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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방랑객 Oct 25. 2019

내륙과 해안을 아우르는 철도

무기선(牟岐線) 세 번째 이야기

  무기선은 시코쿠 섬의 동남쪽 해안선을 따라 나란히 이어지는 노선이다. 그러나 이 노선에서 바다의 모습만 보면서 달리면 제자리걸음을 하듯 지루할 것이다. 무기선은 그런 지루함이 어떤 것인지 아는지, 산도 보여주고 때로는 숨겨진 바다의 모습도 보여주면서 탑승하고 있는 승객들에게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어떤 것인지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해안선을 따라가는 것 같지만, 정작 바다의 모습은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해안선을 따라가는 듯싶은 무기선은 의외로 바다의 모습을 보려면 한참 내려가야만 한다. 시코쿠 섬은 일본 전체로 봐서는 눈에 잘 띄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섬에 불과하지만, 막상 이 섬을 다니다 보면 제법 큰 섬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시골 철도의 느림과 결부되어서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연 터널을 지나는 듯 숲을 가로지르는 무기선. 직선으로 되어있어서 열차가 모처럼 속도를 내는 곳이기도 하다.


  시코쿠 섬도 크게 보이게 해주는 시골 철도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코쿠의 자연을 조금이라도 더 보여주기 위해서 열차의 발목을 잡는 듯했다. 워낙 곡선구간이 많다 보니 열차는 조금 달려보려고 해도 금세 저속으로 코너를 돌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느림이 계속되면서 간과하고 있었던 시골 철도의 승강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마침 비가 내린 후 담아본 승강장의 모습은 마치 그림을 그릴 때 마지막으로 코팅을 한 듯 광택이 나는 것 같았다. 승강장은 두 어 사람이 서면 꽉 찰 정도의 좁은 폭이지만, 기다리는 동안 승객들이 편하게 있을 수 있게 의자도 마련해놓고, 비에 젖지 마라고 간이 시설까지 설치해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좁은 폭의 승강장. 그러나 이 승강장에도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다.


  그곳에서 승객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열차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그러나 날씨의 변화도 이 똑같아 보이는 일상의 풍경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 주었다. 누군가에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모습일지라도 이런 시골 철도조차 보기 힘든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특별한 장면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조촐한 노선에도 신칸센의 바로 아래 등급인 특급열차가 다니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 그러니까 무기선도 항상 느림의 미학만 보여주는 느린 시골 철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열차 빈도는 눈에 띌 정도로 많지 않지만, 그래도 다양한 열차가 혼재해서 다니는 것 자체가 볼거리다.


무기선에서 운행 중인 특급열차 '무로토'호.


  특급열차인 '무로토'호는 모든 역을 스쳐 지나가는 보통열차와 달리 띄엄띄엄 정차를 하면서 최대한 빨리 지역과 지역을 이어주고 있었다. 교행 구간에서 보통열차는 정차하지만 속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 무심히 떠나버리는 무로토호를 보며 보통열차에서 볼 수 있는 여유를 느끼기는 어려웠지만, 수송의 관점에서 볼 때는 특급열차만큼 고마운 열차는 없을 것이다.


무기선의 이름이 된 무기역. 다른 역에 비해 규모가 크다.


  무기선의 무기역은 특급열차를 볼 수 있는 가장 남쪽 역이다. 무기역에서 더 남쪽으로 이어진 노선이 있지만, 그 아래로는 특급열차가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북쪽의 아난역과 마찬가지로 무기행 열차와 무기선의 마지막 역인 가이후역까지 운행하는 가이후행 열차로 이원화되어 운행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열차 빈도가 낮은 아난역 남쪽 구간인데, 그보다 더 열차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하니, 승객이 얼마나 적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무기역에서 가이후역까지만 운행하는 초단거리 셔틀형 열차도 있는데, 이렇게 구간별로 열차를 운행함으로써 운행효율을 더 높여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기선의 마지막 역인 가이후역. 무기선은 끝이 났지만, 철도는 계속 이어진다.


  무기선의 마지막 역인 가이후역. 이 역은 JR선인 무기선의 종착역이지만, 또 다른 열차가 계속해서 운행을 이어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흰색 바탕 열차의 정체는 제3섹터 철도인 아사 카이간철도. 그러니까 JR에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고 운영권을 포기한 구간을 운행하고 있는 철도다.

  가이후역을 포함해서 단 3개 역을 운영하는 초단거리 노선인 아사 카이간철도. 무기선의 연장으로 조금만 더 이어나가더라도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을 이 구간만 별도로 구분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기선도 승객이 없지만, 제3섹터 철도인 아사 카이간철도는 더 쓸쓸해 보였다.

  무기선은 시골 철도의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수송의 역할까지 도맡아 할 정도로 지역 주민들에게는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큰 도시를 통과하는 노선이 아니다 보니 유동인구의 한계로 운영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이 열차에 오를 승객들을 위해서 하루도 빠짐없이 다니던 길을 똑같은 것 같지만 또 다른 느낌으로 운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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