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에츠 신칸센 - 가라유자와역
일본에서 가장 비싼 열차이자 가장 빠른 열차. 바로 신칸센이다. 그런 신칸센을 스키장이 영업하는 동안만 볼 수 있는 역이 있다. 일반적으로 신칸센이라 함은 장거리 운송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일본에서 신칸센은 장거리 노선뿐만 아니라 단거리 노선도 있고, 이번에 소개할 역처럼 특이한 운행을 하는 구간도 존재한다.
가라유자와역은 도쿄에서 에치고유자와, 니가타 등으로 이동하는 죠에츠 신칸센에 속해있는 역이다. 역의 이름인 가라유자와는 역 바로 앞에 이어진 가라유자와라는 스키장의 이름이다. 스키장의 영향이었는지 여기로 가는 열차는 눈이 내리는 겨울철과 이른 봄에 한해서만 볼 수 있다.
가라유자와역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역은 에치고유자와역으로, 이 역의 노선도에서 가라유자와역을 찾으면 신칸센 노선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재래선 노선도에서 찾을 수 있다. 게다가 그 표기에는 임시역이라는 표시까지 붙어있다. 재래선에 표기가 되어있다고는 하지만(실제로 재래선인 죠에츠선 소속이다), 가라유자와역은 재래선 열차가 아닌 신칸센 열차만 정차가 가능하다.
가보기 전까지는 베일에 싸여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른 신칸센 역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가라유자와역. 이 역에서 다음 역인 에치고유자와역까지는 불과 3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것도 열차가 빠르게 달리는 것도 아니다. 에치고유자와역의 노선도에서 표기된 것처럼, 정말 재래선 열차에 있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물론 열차는 신칸센이지만 말이다.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위해서 일본 철도 시간표 사이트 중 하나인 ekitan에서 가라유자와역 시간표를 살펴보았다. 에치고유자와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가라유자와역에 도착하는 열차는 그 이상 진행하지 않고, 가라유자와역을 종착역으로 운행을 끝냈는데, 가라유자와역을 거치지 않는 열차들은 니가타역까지 나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말은 가라유자와역이 노선 중간에 자리한 것이 아니라 지선 구간으로 별도의 선로를 사용하고 있음을 추측해볼 수 있는 장면이다. 운행 시간 역시 단 3분에 불과해서, 처음에는 눈을 의심할 정도다.
한편 가라유자와역으로 가는 열차는 운행일 주의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다른 열차도 특정 기간에만 운행을 하는 열차가 있어서 운행일 주의 표시는 볼 수 있지만, 가라유자와역으로 향하는 열차들은 단 한 대도 빼놓지 않고 저 문구가 있다. 그것은 해가 바뀌어도 동일한 형태다.
일본도 2019년에 비해 눈이 적게 내린 영향인지(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인지) 2020년에는 조금 이른 시기에 열차 운행이 끝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라유자와역은 이처럼 철도 본연의 이유 때문에 운행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가라유자와라는 스키장의 영업에 크게 좌우됨을 알 수 있다.
가라유자와역에는 보통열차가 들어올 수 있는 승강장이 없다. 이곳에는 오직 신칸센만 정차할 수 있지만, 다음역인 에치고유자와역까지는 신칸센 요금을 받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융통성 있는 요금으로 한 명의 승객이라도 더 받으려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승객의 입장에서도 재래선 보통열차를 이용하는 금액과 같아서 신칸센이지만 이용하는데 부담이 없다. 또 평소에는 타기 어려운 신칸센을 저렴한 요금에 이용해볼 수 있기 때문에 이색적인 체험이 될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신칸센에도 자유석이 잘 갖춰져 있어서 재래선 보통열차처럼 좌석 예약 없이 열차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라유자와역에 들어온 열차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도 더 나아갈 수 없는 운명에 처해있다. 왜냐하면 철도의 끝을 알리는 지점이 가라유자와역 승강장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라유자와역 역명판의 인근역은 에치고유자와역 한 역만 표기되어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가라유자와역은 가라유자와라는 스키장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했다. 거기에 걸맞게 가라유자와역 승강장에서 대합실로 올라오면 보이는 것이 다름 아닌 가라유자와다. 이곳에는 외국인도 많이 찾는지 영어와 한국어, 중국어는 물론 태국어 표기까지 볼 수 있었다.
빨간 바탕의 가라유자와 안내판과 바닥 카펫이 초록 바탕의 JR동일본 안내판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그 두 곳이 만나는 곳은 마치 국경선을 건너는 검문소를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개찰구가 자리하고 있다. 열차가 그렇게 자주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열차 출발 시간이 다 되어갈 때 즈음, 스키장에서 스키를 즐겼던 관람객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해서 긴 줄을 형성한다.
입구에 역이 있을 정도로 접근성이 훌륭한 가라유자와. 그것을 잘 활용한 마케팅이 눈에 띈다. 도쿄에서 당일치기 스키도 가능함을 보여주는 신칸센과 스키장(곤돌라) 이용권 세트는 분명 겨울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교통비가 비싼 일본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10만 원 내외의 돈으로 하루 동안 스키를 탈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구미가 당길 내용이다.
역에서 내린 지 얼마 안 되어서 사실 스키장이라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던 가라유자와의 입구. 그러나 그 느낌은 조금만 더 이동하면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스키는 장비가 많이 필요한 스포츠여서 스키장 주변에는 항상 장비를 대여해주는 상점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 모습을 신칸센에서 내려서 불과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곤돌라 탑승장도 이렇게 가까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 오면 정말 스키장에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게 된다. 신칸센을 타고 스키장에 올 수 있다는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가라유자와역. 우리나라를 비교해보면 강원도 스키장 주변으로 경강선 고속철도가 지나가고 있는데 거기서 스키장으로 노선을 하나 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일반적인 형태의 역은 아닌 것이다.
이 역은 오래된 역처럼 보이지만 JR로 민영화가 된 이후인 1990년에 개업한 것도 민간 스키장에 역을 만드는 것이 그만큼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언젠가 우리나라도 가라유자와역과 같은 스키장 역이 만들어지는 날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