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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방랑객 Oct 13. 2019

'하나'라는 숫자로 설명이 가능한 노선

삿쇼선(札沼線) 두 번째 이야기

  내년(2020년) 5월이면 운행을 중단하는 구간이 발생하는 삿쇼선. 그 구간은 유독 1이라는 숫자와 친근한 것 같다. 하루에 단 한 번 운행하는데, 운행하는 열차는 1량 편성이며, 승무원이라고는 열차를 운행하는 기관사 단 한 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어떻게 이 노선이 운행이 가능한 것일까? 그것은 승객이 그만큼 적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삿쇼선 북쪽 지역은 이 열차 외에 그 어떤 열차도 다니지 않는다.


  1이라는 숫자에 익숙한 이 노선. 그렇다 보니 일본에서 가장 먼저 영업이 끝나는 역도 이 삿쇼선에 있다. 그러니까 일본에서 1등으로 문을 닫는 역도 보유하고 있는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역은 삿포로역의 반대편에 자리한 신토츠가와역. 삿쇼선의 종착역 중 하나인 역이다.

  이 역에는 열차 시간표가 상당히 썰렁하게 보이는데, 하루에 딱 한 대의 열차만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열차 시간표에 아무런 숫자도 표기가 되지 않은 것처럼 너무도 썰렁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저 시간대를 표시해놓은 숫자들이 더 돋보이는 것 같다.


단 한 대의 열차만 표기되어있는 신토츠가와역의 시간표.


  일본에서 가장 빨리 영업을 끝내는 신토츠가와역의 첫차이자 막차인 열차는 10시 정각이 되면 역을 출발한다. 그전에 이 열차가 신토츠가와역에 도착하는 시간은 9시 30분 내외. 그러니까 신토츠가와역에서 약 30분 정도 정차해있다가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식의 운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30분은 조용하기 그지없던 신토츠가와역 주변을 깨우는 시간과도 같다. 디젤 열차의 우렁찬 엔진 소리는 바람소리조차 듣기 힘든 조용한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그 시간에 맞춰 신토츠가와역은 이 열차를 배웅하러 나온 지역 주민들의 사랑방이 되어주고 있었다. 어쩌면 하루에 한 대만 있는 이 열차가 지역 주민들을 모아주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10시 정각이 되면 열차는 출입문을 닫고 다음날을 기약하며 웅장한 디젤 엔진 소리를 뿜으며 역을 출발한다. 열차가 출발할 때 열차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주민들의 모습은 마치 멀리 떠나는 가족을 배웅해주는 것 같았다. 열차 안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 가족이 나를 위해 일부러 역까지 나와준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같이 차창 너머로 손을 흔들며 한동안 이곳을 보게 된다.


지역 주민들의 환대를 받으며 떠나는 열차.


  열차가 역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취를 감출 때까지 이어지던 주민들의 환송은 그다음 날 다시 역을 찾을 열차에 대한 기대감이 묻어났다. 이렇게 하루에 한 번 사람들로 북적이던 신토츠가와역은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정적에 빠져든다. 항상 똑같이 느껴지는 우리의 일상처럼,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의 신토츠가와역 풍경 역시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풍경을 볼 수 있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환송해주는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여기까지 나온다는 것이다. 그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렇게 일부러 나오게 만드는 힘. 그것은 바로 신토츠가와역까지 찾아오는 열차에서 비롯되었음이 틀림없다. 이들은 그 누구보다 열차를 아끼고, 그 누구보다 열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모습들이 가식적이지 않고 진심이 느껴지는 것이다.

  일본에서 철도의 역할은 단순한 운송수단이 아니라 이렇게 지역 주민들과 타지 승객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런 역할 때문에 하루에 100명도 안 되는 승객만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운행을 이어온 것이 아닐까?

  단순히 수익적인 측면에서 봤다면 이미 사라지고 말았을 이 철도들이 지금껏 힘겹게 운행을 이어오는 것은 보이지 않는 효과들을 고려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신토츠가와역 뿐만 아니라 삿쇼선을 지나는 동안 또 한 번 열차를 환송해주는 장면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풍경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어른과 어린이의 세대 간 공감대 형성(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철도.


  일본에서 철도는 세대 간 연결고리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타고 다녔던 열차를 추억할 수 있어서 좋고, 어린이들은 비록 낡아 보일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운행하고 있는 열차를 자신들도 봤다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전역을 다니다 보면 유독 이렇게 시골 열차가 다니는 길에는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열차를 통해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서로 바라보는 관점은 다를지라도 열차라는 하나의 공통된 연결고리를 통해 자신들의 추억도 쌓는 한편, 자칫 잘못하면 단절되어버릴 수 있는 세대 간 소통 공간도 마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새것으로 대체한답시고 예전 것을 그대로 없애버리는 우리나라 철도의 현실을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과연 예전 것이 가치가 없는 것일까? 그러면 우리가 문화재로 관리하는 것은 도대체 왜 관리를 하는 것일까? 지금 다니고 있다고 해서 보존 가치가 없는 것은 없다. 없어지고 난 후 복원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보다 지금 있을 때 그것을 이벤트성이라도 한 번씩 세상에 노출시키는 것이 서먹해지고 있는 세대 간 단절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고리가 될 것이다. 그러면 철도는 단순한 운송수단을 넘어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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