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도 방랑객 Oct 18. 2019

자연과 하나 된 생소한 이름의 노선

무기선(牟岐線) 첫 번째 이야기

  일본 열도의 주요 4개 섬 중 가장 작은 섬인 시코쿠. 이 섬은 주요 섬 가운데 유일하게 신칸센이 다니지 않는 섬이다. 일본은 나라가 긴 형태로 되어있는데, 마치 점을 찍어놓은 듯 중간중간에 대도시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주요 도시들을 이어주는 것이 바로 신칸센인데, 그 신칸센이 다니지 않는다는 것은 큰 도시가 없다는 의미와 동일하다.

  사실 북쪽의 홋카이도만큼이나 철도 사정이 열악한 시코쿠는 섬 규모 자체가 워낙 작다 보니 애초에 철도 노선도 그렇게 많지가 않다. 그러다 보니 전기설비가 갖춰진 노선도 손에 꼽을 정도다. 당연히 복선철도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 말은 상대적으로 시골 철도를 많이 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코쿠 지역은 외국인에게도 생소하지만 여행을 즐기지 않거나 시코쿠 외의 지역에 사는 일본인에게도 생소하긴 마찬가지다. 이번에 다룰 무기선의 경우 한자 지명을 못 읽어서 매표직원이 필자에게 되레 뭐라고 적은 것인지 물어보는 경험까지 하였으니 말이다. 


무기선의 위치. 시코쿠 섬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이 노선을 만날 수 있다.


  시코쿠 섬의 동남쪽 해안가를 걸쳐 자리한 무기선은 시코쿠의 다른 노선들과 비교해볼 때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시코쿠 철도망을 보면 동쪽과 서쪽에 큰 원을 그리며 두 개의 순환 노선이 형성되어 있는데, 무기선은 동쪽의 원에서 갈고리처럼 뻗어 나온 노선으로, 서쪽으로 계속 간다고 한들 더 이상 이어지는 새로운 노선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무기선을 이용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도쿠시마역.


  즉, 무기선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도쿠시마역을 거쳐야 한다. 선택권이 하나뿐인 노선이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상대적으로 힘든 노선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기선에는 특급열차가 하루 3편이나 운행하는 특이한 노선인데, 이곳의 특급열차는 다른 지역의 보통열차보다 짧은 편성의 열차라 특급열차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다.

  도쿠시마역은 시코쿠에서 유일하게 3개의 노선이 만나는데, 공교롭게도 세 노선 모두 비전철화 단선철도다. 그래서 도쿠시마역은 항상 디젤엔진 소리를 웅장하게 울리는 열차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중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무기선은 나머지 2개 노선에 비해 열차 빈도가 낮은 편이다. 그마저도 중간역인 아난역까지 운행하는 열차가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갈수록 유동인구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열차 빈도가 말해주고 있었다. 


마을을 그대로 통과하는 무기선.

 

  한편 무기선은 마을을 그대로 통과하고 있는데, 그 어떤 방음벽도 설치되지 않아서 레일바이크를 보는 듯한 풍경을 자아낸다. 열차가 지나가는 동안 분명 소음이 심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철도에 길을 내준 것이다. 동네 뒷골목을 지나가듯 너무도 자연스러운 이런 모습이 철도와의 거리감을 좁혀주는 역할까지 기대할 수 있어 보였다.

  도시와 달리 인적도 드물고 열차도 드문 이 시골에서 간간히 지나가는 열차는 마을 사람들에게 매시 정각에 울리는 자명종의 소리가 아닐까. 멀리까지 울려 퍼지는 열차 소리는 아이들이 열차를 보러 나올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줘서, 열차를 보러 나오는 어린아이들을 간간히 마주할 수 있었다. 지나가는 열차로 인해 집에 뿔뿔이 흩어졌던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한 곳에 모이게 되고 그렇게 얼굴을 익히게 된 아이들은 금세 친해져서 친구가 된다. 그렇게 철도는 서먹할 수 있는 아이들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행이 잦은 무기선.


  단선철도인 무기선은 생각보다 교행이 잦다. 단 한 선에 양방향 열차가 다 다니다 보니 마주오는 열차가 지나가기 위해서 자신이 온 길을 피해 주어야 하는 교행. 아무리 바빠도 양보를 해야 더 빨리 갈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특히 도로에서 서로 가려고 길을 양보하지 않는 우리들에게 철도는 교행을 통해 아주 기본적인 것이면서도 쉽게 해결책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마을과의 경계가 모호해진 무기선의 역. 오히려 이 모습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마을을 어떠한 제약 없이 자연스럽게 지나는 무기선. 그래서인지 무기선의 역들도 주변과 완전히 담을 쌓지 않고 열려있는 역들이 많다. 역과 마을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진 듯한 노선. 그래서 더 정감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벽을 대신해서 우거진 숲이 역과 마을을 구분해주는 모습은 무기선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똑같은 열차가 똑같은 시간에 역을 통과할지라도 계절에 따라 풍경이 바뀌기에, 무기선은 항상 다른 모습을 승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마치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넓은 대지만 보이는 외로운 노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