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카이도/도호쿠 신칸센 - 도쿄역
철도가 발달한 일본. 그중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끊임없이 오가는 도쿄의 중심 도쿄역은 지금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다. 공간은 한정되어 있지만, 늘어나는 인파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2층 이상의 고상 홈은 물론, 지하 홈까지 만들 수 있는 공간은 다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역에서 재미있는 규칙을 찾을 수 있다.
도쿄역은 JR 소속 열차 승강장만 해도 엄청난 규모다. 이렇게 많은 승강장에 열차들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는데, 놀랍게도 그 열차들마다 승객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 차 있다. 열차 한 대가 지나갈 때마다 마치 파도가 밀려들 듯 엄청난 인파가 승강장으로 우르르 밀려 나온다.
이 많은 열차들과 승객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시간을 가리지 않고 하루 종일 사람들로 북적인다는 사실은 충격에 가깝다. 그렇게 많은 노선으로 승객을 분산해도 끝이 없다니,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다고 해도 독에 물이 다 찰 것만 같은 분위기다.
놀라운 사실은 도쿄역이라는 이름을 가진 지하철 역은 단 하나의 노선에 불과하다는 사실. 아니, JR을 제외한 다른 회사 소속 가운데 도쿄역을 지나는 노선 자체가 도쿄 메트로의 마루노우치선뿐이다. 도쿄역의 반대편에 자리한 신주쿠역과는 또 다른 분위기다.
JR 소속의 노선만 있음에도 승강장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노선이 얽혀있는 도쿄역. 수시로 열차가 드나드는 도쿄역에서 열차 시간을 확인하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별생각 없이 승강장에 올랐다가는 다른 열차를 타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나마 도호쿠 신칸센의 경우는 행선지마다 열차 모양이라도 달라서 구분을 할 수 있지만, 최근에 열차가 완전히 N700계로 통일된 도카이도 신칸센은 다른 열차를 타도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까지 있다.
보는 것만 해도 정신이 사나운 도쿄역 승강장 약도. 그런데 약도를 잘 보면 신칸센은 승강장 끝에서 선로가 단절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신칸센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JR 도카이에서 운영 중인 도카이도 신칸센과 JR 동일본에서 운영 중인 도호쿠 신칸센은 엄연히 다른 노선이다.
두 노선은 전기 공급 방식부터 달라서 노선 간 직통 운행조차 되지 않는다. 즉, 신칸센이라면 도쿄역은 반드시 종착역이 되거나 시발역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자연스럽게 신칸센 도쿄역은 터미널식 승강장이 되어서 왔던 길을 그대로 다시 나아가야 하는 운명이다.
그것은 도쿄역에 0km 포인트라는 기점 표기도 만들어 주었는데, 이 표기는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다니는 도쿄역이지만 일상에 치여서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볼 수 있는 이런 푯말들을 놓치고 지나가고 있었다. 아니, 이런 것까지 볼 여유가 사라져 버렸다. 다람쥐가 쳇바퀴 돌 듯, 도쿄역은 일상에 치인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챗바퀴를 만들어버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수많은 열차가 드나드는 도쿄역. 그런데 출발 열차 시간을 유심히 살펴보면 공통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도호쿠 신칸센은 거의 규칙이라고 할 정도로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열차 출도착 시간이다. 4 배수로 끊어지는 도호쿠 신칸센의 출발 열차는 어떤 시간의 열차를 대조해 보아도 예외가 존재하지 않는다.
더 놀라운 사실은 열차가 도쿄역에 도착하는 시간까지도 4분 단위로 정확하게 끊는다는 것이다. 중간에 열차가 비는 시간도 있지만, 그 간격 역시 4 배수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래서 도호쿠 신칸센 도쿄역 출발 열차인데 10분에 출발하는 열차는 볼 수가 없다. 똑같은 원리로 30분에 출발하는 열차 역시 볼 수 없다. 당연히 모든 열차는 짝수 시간 대에 출발하고 도착하기 때문에 5분 단위 및 홀수 분에 출발하는 열차 역시 볼 수 없다.
이처럼 출발과 도착 시간을 고정시켜놓음으로써 최소한의 승강장을 최대한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렇게 여유조차 없는 빠듯한 운행은 연착이 한 번이라도 발생하면 그 뒤 열차들에게 연착이라는 치명적인 도미노 효과를 불러일으키지만 일본 철도는 연착이 그렇게 흔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껏 큰 문제없이 잘 이어져온 것 같다.
한편 도카이도 신칸센은 도호쿠 신칸센에 비해 열차 간격이 훨씬 조밀한데, 도호쿠 신칸센에 비하면 규칙이 조금 결여되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가장 많은 빈도를 자랑하는 노조미호만 끝 단위가 0분 출발 열차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중간에 한 대씩 운행하는 히카리호와 고다마호의 경우 출발 시간이 매시 고정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정차역이 다른 세 등급의 열차가 유연하게 흘러갈 수 있는 것은 히카리호와 고다마호가 정확히 출발 시간이 고정되어 있는 영향이 크다. 히카리호의 경우 매시 3분과 33분, 고다마호의 경우 매시 26분과 56분 출발로, 이 열차들 내에서도 정차역(히카리호)이나 운행구간(고다마호)이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노조미호의 경우 히카리호와 고다마호가 운행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10분에 최대 3대까지 운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장 비싸면서 가장 장거리를 운행하는 신칸센이 이 정도로 자주 운행하다 보니, 도쿄역은 시간 대를 가리지 않고 엄청난 인파들로 숨쉬기조차 힘든 것이 당연했다.
도쿄역은 출구도 많고 통로도 많지만 그곳마다 마치 혈관 속의 피와 같이 멈추지도 않고 비어있지도 않다. 도대체 이 많은 승객들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그저 놀랍기만 하다. 도쿄역의 신칸센 승강장은 총 10곳. 그 가운데 최대 3~4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도카이도 신칸센이 6곳(14번~19번)의 승강장을 사용 중이고, 도카이도 신칸센보다는 긴 간격으로 운행하는 도호쿠 신칸센이 4곳(20번~23번)의 승강장을 사용하고 있다.
도호쿠 신칸센의 경우 오미야역까지 공통으로 운행하는 호쿠리쿠, 죠에츠, 야마가타, 아키타 신칸센까지 승강장을 같이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도카이도 신칸센보다 적은 승강장을 사용한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두 열차를 한 번에 운행하는 병렬연결(일본에서는 병결 <併結> 또는 병합<併合>이라 한다)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열차가 들어오는 만큼, 도쿄역 승강장은 열차를 타러 가는 승객과 열차에서 내린 승객이 뒤엉켜서 마치 전쟁통의 피난길을 보는 것 같다. 도쿄역 승강장이 들어오면 반드시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야 하는 터미널 식 승강장 구조라서 출발 열차보다 더 많은 열차가 승강장에 들어온다.
그것은 회송이라고 표기된 안내판을 통해 알 수 있다. 주로 통근 시간이나 막차 시간 대에 회송 열차가 많은 편인데, 열차 운행 빈도 조절 및 열차 점검을 목적으로 도쿄역에 진입 후 더 이상 운행을 하지 않는 열차들이다. 물론 그 반대로 회송 열차로 도쿄역에 진입해서 그날 운행을 시작하는 열차도 있다.
마치 지하철 승강장을 보는 듯 쉼 없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는 신칸센 도쿄역 승강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객 동선이 꼬이지 않는 이유는 바닥에 있었다. 최근 우리나라 도로 중 복잡한 교차로에서 차량이 원활하게 자신이 갈 행선지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그어놓은 유도선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유도선으로 인해 급정지나 급하게 차선을 변경하는 일이 줄어들어서 사고율이 줄어든 효과를 본다고 했다.
그런 논리로 유도선을 따라 줄을 서면 내가 타야 할 열차도 헷갈리지 않고 앞사람과 줄 서는 것 가지고 다툴 일도 없어진다. 이렇게 유도선이 중요한 이유는 신칸센이라고 하더라도 자유석을 많이 확보해놓았기 때문이다. 특히 모든 역을 다 정차하는 완행급의 신칸센은 열차 좌석의 절반 이상이 자유석이라서 먼저 줄을 선다는 것은 그만큼 앉아갈 확률이 높음을 의미한다.
서울 강남대로에서도 광역 버스를 타기 위한 대기 줄이 바닥에 표기되어 있는데, 그와 같은 모습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우리나라 철도는 자유석이 없거나 있다고 해도 극히 소수의 좌석에 한해서 발행하기 때문에 열차를 기다리는 도쿄역의 긴 줄이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게 짧은 간격으로 들어오는 신칸센이 객차 청소도 하지 않고 그대로 다시 다음 일정으로 가는 것도 아니다. 도호쿠 신칸센이 4분 간격으로 열차를 운행하는 데는 열차 청결에 대한 시간까지 고려했음이 분명했다. 열차가 들어올 때가 되면 다음과 같이 일렬로 직원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승객이 빠져나가기 무섭게 맡은 객차를 순식간에 정돈하고 나온다. 그리고 다시 도쿄역을 떠나는 승객이 열차에 오르고 그 열차는 도쿄역을 빠져나간다.
도호쿠 신칸센의 경우 승객이 열차에서 다 빠져나오는데 대략 3~5분 정도 소요되고, 청소부 직원이 열차를 청소하는데 불과 3~5분. 그리고 다시 새로운 승객이 열차에 탑승하는데 3~5분. 이 시간 동안 열차는 방향을 바꿔 출발 준비를 한다. 그렇게 열차가 도쿄역 승강장에 머무르는 시간은 대략 12분. 왜 4분 단위를 그렇게 고집하는지 알 수 있었던 대목이다.
도호쿠 신칸센보다 훨씬 조밀한 운행을 하는 도카이도 신칸센의 경우도 직접 시간을 재어보지는 않았지만, 도호쿠 신칸센에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열차 정비를 마치고 있었다. 이렇게 열차가 들어오고, 승객이 내리고, 정비하고, 또 승객이 타고, 열차가 출발하는 도쿄역. 그 모습만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어도 도쿄역에서 한 시간은 금세 지나가버린다. 쉼 없이 이어지는 이런 모습은 그 어떤 역보다 더 역동성이 있어서 마치 사람의 심장이 뛰는 것 같았다.
이렇게 시한폭탄이 터지기 직전의 극한 상황임에도 도쿄역의 열차 빈도는 줄이기가 어려워 보였다. 수시로 드나드는 열차라고는 하지만 이미 만석인 열차도 있고 만석에 임박한 열차도 있기 때문이다. 아주 한산한 시기에도 이 정도인데, 골든 위크나 연말과 같이 피크 타임에는 이 열차에 오르지 못해 발을 동동거리는 승객이 많은 것이 어쩌면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