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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방랑객 Jan 30. 2020

끊어진 철도를 복구하기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노선

히타히코산선(日田彦山線) 첫 번째 이야기

  후쿠오카 북쪽의 중심역인 고쿠라역에는 수많은 열차들이 정신없이 다니고 있다. 그 열차의 대부분은 전동 열차로, 운행할 때 엔진 소리를 잠시 낼뿐 정차하고 있을 때는 사람 소리밖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다. 그런 고쿠라역에 웅장한 소리를 내고 있는 열차가 있으니, 고쿠라역에서 출발하는 열차 가운데 유일하게 디젤 열차인 히타히코산선 열차다.

  고쿠라역은 통과하는 신칸센 열차가 모두 정차할 정도로 큰 역이고 그만큼 유동인구도 많다. 그런 이 역에서 시골풍의 노선이 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이색적이다. 게다가 열차 운행 빈도도 꽤 높아서 전철화 공사가 진행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노선이 히타히코산선이다.


여러 노선과 얽혀있는 히타히코산선.


  그런 히타히코산선은 유동인구가 많은 노선답게 이 노선과 마주하는 노선도 꽤 많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다는 것이 바로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많은 노선과 접점이 있는 히타히코산선은 고쿠라역의 반대편 역인 히타역과, 중간에 히코산이라는 휴양지의 명칭이 합쳐져서 생긴 노선이다.

  그런데 지금은 홍수 피해로 다자와고토지역 아래에 위치한 소에다역에서 히타역까지는 열차 운행이 중단된 상태다. 그러니까 노선 이름이 만들어진 역까지는 운행을 하지 못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행선지판의 위치가 바뀐 히타히코산선 열차.


  고쿠라역 승강장에서 유독 눈에 띄는 히코히코산선 열차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약간의 변화를 가져왔다. 2015년 탑승 당시 열차(왼쪽 사진)는 전면부에 '보통'이 적혀있는데 이는 열차 등급을 표기해놓은 것이다. 하지만 2019년 탑승 당시 열차는 전면부에 '다가와고토지'가 적혀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열차는 등급 표시를 없앤 대신 그 자리에 행선지를 표기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히타행 열차가 사라진 지금의 히타히코산선.


  원래 히타히코산선은 히타역까지 운행했지만(왼쪽 사진), 지금 히타히코산선 행선지에는 히타역이 아니라 중간 정차역인 소에다역까지만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열차가 짧아진 소에다역까지 운행하는 것도 아니다. 다른 노선과 만나는 다가와고토지역까지 운행하는 빈도가 훨씬 많다.


소에다역까지만 운행하는 히타히코산선.


  다가와고토지역을 기준으로 다른 노선처럼 보이는 히타히코산선. 그래서인지 다가와고토지역이 하나의 시종착역이 되어서 고쿠라역 방면과 소에다역 방면으로 운행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다가와고토지역을 기준으로 극명하게 차이나는 승하차 인원.


   히타히코산선 복구 회의 자료를 보면 눈에 띌 정도로 차이가 많이 나는 평균 승객 수를 확인할 수 있다. 왜 중간 종착역이 필요한 지 히타히코산선의 이용 승객이 말해주고 있다. 다가와고토지역은 히타히코산선 외에도 2개 노선이 더 있는데, 그렇게 세 노선이 함께 얽혀있어서 유동인구가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

  그 유동인구는 대부분 고쿠라 방면으로 유입되는지 같은 히타히코산선이어도 승객이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히타히코산선의 이름이 들어가는 히타역이나 히코산역이 포함된 노선은 열차의 운행이 중단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다.


2017년 홍수(호우)로 인해 멈춰버린 히타히코산선.


  현재 JR규슈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히타히코산선의 열차 운행 중단 관련 안내. 이 구간을 대체하는 버스가 운행하고 있다는 안내와 버스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링크도 나와있다. 히타히코산선은 외국인들에게 그렇게 익숙한 노선이 아니어서 그런지 외국어 버전에서는 따로 버스 시간표를 확인할 수 없었다. (또 다른 구간인 호히본선<히고오즈~아소> 구간은 외국어 버전 버스 시간표가 있다)

  한편 히타히코산선을 복구하기 위한 회의가 여러 차례 걸쳐 진행되었는데, 그 자료도 열람이 가능했다. 그 관련된 내용을 담아보았다.


히타히코산선 복구 회의 공개 자료와 위원 명단.


  회의는 사고가 나고부터 약 1년이 되어가는 시점인 18년 4월부터 약 1년 간 진행이 되었는데, 19년 4월 이후에는 회의가 더 진행되지 않은 것 같다. 여기 위원으로는 후쿠오카현 지사와 JR규슈 철도 사장급 인사 등 히타히코산선과 관련된 자치구 지역장과 운영 회사인 JR규슈의 대표 격이 되는 사람들이다.

  회의는 히타히코산선 복구 회의와 히타히코산선 복구회의 검토회로 이원화하여 진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개최일자를 보면 주기적으로 진행되기보다는 필요에 의해 긴급 소집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직접 피해입은 노선에 대한 브리핑 자료.


  이 회의에서 사용한 자료를 보면 어떤 장소에서 어떤 식으로 피해를 입었는지 구체적으로 브리핑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침수 피해는 주로 교량에서 이루어졌으며, 복구까지는 4~5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와있다. 사업비도 제법 많이 들어가서 히타히코산선은 당분간 전 노선을 운행하는 열차를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체노선 관련 철도, BRT, 버스 비교안내 자료.


  복구 회의는 단순히 철도를 원래대로 복구하는 것에만 치중하지 않고, 대체 노선도 함께 고려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구간은 앞서 봤던 자료와 같이 유동인구가 철도를 운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나온 것은 버스와 BRT 시스템으로, 철도보다는 운영비용이 적게 드는 교통수단이다.

  그 노선들의 장단점과 실제로 소요되는 시간,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 등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해서 누구나 쉽게 알 수 있게 해 놓았다. 특히 우리나라 철도에서 고려하지 않는 정시성과 이용 편의성에 대한 고찰이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비록 많은 승객이 이용하는 노선은 아니지만, 이 승객들의 편의를 위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운행횟수 감축이 효율화 대책이라고 하는 코레일(연합뉴스 기사 발췌).


  잘 다니고 있는 노선도 복선화, 직선화 공사랍시고 없애고 있는 우리나라 철도를 겪다가 이런 모습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밖에 들지가 않는다. 우리나라 철도는 개량공사 후에도 지역 주민들을 위해 대체 교통수단을 마련한다는 기사를 접하기가 어렵다. 그저 열차를 줄이는 것이 그들 입장에서는 효율화 대책이라고 할 뿐이다.

  폐선한 부지를 비용이 저렴한 다른 교통수단으로 대안을 마련하려는 생각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폐선부지는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하디 흔한 레일바이크나 평범한 공원으로 전락할 뿐, 이 구간을 또 다른 교통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내용은 찾기 어렵다. 승객이 아무리 적어도 대체 버스를 투입하는 일본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일본은 진행과정을 모두 공개하고 그 자료들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누구나 볼 수 있게 함으로써 어떤 방식으로 해결책을 세워나가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시간은 조금 걸릴지라도 이렇게 과정에 대한 안내를 철저히 하면 기다리는 사람들도 조급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신뢰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히타히코산선의 복구 회의는 일본 철도가 신뢰받는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p. s. 우리나라 철도인 코레일 보고서는 어떤지 비교 차원에서 담아보았다.


비교되는 코레일 출장 결과 보고 내용.


  코레일은 해외 출장도 꽤 자주 나간다. 그러나 결과 보고라고 공개한 자료는 초등학생도 쓸 수 있을 정도의 형편없는 내용뿐이다.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누구를 만났는지, 어디를 견학했는지, 사례는 어떤 회사의 어떤 사례를 조사했는지, 직접 열차에 올라는 봤는지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다. 출발지와 도착지는 왜 적어놓았는지 그 이유를 알기도 어렵다. 제3 섹터 철도가 무슨 철도이며 어디에 있는지는 알기라도 하는 것일까?

  과연 내부 자료(있는지도 모르겠지만)에는 얼마나 알찬 내용이 있을지 기대조차 되지 않는 보고서다. 이러니 해외 출장을 외유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엇을 본 것이 있다면 거기에 영감을 얻어서 우리 실정에 맞게 적용하려고 하는 등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저 관광객처럼 구경만 하다가 와서 보고서는 써야 하니까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올만한 자료들로 짜깁기한 것으로만 보이는 이런 내용으로는 앞으로도 변화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것 같다.


  공개된 이 자료도 급조된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있다. 먼저 출장 일정의 표를 보면 3월 18일은 도시가 위쪽에 있고 시간이 아래쪽에 있지만, 그다음 날은 시간과 장소가 서로 바뀌어서 표의 통일성을 해치고 있다. 3월 20일과 21일은 장소가 나와있지도 않고, 23일은 시각이 없다. 3월 19일은 하카타라고 되어있지만, 3월 23일은 후쿠오카라고 되어있는 등, 지명의 통일성도 없다. (하카타는 후쿠오카시의 하카타구다. 따라서 다른 지역인 인천과 오사카, 후쿠오카는 하카타보다 상위에 있는 지명이다.) 이는 출장국가에도 하카타와 오사카라고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오사카를 먼저 방문했음에도 하카타가 먼저 등장한 것도 이상하다.

  JR서일본과 JR규슈(우리나라 표기 방식으로는 '큐슈'가 아니라 '규슈'가 맞다) 본사를 하루 종일 방문한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제3 섹터가 유독 많은 규슈 지방의 철도 운영 사례조사는 철도 회사를 모두 방문하지 않는 한 JR규슈 본사 방문날 사례조사까지 끝낼 수 있는 일정이다. 참고로 히타히코산선 복구 회의는 2시간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 측면에서 3월 19일도 이해가 쉽게 되지 않는 부분이다. 오사카에서 후쿠오카까지 신칸센으로 단 3시간(이동시간 고려한다고 해도 4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재래선 보통열차를 타고 이동한다고 하더라도 12시간이면 넉넉히 갈 수 있다. 공적 자료 조사를 18시까지 한다고 해도 충분히 그날 후쿠오카로 이동이 가능한 시간이다. 얼마나 여유 있게 출장을 다니면 저런 일정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만약 내가 출장 담당자가 되어 저 출장을 간다면 2박 3일이면 충분해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첫날 새벽 비행기를 타고 오사카로 넘어가서 JR서일본 담당자를 만나고, 저녁까지 자료 조사를 마친 후, 저녁 기차나 다음날 오전 신칸센 첫차를 타고 후쿠오카로 넘어가서 JR규슈 담당자를 만난다. 그날 오후부터 제3 섹터 철도를 조사하고 자료를 수집한 다음, 그다음 날 오전 비행기로 다시 인천으로 돌아와 회사에 복귀해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퇴근할 것이다.


  주요 활동에 나온 조사는 얼마든지 사전에 국내에서도 할 수 있는 작업이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현지에 방문해서 책을 봐야 얻을 수 있는 자료가 아니라는 뜻이다. 출장비용을 아끼려는 마음이 있었다면 전 국민이 볼 수 있는 이 자료에 저런 어처구니없는 문구를 삽입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거기에도 통일성을 저해하는 글을 볼 수 있는데, 표에는 'JR큐슈'라고 적어놓고는 주요 활동에는 'JR-Kyushu'라고 되어있다. 그 앞에 JR서일본은 그냥 우리 식의 표기인데 왜 갑자기 JR규슈는 영어식 표기일까? 그럴 것이면 차라리 JR서일본도 'JR-West'라고 표기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JR 내부에도 벽지노선은 충분히 많지만 그 노선을 전부 제3 섹터라고 전제해버린 것도 분명한 오류다.

  그리고 시사점은 출장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막연한 계획을 언급했을 뿐, 특별한 내용은 없다. 저것이 과연 일반 사기업이었다면 용인이 되었을까? 적어도 조사를 했다면 무엇을 어떻게 어떤 식으로 했는지 육하원칙으로 정리를 해야 하는 것이 원칙 아닐까? 신입사원도 아니고 직급도 높은 사람들이 보고서를 저렇게 써 왔다는 사실이 더 경악스럽다.


  똑같은 한 장의 보고서라도 많은 내용을 담아낼 수 있는 보고서가 있고, 코레일처럼 형편없는 보고서도 있다. 그저 종이 한 장을 채우는 것에만 급급한 나머지 내용이 없는 코레일 보고서를 보면서 왜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낙후되어버린 철도 운영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국력이 상승한 만큼 우리도 그에 맞게 좋은 서비스를 받아야 함이 맞지만, 철도에 있어서는 여전히 6.25 전쟁 전후의 힘든 보릿고개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불평하지 못하고 코레일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철도는 코레일 독점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는 것이 코레일 뿐이니 거기에 적응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것이 참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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