자랑했던 가시이선은 교행 구간이 있는 역이 아닌 이상 거의 1선 1승강장의 형태로 열차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열차는 우리나라 경춘선 전철과 거의 같은 운행 간격으로, 최소한의 시설로도 얼마든지 원활하게 열차 간격을 조정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듯했다.


교행역에서야 비로소 2개 선로를 마주할 수 있었던 가시이선.


  가시이역을 기준으로 마치 두 개의 노선처럼 운행하는 가시이선. 우미역 방면으로 가는 열차가 사이토자키역 방면으로 가는 열차에 비해 중간 정차역이 많아서 그런지 우미역 방면이 교행 시설도 더 많다. 전부는 아니어도 교행 시설이 있는 역에서는 반대편에 열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역이 아닌 곳에도 마련되어 있었던 교행 시설.


  우미노나카미치로 가는 길에는 역간격이 길기 때문에 도중에 교행 시설이 자리 잡은 것을 볼 수 있다. 디젤 열차가 운행하던 시절에는 이곳에서 교행이 이루어진 적이 빈번했지만, 열차 시간표의 개정이 있었는지 덴챠는 이곳을 그냥 통과하였다.


대부분의 역은 소박하게 이루어져 있다.


  후쿠오카 시의 근교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교통카드와 같은 IC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가시이선의 역들. 대부분의 역은 무인역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IC카드 사용 승객을 위해서 자동 개찰구 형식의 시설을 설치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그 시설도 대부분 승강장 개수만큼 하나에 불과하지만, 승객도 그리 많지 않아서 카드를 찍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의 행렬을 기대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있던 교행 시설도 하나 둘 사라지고 있는 가시이선.


  그래서인지 가시이선도 여느 시골 철도와 마찬가지로 있던 철도 시설도 하나 둘 자취를 감춰가는 중이다. 전에는 보다 더 많은 열차가 다녔음을 추측해볼 수 있는 교행 시설들. 그러나 이제는 그 교행 시설도 자연으로 되돌아간 지 오래다.


승강장이 하나 더 있었다는 흔적이 남아있는 우미역.


  가시이선 남쪽 종착역인 우미역도 원래는 2개 이상의 승강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1선 1승강장에 불과한 역으로 바뀌었다. 종착역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승강장의 길이도 중간역들과 비교될 정도로 상당히 길다. 이렇게 긴 승강장이 있을 만큼 긴 편성의 열차가 운행했을 시기도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는 흔적이다.


환승 역임에도 1선 1승강장인 죠자바루역.


  가시이역과 더불어 유이하게 환승역의 지위를 갖춘 죠자바루역은 의외로 1선 1승강장의 모습이다. 이 노선과 이어지는 후쿠호쿠유타카선은 섬식 승강장의 형태로 되어있는 것을 감안하면 꽤 비교되는 부분이다. 후쿠호쿠유타카선의 죠자바루역은 대부분 교행을 위해 두 대의 열차가 동시에 진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에 비해 가시이선의 죠자바루역은 좀 허전하게 느껴진다.


있던 시설도 다 사용하지 못하는 가시이선의 역들.


  그러나 대부분의 가시이선에 속해있는 역은 보이는 것처럼 당장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의 시설만 갖추고 있다. 그마저도 승강장이 길어서 지금은 중간 부분만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시이선도 과거의 영광만 남긴 채 하루하루 근근이 버텨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비록 승강장은 하나지만 학생들의 통학을 책임지는 데는 문제가 없다.


  이렇게 최소한의 시설만 갖추고 있는 가시이선이지만 학생들이 통학하는 데는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우리나라도 충분히 철도가 학생들의 통학에 힘이 될 수 있는데, 천편일률적인 거대한 시설만 고집하다 보니 철도의 본질인 운송에서 벗어나는 경향이 강하다.

  철도는 승객의 수송이 기본이 되어야 존재의 이유가 있다. 그러나 시설만 번지르르하다고 해서 가치가 상승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철도가 가질 수 있는 최대 장점인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열차가 다닌다고 한들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 왜 우리나라는 가시이선과 같은 소박한 철도를 탈 권리조차 박탈당해야 하는 것일까?


관광지로 알려져 있는 우미노나카미치 공원. 그러나 역은 1선 1승강장이다.


  심지어 우미노나카미치역도 1선 1승강장의 형태로 운영 중이다. 이 역은 바로 우미노나카미치 공원 입구로 이어져 있어서 열차 이용 승객도 꽤 많다. 이 우미노나카미치역은 승강장의 규모는 승객들의 선택지에서 고려 대상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그저 열차가 있고 가고자 하는 장소에 가까이만 갈 수 있다면 그 열차가 조금 낡고 역 시설이 조금 낙후되어 있고 요금이 조금 비싸더라도 승객은 찾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시간도 아낄 수 있고, 편하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체되지 않고 꾸준히 변화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승강장 개량.


  가시이선도 불과 1~2년 전 까지만 해도 상당히 낙후된 디젤 열차와 그와 함께 세월을 이겨낸 오래된 승강장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규슈에서 가장 신형 열차인 덴챠가 들어오고 그에 걸맞게 승강장도 다시 리모델링을 하면서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을 볼 수 있었다.

  철도가 있고 승객이 내릴 수 있는 시설만 있으면 어디든 하나의 노선이 되어 승객을 안내하는 일본의 철도. 가시이선을 보면서 모자람으로 가득한 소박한 철도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져만 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시이선을 두 개의 노선처럼 만들어버린 가시이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