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도 방랑객 Feb 01. 2020

기다리면 비로소 보이는 풍경

히타히코산선(日田彦山線) 두 번째 이야기

  비록 전 구간에 걸쳐서 열차를 탑승할 수는 없지만, 히타히코산선은 승객들에게 새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 풍경은 열차 시간을 잘 맞춰야 볼 수 있는 일종의 복불복인 풍경들이다. 이 풍경은 단선 철도면서 교행이 잦아야 높은 확률로 감상할 기회가 생긴다. 사실 이동수단으로 생각할 때 이런 풍경을 많이 보는 것은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순간을 여행으로 생각한다면 이보다 더 효율적인 여행도 또 없다.


히타히코산선의 실질적 시작인 죠노역. 여기도 교행이 있다.


  히타히코산선을 운행하는 열차들은 모두 고쿠라역에서 시작하고 끝나지만, 원래 히타히코산선이 독립적으로 운행을 시작하는 구간은 죠노역에서부터다. 그래서 죠노역은 역 번호를 2개 적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여기까지는 복선 전철 구간이어서 교행 장면을 볼 수 없다. 하지만 히타히코산선 열차는 고쿠라행 열차가 먼저 죠노역에 진입하고 난 후에야 다가와고토지 또는 소에다행 열차가 죠노역으로 들어온다.

  시작과 함께 단선 구간으로 이어지는 히타히코산선이기 때문에 죠노역에 고쿠라행 열차가 먼저 들어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것이 복선 전철 구간에 접어들어서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전동 열차들이 가득한 이 닛포본선 합류 구간에 엔진 소리를 내뿜으며 웅장하게 등장하는 히타히코산선 디젤 열차는 승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열차에 비해 소박한 히타히코산선의 역들.


  짧게는 2량에서 길게는 4량까지 운행하는 히타히코산선 열차. 거기에 맞춰 승강장은 길어졌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원맨열차 운행과 승강장 폭이다. 같은 폭이라고 하더라도 길이가 길어지면 더 좁게 느껴지는 착시현상이 발생하는데 바로 이 히타히코산선의 승강장이 그런 모습으로 보인다.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이 많아져서 그런지 열차가 출발할 때까지도 여전히 승객들이 승강장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시골 철도라고 하기에는 승객이 꽤 많은 히타히코산선.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면 그렇게 마을이 많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 자리에는 시골 철도에서 보는 듯한 전원적인 풍경이 펼쳐져있다.


교행을 위해 기다리는 동안 역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히타히코산선의 역도 여기에 맞춰 고풍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역사가 많다. 특히 교행을 할 수 있는 역 가운데는 규모가 큰 역이 제법 있는데, 역사가 마치 고택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역이라는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다. 일본에는 철도 부근에도 꽤 많은 집들이 있기 때문에 때로는 역사 건물과 가정집이 분간이 잘 안 될 때가 많다. 특히 역사 건물이 가정집과 비슷한 형태라면 더욱 그렇다.


기와집을 보는 것 같은 역사가 인상적인 역.


  승강장만 없다면 철길에 가까이 붙어있는 집이라고 해도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히타히코산선은 이처럼 역에 내려봐야 느낄 수 있는 운치 있는 풍경이 많다.


가건물처럼 보이는 대합실. 그 높이에 맞게 올려놓은 역명판이 눈에 띈다.


  한편 가건물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대합실도 눈에 띄는 장면이다. 특히 천장 높이에 맞게 역명판을 상당히 높게 올려놓은 장면도 다른 역과의 차별성을 추구하려는 모습으로 보인다. 노선도 상에는 똑같이 하나의 역으로 표시가 되어있지만, 이처럼 우리에게 풍기는 인상은 그 어떤 역도 같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다른 노선과 만나서 규모가 커진 다가와고토지역.


  히타히코산선의 중간 종착역인 다가와고토지역. 여기는 승강장과 승강장 사이에 작은 정원을 만들어 놓았다. 고토지선이 합류하는 다가와고토지역도 역명판에 역 번호가 2개 있다. 이 역을 지나면 역명판에 역 번호를 볼 수 없다. 그만큼 열차의 빈도도 급격하게 낮아진다.


당분간 볼 수 없는 역들.


  그나마 소에다역까지는 열차라도 볼 수 있지만, 그 이후에 나오는 역은 더 이상 열차가 갈 수 없다. 공교롭게도 거기에는 마치 현판을 보는 듯 멋진 글씨가 인상적인 역과(치쿠젠이와야역, 좌측 사진) 규슈 지역에서 유일하게 현 경계에 위치한 역(호슈야마역, 우측 사진)도 포함되어 있다. 


현재 요아케역에서 히타히코산선은 이용할 수 없다.


  그리고 다른 노선인 규다이본선에서만 이용 가능한 요아케역도 있다. 히타히코산선의 끝은 계속 멈춰 있으라는 빨간불 신호만 들어와 있다. 그 신호의 불은 언제 바뀔 수 있을까? 다시 요아케역에서 열차로 고쿠라역까지 갈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아직은 기대하기가 어렵다.



매거진의 이전글 끊어진 철도를 복구하기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노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