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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방랑객 Oct 16. 2019

넓은 대지만 보이는 외로운 노선

삿쇼선(札沼線) 세 번째 이야기

  삿쇼선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풍경과는 좀 다르게 느껴진다. 전 국토의 70%나 되는 땅이 산이라 그런지 지평선을 구경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 물론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산이 70% 넘는 일본도 지평선 구경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 일본이 홋카이도라면 달라진다.

  홋카이도는 일본에 편입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일본이라는 느낌보다는 또 하나의 나라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것은 이 삿쇼선에 펼쳐진 지평선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주변에 마을이 거의 없어서 더더욱 지평선이 눈에 잘 들어오는 삿쇼선. 유동인구를 찾을 수 있는 장소가 마땅히 없는 이 지역에 철도가 들어선 것 자체가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탁 트인 경치가 끊임없이 펼쳐지는 삿쇼선.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눈은 몇 달에 걸쳐 서서히 녹는다.


  삿쇼선은 계절의 절반이 이렇게 눈으로 수북이 쌓인 대지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한 번 내리면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눈. 너무나 새하얗기 때문에 선글라스가 없으면 당장이라도 설맹에 걸릴 듯한 강렬했다. 그러나 이렇게 수북이 쌓인 눈 덕분에 춥다는 느낌은 생각보다 없다. 언 상태를 유지하려는 눈이 주변의 찬기운을 다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광활한 대지를 따라 이어지는 노선이기에 오히려 역의 승강장이 초라해 보인다. 안 그래도 승강장 크기가 작을 대로 작아진 삿쇼선이기에 이 광활한 대지는 승강장이 있는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게 보이는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역을 통과한 열차에서 담아본 승강장의 모습. 승강장이 없어도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소규모다.


  승강장이 있는 듯 없는 듯한 것은 그만큼 이용승객이 없음을 반영하는 현실이다. 철도회사도 수익을 내야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에 삿쇼선과 비슷한 위치에 자리한 노선들을 어쩔 수 없이 정리하고 있다. 물론 이 노선을 대체해서 버스가 다녀도 수송에는 문제가 없다. 버스가 오히려 더 효율적인 운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주민들과의 상생을 기대하는 데는 철도를 대체하긴 어려워 보인다.

  삿쇼선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철도는 도로와 달리 1개의 선로만 있어도 양쪽 모두 통행이 가능한 구조다. 물론 도로도 1차선만 있어도 통행하는데 큰 지장은 없겠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수송량인 차량의 한계 때문에 쌍방향으로 차선이 있어야 원활한 통행이 가능하다. 철도는 대신 두 열차가 마주칠 때를 대비해서 교행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통행을 이어나가는데, 그것 또한 다른 교통수단에서 볼 수 없는 재미가 있다.


삿쇼선 북쪽의 유일한 교행 구간. 그러나 교행 할 열차가 없다.


  삿쇼선에도 이런 교행 구간이 존재한다. 지금은 하루에 한 편만 운행하는 열차만 있다 보니 교행 시설이 무의미해진 지 오래지만, 열차가 더 있었을 예전에는 분명 이곳에서 상하행 열차가 마주쳤을 것이다. 원래 창고나 마트에서는 먼저 들어온 물건부터 다시 내보내는데, 철도는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철도의 교행 구간에는 먼저 들어온 열차가 맞은편에서 들어오는 열차를 완전히 보내고 나서야 출발하는 형태가 일반적인데, 아무래도 선로에 따라 움직이는 철도기에, 선로를 변환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먼저 들어와서 늦게 나가는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삿쇼선은 이런 교행과도 무관하기 때문에 이곳을 교행 시설이 없는 다른 역을 통과하듯 여기서 반대편 열차를 기다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음 역으로 향한다.

  삿쇼선의 전혀 다른 모습을 다 볼 수 있는 곳은 홋카이도 의료대학역(일본명: 홋카이도이료다이가쿠역)과 이시카리토베츠역 사이의 구간에서다. 이 두 구간은 6량 편성의 긴 열차와 1량 편성의 원맨열차를 동시에 마주칠 수 있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마치 하구둑에서 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듯 어느 한 지점에서 완전히 뒤바뀌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섞이는 경계 구간을 형성한다고 볼 수 있다.


두 열차를 모두 볼 수 있는 홋카이도 의료대학역 승강장.


  긴 열차와 같이 있는 원맨열차는 상당히 짧게 느껴진다. 저 짧은 열차의 좌석도 다 채우지 못하는 삿쇼선 북쪽 구간이 얼마나 승객이 적은 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홋카이도 의료대학역부터는 6량 열차에 승객이 가득할 정도로 북쪽 구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그래서 열차 편성이 이렇게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이 구간은 삿쇼선이란 이름 외에도 가쿠엔토시선이라는 애칭이 붙어있다. 그것을 잘 반영하는 것이 바로 역명판이다. 그런데 폐선 예정인 북쪽 구간에도 이 가쿠엔토시선이라는 명칭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원맨열차에도 그 이름이 붙어있었다는 것이다.


원맨열차에도 붙어있는 가쿠엔토시선 표시.


  그뿐만 아니라 삿쇼선 전체 노선의 역명판에도 삿쇼선이라는 이름 대신에 가쿠엔토시선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삿쇼선 노선이 짧아지면서 이제는 삿쇼선이라는 이름도 점점 잊혀만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삿쇼선이라는 이름을 찾기 힘든 역명판. 대신 그 자리는 가쿠엔토시선이 붙어있다.


  삿쇼선 북쪽 구간의 역과 남쪽 구간의 역은 또 다른 차이를 볼 수 있는데, 바로 역 번호다. 역명판을 살펴보면, 신토츠카와역에는 역 번호가 지정되어 있지 않지만, 홋카이도 의료대학역에는 G14번이라는 역 번호가 부여되어있다. 그리고 역 이름에 관계없이 역명판 위쪽에는 가쿠엔토시선이 표기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삿쇼선이라는 이름도 지도가 아니면 찾아볼 수가 없어 보였다.


삿쇼선 비전철화 구간 폐지. 2020년 5월 7일이라는 숫자가 적혀있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기념 승차권. 그곳에도 삿쇼선이라는 이름과 가쿠엔토시선이라는 이름이 함께 적혀있었다. 우측에 표기된 역은 이제 곧 지도상에서 사라질 역의 이름들이다. 그렇게 이제 삿쇼선은 마지막 추억만 남긴 채 지역주민들의 품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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