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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방랑객 Oct 22. 2019

학생들의 통학을 책임지는 시골 철도

무기선(牟岐線) 두 번째 이야기

  무기선은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에 존재조차 모를 노선이지만, 지역 주민들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학생들에게는 통학버스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험준한 지형의 영향으로 버스가 다니는 것보다 효율적인 운송이 가능한 철도기에 무기선이 다니는 지역의 학생들은 이 열차가 곧 통학버스나 마찬가지였다.


무기선을 다니는 열차. 열차 모양이 독특하다.


  무기선의 열차는 버스를 보는 것 같았다. 1량 편성의 열차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다른 지역에서 보던 열차에 비해 유독 열차길이가 짧게 느껴진 것도 한 몫한다. 아무래도 중간에도 있는 출입문이 열차 길이 자체가 짧게 보이는 착시를 일으키는 것 같았다.

  무기선도 이렇게 1량 편성이면 충분히 승객을 실어 나르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열차 빈도는 중간역인 아난역을 기준으로 차이가 나는데, 도쿠시마역에서 아난역까지는 그래도 열차가 제법 보이는 구간이지만, 아난역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구간은 열차가 상당히 띄엄띄엄 다니고 있다.


마을 뒷길처럼 보이는 선로.


  그래서일까? 아난역을 지난 무기선은 유독 마을과 허물없이 지내는 것 같았다. 이 철도를 따라 마을길도 나란히 이어지는데, 그곳에는 차도 사람도 구경하기가 쉽지는 않다. 사람이 없는 자리는 자연이 대신할 뿐이다. 그저 한적하기만 한 이곳에 간간히 열차가 지나가면 그 소리는 도시의 열차 소리보다 더 크게 더 멀리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인적이 드문 곳에도 큰 병원은 존재한다.


  그 가운데 상당히 부러우면서도 놀라운 장면을 볼 수 있었는데, 바로 병원이다. 우리나라의 시골은 병원이 없어서 서울로 와야만 하는 피치 못할 사정들이 많지만, 일본은 큰 규모까지는 아니더라도 중형 병원들이 곳곳에 있어서 몇 안되지만 시골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져주고 있다.

  적어도 시간을 놓쳐서 치료를 못 받는 일은 없어 보인다. 물론 평소에는 이렇게 주차장도 다 채우지 못할 만큼 한적함만 묻어 나오지만, 이 병원의 신세를 지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곳이 아닐까? 일본이 세계 최장수 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시골까지도 미치는 의료혜택이 분명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어디선가 나타나 열차에 오르는 학생들.


  시골에서 열차는 마냥 기다린다고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오겠지.'라는 생각으로 열차를 기다렸다가는 한 시간이 될지 두 시간이 될지 그 누구도 답해주는 사람이 없다. 이 시골 철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열차 시간표. 언제 올 지 모를 열차는 아는 사람만이 탈 수 있는 전유물이다.

  그것을 반영하는 듯 열차가 역에 도착할 시간에 맞춰 어디선가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들은 스마트폰을 무심히 보다가 열차의 기적소리를 듣고 일제히 열차에 오르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무기선에서는 일상인 것이다.

  외지인의 방문이 드문 무기선의 열차는 아는 사람들이 항상 탑승하는 열차인 듯, 열차 내에서 서로 인사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학생들이 통학하는 시간에는 이 1량 편성 열차가 모처럼 생기가 넘친다. 항상 비어서 운행하는 열차. 그러나 이 시간만큼은 학생들이 열차를 가득 매워서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무기선이 운행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학생들.


  여기서도 인간의 사회성을 엿볼 수 있는데, 같은 학생들이라 할지라도 한데 어우러지는 것이 아니라 삼삼오오 따로 그룹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혼자 스마트폰을 하는 학생도 있고, 서로 이야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학생도 있는 열차. 목적지는 다르지만 출발을 함께 했기에 이들의 웃음꽃은 누군가 내리기 전까지 열차 안을 울리고 있다.

  같은 곳에서 탔음에도 이렇게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도 모두가 하나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가능한 장면들. 그래서 변화에서 거리가 멀 것 같은 시골 철도가 매일 똑같은 것 같으면서도 또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매일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열차에 오르지만, 그곳에서 들리는 소리는 항상 다르고, 타고 있는 학생들의 위치도 항상 달라지기에 열차는 매번 새로운 느낌으로 이 무기선을 달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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