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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방랑객 Feb 25. 2020

마지막 역인데 마지막 같지 않은 역

사세보선 - 사세보역 (feat. 타비라히라도구치역)

  어떤 회사에서 운영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일본의 최서단 역. 그 가운데 JR 소속으로 가장 서쪽에 자리한 역은 우리에게도 나름 잘 알려져 있는 사세보역이다. 그런데 사세보역을 가보면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사세보역은 마지막 역이라는 이미지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JR 노선에서는 가장 마지막 역인 사세보역.


  철도는 더 이어지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사세보역의 역명판은 마지막 역임을 알려주고 있다. 사세보역의 열차 움직임을 잘 관찰해보면 이 역에서 JR 소속 열차가 서쪽으로 더 나아가는 경우는 없다. 즉, 사세보역의 서쪽으로는 다른 철도 회사의 노선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햄버거로 유명한 사세보.


  사세보역이 있는 사세보 지역은 예전부터 미군의 영향으로 햄버거가 유명한 동네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역을 빠져나오면 햄버거와 관련된 익살스러운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다. 입벌린 곳에 머리를 넣으면 마치 먹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HELP ME'라고 적어놓은 것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이다. 한편, 일본어인 '助けて!(도와줘)'가 아니라 영어로 적어놓은 것도 미군의 영향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최서단 역이지만 JR이 붙어있던 사세보역.


  일본 최서단이라는 표현은 사세보역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극단 역 가운데서 가장 오기 쉬운 역인 사세보역. 그만큼 이곳을 찾는 승객도 많아서 그런지 다른 역에 비해서 최극단 역이라는 안내를 더 많이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사세보역에서 더 이어지는 철도가 있기 때문에 이곳을 최서단 역이라고 생각하는 승객들이 없을까봐 우려한 것처럼 말이다.


다양한 형태로 최서단을 기념하고 있는 사세보역.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최동단 역에 대한 표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최동단 역에 대해 언급한 것처럼 보이는 이 안내판에도 히가시네무로역의 위치만 대략적으로 나타냈을 뿐 네무로역에서와 같이 경위 표기는 볼 수 없었다. 이 모습을 네무로역이 봤다면 서운하게 느끼지 않을까 싶다.


목각으로 만들어놓은 최서단 역 푯말. 실내에 있다가(좌측) 실외로 옮긴 상태(우측)다.


  다른 최극단 역은 모두 승강장에 세로로 된 푯말이 있었지만, 특이하게도 최서단 역인 사세보역은 승강장이 아닌 대합실 한편에 이 푯말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푯말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그냥 통과했던 기억이 난다. 그나마 사세보역이 특급열차도 자주 다니고, 다른 최극단 역에 비해 열차 빈도도 높아서 망정이지 한 번 오는 것도 힘든 역이었다면 힘이 빠졌을 것 같다.

  그런데 이 푯말은 움직일 수 있게 만든 것인지, 방문할 때마다 위치가 다르게 있었다. 이 푯말은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대합실 안쪽에 햄버거로 만든 안내판과 같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이제는 출구 밖에서 일본 지도가 대략적으로 그려진 안내판과 함께 자리 잡고 있었다.


사세보역 서쪽으로 더 이어지는 마츠우라 철도.


  한편 사세보역이 최서단 역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제3 섹터 철도인 마츠우라 철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마츠우라 철도도 JR 소속이었지만, 제3 섹터로 전환하면서 JR 노선 기준으로 봤을 때는 사세보역이 의도치 않게 가장 서쪽에 있는 역이 되어버렸다.

  마츠우라 철도 역시 JR선으로 따로 진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사세보역이 종착역으로써 역할을 하고 있다. JR은 전기 설비를 갖춘 구간이지만, 마츠우라 철도는 전기 설비가 갖춰지지 않은 비전철 구간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점이다. 사세보역만 보면 JR선과 마츠우라 철도가 같은 노선처럼 이어지는 것 같아도 이렇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단지 같은 장소에만 있었다.


마츠우라 철도는 일본 본토에서 가장 서쪽을 달리는 철도다.


  오키나와에서 다니고 있는 유이레일은 모노레일이라서 철도의 범주에서 제외하는 것인지, 아니면 조금 더 최서단을 부각하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츠우라 철도의 입구 계단에는 다음과 같이 일본 최서단 철도라는 글귀를 볼 수 있다. 최서단 철도의 시작은 사세보역. 이 노선은 본토의 최서단인 타비라히라도구치역을 거쳐 다시 동쪽으로 이동한 끝에, 이마리역과 아리타역까지 이어진다.


마츠우라 철도 노선도 및 주요 역 위치.


  마츠우라 철도는 지도에서 보는 것과 같이 JR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끈끈한 관계다. 다른 어떤 노선과도 접점이 없는 마츠우라 철도. 그러나 JR과는 무려 역에 걸쳐서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JR 소속 아리타역을 제외하면 모두 종착역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서로 접하는 역들이 하나가 되어 마치 순환선이 된 것처럼 보인다.


그 가운데 가장 서쪽에 자리한 역은 타비라히라도구치역.


  사세보역도 최서단 역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최서단 역이라 할 수 있는 타비라히라도구치역 역시 마지막 역과는 거리가 있는 역이다. 이 역의 역명판을 보면 양 옆으로 역들이 이어지는데, 공통점이 있다면 '타비라'라는 지명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타비라히라도구치역(원래 타비라히라도구치역이 국철 소속일 때는 히라도구치역이었다)은 두 개의 지명이 붙어서 하나의 역이 되었는데, 뒤에 붙은 '히라도'는 또 다른 하나의 섬이다.(위 지도 참조) 그래서 '히라도'가 아니라 입구라는 의미의 '히라도구치'가 붙은 것이다. 또 인접한 두 역에는 '타비라'가 한자(田平)로 되어있지만, 타비라히라도구치역은 보는 것처럼 히라가나로 적혀있다.

  '타비라'의 '平'와 '히라도(平戸)'의 '平'가 겹치기 때문에 고안해 낸 표기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최서단 역인 만큼 이름이 특이하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다는 효과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역 이름 하나에도 많은 효과를 기대하며 아주 많은 공을 들였음을 보여주는 타비라히라도구치역. 이 역에는 사세보역 만큼이나 별난 푯말을 볼 수 있다.


이곳에는 JR이 빠진 최서단 역 푯말을 볼 수 있다.


  승강장은 물론, 개찰구 입구 그리고 역 광장까지. 어디 하나 빠진 곳이라도 있을까봐 노심초사한 듯한 푯말이 군데군데 붙어있다. 그리고 그 모양이나 서체, 표기방식까지 모두 달라서 보는 재미까지 더했다. 그것은 사세보역과 매우 흡사했다. 차이가 있다면 사세보역에는 JR이 빠지지 않았지만, 타비라히라도구치역에는 JR을 빼고 진짜 일본 최서단 역이라는 것을 강조한 점이 아닐까?


타비라히라도구치역도 종착역이 아닌 중간역이다.


  타비라히라도구치역은 마치 열차가 U턴을 하듯 눈에 띌 정도로 심하게 굴곡져 있다. 즉, 이 역은 이렇게 급격하게 꺾이는 선로 때문에 중간 역임에도 불구하고 최서단 역의 지위를 얻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지금 타비라히라도구치역에는 보이는 열차와 같이 1량 편성의 원맨 열차만 볼 수 있는 형태다. 그만큼 열차가 자주 다니지도 않고, 운행 빈도도 그렇게 높지가 않아서 운영에는 상당한 애로사항이 많을 것이다.

  어쩌면 이 노선이 JR에서 제3 섹터로 바뀐 것도 이런 애로사항이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더 눈에 띄기 위해 역 이름을 길게 늘어뜨렸으며, 그 역에는 다양한 볼거리로 승객을 유도했던 것이다. 승객이 점점 줄어드는 현재 상황을 비관하기보다는 주어진 조건을 잘 활용해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승객들에게 마츠우라 철도를 홍보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그렇게 최서단 역들은 마지막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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