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칸센'은 철도를 사랑하는 일본인에 있어서 그 어떤 단어보다 큰 자부심을 느끼는 단어다. 일본은 열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철도는 그 어떤 교통수단보다도 경쟁력을 갖추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서 철도가 발달한 것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 가운데 신칸센은 철도 교통의 정점을 찍는 열차로, 조금 큰 도시라면 어느 지역에서나 '신칸센이 우리 지역에도 왔으면' 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희망 섞인 푯말을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신칸센이라 하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모여사는 가장 큰 섬인 혼슈의 전유물과 같은 노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칸센이 처음 개통한 곳도 혼슈고, 노선의 확장도 혼슈부터 이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가장 많은 노선을 보유한 섬은 혼슈다. 혼슈 이외에서 신칸센을 만날 수 있었던 지역은 우리나라와 가까이 위치한 규슈 지역에서다. 신칸센이 처음 일본에 등장한 이후로 11년이 지나서인데 이는 규슈 북부지역의 후쿠오카현에만 해당하던 이야기다.
규슈와 반대편에 위치한 홋카이도는 처음 신칸센이 등장한 지 50년이 훨씬 지나고 난 후에야 규슈에 이어 세 번째로 신칸센이 운행하기 시작했다. 혼슈와 아주 가까이 있어서 다양한 교통편이 연결되어있던 규슈와 달리 홋카이도는 혼슈와 연결된 세이칸 터널이 불과 30년 전(1988년)에 개통했을 정도로 섬 중에서도 섬이었던 지역이다. 그런 이유에서 아직까지 혼슈와 홋카이도를 잇는 도로나 교량은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배편과 항공편을 제외하면 혼슈로 넘어가는 유일한 연결고리인 세이칸 터널. 규슈와 달리 하나의 터널을 건설하는데도 상당한 난공사가 있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신칸센은 재래선 구간이었던 세이칸 터널을 잠식하게 된다. 이는 우리나라 고속철도가 새마을호와 무궁화호의 운행 빈도를 급격하게 떨어뜨린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신칸센이 재래선 구간을 잠식하면서 홋카이도의 도입부는 상당히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홋카이도 신칸센으로 운행하는 열차(좌: E5계, 우: H5계).
홋카이도를 드나드는 신칸센은 기존 도호쿠 지역에서 볼 수 있었던 E5계 열차와 그 열차와 거의 흡사하게 생긴 H5계 열차다. E는 JR동일본에서 나온 계통 이름으로 3자리 숫자를 사용하는 도쿄 이남 지역의 신칸센과 구별하기 위해서 시리즈로 번호를 붙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따라 유사한 디자인의 홋카이도 소속 열차도 H라는 번호를 붙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유사한 디자인을 채택한 것은 도쿄까지 직결운행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현재 홋카이도 신칸센은 전체 운행 시간이 1시간 남짓한 짧은 노선으로, 소속 역도 3개에 불과해서 홋카이도 신칸센 단독으로 운행하기에는 효율이 떨어진다(시작 역인 신아오모리역까지 포함하면 4개). 물론 현재의 모습이 홋카이도 신칸센의 최종 모습은 아니다. 홋카이도의 중심인 삿포로역까지 연결하는 공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홋카이도 신칸센은 3개의 역만 있으나, 이 역은 가운데 끼어있는 기코나이역을 제외하면 역 이름부터 상당히 눈에 띌 정도로 길다. 나머지 두 역은 모두 2개의 지명이 붙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현재 일본에서 가장 적은 수의 승하차 인원을 다투는 오쿠츠가루이마베츠역은 이마베츠(今別)를 한자가 아닌 히라가나로 표기하여서 역 이름이 더 길게 보이게 했다. 이렇게 기존에 있던 역 이름 대신 글자를 길게 늘어뜨리는 것이 최근 만들어지는 역의 특징처럼 느껴지는 부분이다.
신칸센 개통과 함께 운행을 종료하는 침대 열차 및 야간 특급열차.
이렇게 새롭게 생긴 신칸센으로 인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열차는 홋카이도와 혼슈를 오가던 침대 열차와 야간 특급열차다. 홋카이도를 오가는 열차는 해가 진 이후에도 활발하게 움직였는데, 이제 그 길을 신칸센이 걸으면서 이들의 자리는 사라져 버렸다. 이 열차도 처음 세이칸 터널이 개통했을 때 아오모리와 하코다테를 잇던 연락선(배)의 운행을 멈추게 했는데, 이제 신칸센으로 인해 똑같은 운명에 처해져버린 것이다.
홋카이도 신칸센 개통과 함께 운행을 멈춘 슈퍼 하쿠쵸(가운데)호.
침대 열차 및 야간열차뿐 아니라 세이칸 터널을 주 무대로 운행했던 슈퍼 하쿠쵸호 역시 길을 잃었다. 하코다테역에서 볼 수 있었던 특급열차 가운데 유일한 전동 열차였던 슈퍼 하쿠쵸호. 삿포로로 가는 파란 열차들 사이에서 군계일학처럼 눈에 띄었지만 이제 이 열차는 하코다테역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슈퍼 하쿠쵸호가 멈춘 결정적 이유는 홋카이도 신칸센 개통과 함께 기코나이역에서 하코다테역을 잇던 재래선(구 에사시선)이 더 이상 JR 관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지도에도 반영되어서, 그 구간은 다른 색으로 표기가 되어있다. 현재는 제3 섹터 철도인 도난이사리비 철도에 이관된 상황. 제3 섹터 철도로 이관되었다는 뜻은 이 구간도 승객이 급격하게 줄어들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도난이사리비 철도 노선도 및 운임표.
이제 완전히 다른 노선이 되어버린 구간. 여기서 JR이라는 이름은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JR을 이용하면 빨라진 신칸센을 이용할 수 있지만, 슈퍼 하쿠쵸에서 볼 수 있었던 해안을 낀 아름다운 경치는 이제 감상하기 어려워졌다. 그 구간을 감상하려면 도난이사리비 철도의 열차를 탑승해야 한다. 도난이사비리 철도에 편입된 이 구간은 역 이름이 따로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가 바뀌면서 배경이 달라지는 바람에 완전히 다른 느낌의 노선처럼 느껴진다.
역 이름은 바뀌지 않았지만 역 명판은 바꾼 도난이사리비 철도. 비록 신칸센에게 승객을 많이 빼앗겨서 순탄하지 않을 운영이지만 나름대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첫 번째 작업이 바로 역 명판의 교체로 보였다. 기존의 JR 홋카이도는 녹색 바탕(좌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도난이사리비 철도는 그와 거의 보색 관계에 있는 주황색 바탕(우측)이다.
역 번호도 차이를 두고 있는데, JR 홋카이도는 역 이름 우측 하단에 대문자와 숫자를 두 줄에 걸쳐 작성했다. 반면 도난이사리비 철도는 역 이름 좌측 상단에 소문자와 숫자를 한 줄로 작성했다. JR 홋카이도는 히라가나를 크게 적고 있지만, 도난이사리비 철도는 한자를 크게 적었다. 그 외에도 화살표 모양과 안쪽 글씨, 인근 역의 표기방식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역 명판이라도 JR 홋카이도와 차이를 두려는 의지를 볼 수 있었다.
도난이사리비 철도의 열차는 JR 홋카이도 소속의 열차를 양도받아서 사용하고 있다. 물론 JR 홋카이도의 도색을 그대로 사용하는 열차도 많지만 자신만의 디자인으로 새롭게 래핑한 열차도 볼 수 있었다.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전기 설비를 다 갖춘 구간임에도 디젤 열차를 사용하고 있는 점이다.
전동 열차는 최소 2량 편성으로 운행해야 하는데, 디젤 열차는 1량으로도 운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부득이한 선택처럼 보인다. 갖춰놓은 설비도 이용하지 못할 정도로 승객을 기대하기 어려운 도난이사리비 철도의 현 모습이 앞으로도 험난해 보인다.
열차에 사용하는 행선지판은 새롭게 바꾸었는데, 기존 JR 홋카이도 열차 배경에 새로운 행선지판을 적용하니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도난이사리비 철도의 열차는 모두 하코다테역까지는 운행하지만 반대편은 중간 정차역인 가미이소역까지 운행하는 열차와 기코나이역까지 전체 구간을 운행하는 열차로 이원화되어있다. 즉, 기코나이역은 이전보다 열차를 보기가 더 힘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하코다테역과 신하코다테호쿠토역을 이어주는 하코다테 라이너.
한편 하코다테역에서 더 이상 전동 열차를 볼 수 없나 했지만, 이번에는 특급열차가 아닌 보통열차 등급의 전동 열차를 만날 수 있었다. 하코다테역은 아오모리역과 마찬가지로 해안가 쪽에 치우쳐있어서 신칸센이 직접 들어오기에는 무리가 있는 역이다. 그래서 신칸센 역은 지금의 하코다테역과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게 되었는데, 그 거리를 좁혀주는 역할을 바로 이 열차가 하게 된 것이다.
열차 이름은 하코다테 라이너. 라벤더를 형상화한 듯한 보라색이 홋카이도 신칸센의 H5계 열차와 유사해 보였다. 이 열차는 신칸센의 시간에 따라 운행하면서 하코다테역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편의를 봐주고 있다. 하코다테 라이너는 신칸센 개통으로 접근성이 오히려 나빠질 뻔한 하코다테 지역에 큰 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