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스키마쿠라자키선 - 니시오야마/야마카와/마쿠라자키역
일본 최극단 역 가운데 가장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는 역은 최남단 역일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최북단은 유인역이자 최북단 노선의 종착역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 왓카나이역에게 모든 의미가 전달되었다. 그에 비해 최동단과 최서단은 각각 의미를 부여해서 두 역 이상이 최극단의 의미를 부여받았다. 최동단의 경우 네무로역과 히가시네무로역이 각각 유/무인역으로써 최동단 역이라는 지위를, 최서단의 경우 JR과 마츠우라 철도라는 운영 회사를 기준으로 최서단 역이라는 지위를 얻었다.
그런데 최남단 역은 유/무인역에 의미를 하나 더 부여해서 최남단 노선의 마지막 역이라는 의미까지 더해서 기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최남단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세 역이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는 오키나와를 제외한 일본 본토에서 최남단 역인 니시오야마역을 시작으로, 최남단 유인역인 야마카와역, 그리고 최남단 역에만 별도로 존재했던 최남단 노선 마지막 역인 마쿠라자키역을 각각 살펴보려고 한다.
일본 본토에서 가장 아래에 위치한 역은 니시오야마역이다. 이 역은 양 옆으로 모두 인접역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노선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중간에 자리한 역임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역명판 옆에는 별도의 특별한 역명판이 하나 더 있다. 거기에는 JR이 포함된 일본의 최남단 역이라는 문구와 니시오야마역이 아주 크게 적혀있다.
니시오야마역을 지나면 어느 방향이나 상관없이 아주 미세하게나마 북쪽으로 방향이 꺾이고 있다. 특이하게 일본의 최극단 역은 북쪽을 제외하고는 마치 U턴을 하듯 동일한 방향으로 살짝 움직였다. 그것은 마치 의도한 것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최북단 역인 왓카나이역처럼 승강장의 끝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최남단 푯말. 최북단과 달리 여기에는 JR이 더 적혀있다. 이 역은 다른 역과 달리 주변이 뻥 뚫려있어서 배경 역시 훌륭하다. 그래서 다른 역에서 볼 수 없는 포토 스폿도 볼 수 있다.
안내문에는 사진 찍는 것에 대해서 제제하는 내용은 없다. 단, 열차가 출발하거나 도착할 때 열차의 안전을 고려해달라는 최소한의 주의문에 불과할 뿐이다. 사실 이 역은 최남단이라는 상징성 외에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무방한 역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것도 아니고 통과하는 열차가 많은 역도 아니다. 주변의 다른 대중교통은 찾기도 힘들 정도로 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역이다.
그것을 반영하는지 승강장도 최소한의 조건인 1선 1승강장에 불과하며, 상주하는 역무원도 없는 무인역이다. 이렇게 최남단 역이 무인역으로 남아있어서 최남단 유인역도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네무로역처럼 최남단 유인역이 마지막 역이 아니다 보니 마쿠라자키역은 최남단 노선의 마지막 역이라는 의미까지 부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승강장 바닥에 친절하게 마킹을 해놓은 포토 스폿. 그곳에서 담아본 사진은 다음과 같다. 가이몬다케라 불리는 산이 최남단 푯말과 어우러져 하나의 광경을 만들어내는 니시오야마역. 이 한 장의 사진을 위해서 사람들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아무것도 볼 것이 없는 니시오야마역까지 왔던 것이다.
다른 역보다 자신에 대한 어필을 많이 하고 있었던 니시오야마역. 무인역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 노선의 관할인 JR규슈 철도 역시 그런 상황을 아는지 무인역인 니시오야마역에 이렇게 큰 주차장을 마련해놓았다. 이곳은 와이파이도 설치해 놓아서 인터넷도 잘 된다.
하루에 진입하는 열차는 상하행 합해도 10대 남짓. 그러나 열차가 들어올 때는 이렇게 도심의 큰 역 부럽지 않게 사람들로 북적인다. 조만간 승강장도 더 크게 만들어야 할 것만 같다. 최근에는 일본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제법 눈에 띌 정도로 니시오야마역은 이제 더 이상 일본인이 찾는 철도 성지가 아니었다. 철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꼭 한 번쯤은 방문해야 할 장소가 되어버린 것이다.
최동단 역의 네무로역과 같은 역할을 하는 최남단 역은 야마카와역이다. 이 역은 실질적인 최남단 역인 니시오야마역에서 두 역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야마카와역의 인근 역은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진 이부스키역이 있다. 야마카와역도 이부스키 시내에 자리 잡은 역으로, 출퇴근 시간 대에는 이부스키와 야마카와를 오가는 셔틀 열차가 있을 정도로 유동인구가 제법 되는 역이다.
그에 비해 상당히 한산한 야마카와역. 사실 이 역은 최남단 역이라는 이미지가 거의 없어서 니시오야마역처럼 북적대는 분위기는 느끼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이 역에는 최남단 유인역이라는 푯말이 꿋꿋하게 출구 한 편에 자리 잡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무인역에 가까워 보이는 야마카와역. 그런데 여기에는 상주하는 역무원이 있었던 것이다.
역무원이 있음을 알 수 있는 대합실. 창구도 자리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역무원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극히 한정적이다. 그러니까 하루의 대부분을 무인역으로 보낸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역을 최남단 유인역이라고 하는 것은 하루 중에 몇 시간이라도 유인역의 모습을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야마카와역에서 역무원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4시간. 그것도 평일에 한해서다. 주말은 하루 종일 무인역이 되는 역이고 평일에도 출퇴근 셔틀 열차가 다닐 때나 역무원을 볼 수 있는 역인 것이다. 유인 개찰구도 있지만 이 개찰구가 제 역할을 하는 것도 고작 4시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열차를 타고 내릴 때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는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데,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열차도 9시에서 18시 사이에 야마카와역에 정차하는 열차에 한해서다.
유인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무인역과 같은 이미지의 야마카와역. 그러나 단 4시간이라도 상주하는 역무원이 있기에, 당당하게 최남단 역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우연의 일치인지 최남단 역으로 지정된 니시오야마역과 야마카와역은 모두 노선의 중간에 있는 역들이다. 그래서 마쿠라자키역도 최남단 노선의 마지막 역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일본 최남단 노선의 마지막 역인 마쿠라자키역은 최남단 역이 아니다. 그것은 최남단 노선인 이부스키마쿠라자키선이 니시오야마역을 찍고 다시 위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마치 최서단 역인 타비라히라도구치역을 거쳐서 다시 동쪽으로 진행하는 마츠우라 철도를 보는 것처럼.
어쨌든 남쪽을 돌고 다시 살짝 북쪽으로 올라온 최남단 노선은 서쪽으로 더 이어지다가 결국 마쿠라자키역에서 끝을 보여준다. 이 역도 니시오야마역과 마찬가지로 1선 1승강장으로, 마쿠라자키역에 들어온 열차가 온 방향으로 빠져나가지 않으면 다음 열차가 들어올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그만큼 마쿠라자키역까지 운행하는 열차 빈도가 낮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최남단 노선인 마쿠라자키역. 이곳에는 최북단 노선의 종착역이자 일본 최북단 역인 왓카나이역을 만날 수 있다. 비록 최남단 역은 아니지만 노선의 끝과 끝이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는 두 도시는 자매결연까지 맺었다. 그러니까 철도가 무려 3,100km 가까이 떨어져 있는 두 도시를 이어준 것이다.
왓카나이역은 북과 남의 시종착 역으로, 왓카나이역이 앞에 있지만 여기서는 남과 북의 시종착 역이라는 이름으로 마쿠라자키역이 먼저 적혀있는 것도 비교해볼 부분이다. 빨간색은 JR규슈 철도를 상징하는 색으로, 반대편의 왓카나이역은 JR홋카이도 철도를 상징하는 옅은 녹색 배경으로 되어있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열차도 니시오야마역과 마찬가지로 하루 10대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들어온 열차는 다음 운행까지 마쿠라자키역에 머무르기 때문에 열차를 구경 나온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중에는 미래의 수요자가 될 수 있는 어린아이들도 꽤 있다. 이곳에 나온 아이는 열차를 탈 때마다 철도에 대한 좋은 기억을 안고 탈 것이다.
지금 있는 것을 계속해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꾸는 우리나라 철도에서 과연 어릴 때 열차에 올랐던 추억을 떠올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새 것이 좋을 때도 있지만, 과연 무조건 좋은 역할만 하는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과거의 흔적마저 지워버리는 우리나라 철도. 과연 우리는 나중에 자녀들과 공감을 가질 수 있는 추억을 공유할 수 있을지 우려가 앞선다.
최남단 노선의 시작이자 마지막 역임을 알리는 푯말들. 최남단 역을 구경했다고 하려면 마쿠라자키역까지 밟아야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해당 역마다 기념하는 푯말이 있고, 그 디자인은 역마다 다 다르며, 담아낼 수 있는 풍경 역시 달라서 색다르기 때문이다. 마쿠라자키역은 최극단 역에서 볼 수 있었던 푯말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푯말을 만들어서 여기까지 온 승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최극단 역을 돌아보며, 가장 부러웠던 것은 우리나라 철도 회사가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최극단을 다양한 의미로 재해석 한 모습들이었다. 이 역들은 억지라고 할 수도 있을 정도로 나름의 가치를 부여하고 또 사진을 담을 수 있게 기념 푯말을 설치하면서 외부인의 방문을 유도하고 있었다.
비록 유동인구도 적고 접근성도 떨어지지만 이렇게 기념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놓음으로써 승객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또 그곳까지 찾게 만들었다. 그것은 꼭 휘황찬란한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소소하게 자신의 발자취를 남길 수 있는 기록물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최극단 역의 대부분은 1선 1승강장의 형태로, 새것을 추구하는 우리나라 철도였다면 진작에 사라졌을 역이었다. 그러나 이 역들이 지금까지 사진 세례를 받으며 이렇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최극단이라는 상징성을 잘 살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였다면 과연 왓카나이 시와 마쿠라자키 시가 자매결연을 맺을 수 있었을까? 타비라히라도구치역은 역이름을 길게 늘이면서까지 주목을 받으려고 애썼을까? 니시오야마역과 히가시네무로역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