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도 방랑객 Aug 03. 2020

삿포로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것들

일본 지하철 도시별 정밀 탐방 첫 번째 이야기

  일본은 지역마다 지하철도 고유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독특한 점이 많은 삿포로 지하철부터 어떤 특징이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홋카이도에서 유일하게 지하철을 볼 수 있는 도시는 삿포로다. 홋카이도의 중심도시답게 삿포로는 꽤 많은 유동인구를 자랑하고 있는데, 거기에 맞게 지하철도 3개 노선이나 운행 중에 있다.


히라가나가 돋보이는 지하철 삿포로역.


  삿포로의 중심은 삿포로역이다. JR을 기준으로 볼 때 삿포로역은 일본 전역에서 10위 안에 들 정도로 상당히 규모가 있는 역이다. 하지만 지하철은 삿포로역의 아래에 있는 오도리역이 실질적인 중심역이다. 그럼에도 지하철 삿포로역이 눈에 띄는 이유는 독특한 역 표기법 때문이다.

  JR을 비롯해서 다른 지역의 사철, 지하철은 대부분 그 지역의 한자 지명(札幌)을 그대로 역명에 반영한다. 그러나 지하철 삿포로역은 지도에서 보이는 것처럼 한자가 있음에도 히라가나로 삿포로(さっぽろ)라고 표기하고 있다. 물론 JR의 경우 한자로 삿포로를 표기하고 있다. 지하철 삿포로역을 제외하면 삿포로가 표기된 그 어떤 지명에서도 히라가나 아닌 한자 삿포로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차이가 난다.


JR 삿포로역의 경우 한자로 표기되어 있다.


  홋카이도 최대 규모의 역인 JR 삿포로역. 이곳은 한자 삿포로가 눈에 띈다. 건물 외부에는 그 어디에도 히라가나로 된 삿포로 표기를 볼 수 없다.


지하철 삿포로역은 모든 표기가 다 히라가나로 되어있다.


  하지만 지하철 역은 말이 달라진다. '역'은 한자로 표기하였지만, 삿포로라는 지명만큼은 한자가 아닌 히라가나를 고집하고 있음을 역 내외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지하철 출구에 표기된 JR 삿포로역은 또 한자로 적어놓았다는 점에서 히라가나 표기가 유독 눈에 띈다.


삿포로역 역명판 비교(좌측이 JR, 우측이 지하철이다).


  비교를 위해 담아본 역명판. 이렇게 보면 JR이나 지하철이나 히라가나 표기로 일관성 있어 보인다. 하지만 JR 삿포로역의 경우 크게 적어놓은 히라가나 표기 아래에는 한자가 적혀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지하철 삿포로역의 경우 마치 삿포로는 히라가나로 된 일본 고유의 지명처럼 느껴질 정도다. 인접한 역은 모두 한자 표기를 한다는 점에서 히라가나 삿포로 표기는 상당히 독특하게 느껴진다.


지하철은 어디에도 삿포로의 한자표기를 볼 수 없다.


  행선지 표기도 마찬가지로, JR은 모두 한자로만 삿포로를 표기할 뿐, 그 어떤 열차도 히라가나만 단독으로 삿포로를 표기하지는 않는다. 반면 지하철의 경우 열차 내 표기까지 모두 일관성 있게 히라가나만 표기하고 있었다. 그것은 삿포로를 지나는 2개 노선 모두에 걸쳐서 동일했다.


신삿포로역도 삿포로 만큼은 히라가나를 고집하고 있다.


  삿포로 지하철 가운데 유일하게 삿포로역을 지나지 않는 도자이선에서도 히라가나로 된 삿포로 표기를 볼 수 있는데, 그 역은 신삿포로역이다. 역시 JR 역도 있어서 비교해볼 수 있었다. JR의 경우 히라가나가 주된 표기이긴 하지만 한자어가 반드시 들어갔다. 물론 역 외부에서 바라볼 때는 한자로 된 표기를 사용하고 있다.

  반면 지하철 신삿포로역의 경우 '신'은 한자로 표기하면서 특이하게 삿포로만큼은 히라가나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히라가나로 표기하려면 '신' 역시 한자가 아닌 히라가나로 표기하는 것이 어울릴 것 같지만, 앞서 계속 언급해온 것처럼 삿포로가 마치 한자가 없는 지명인 마냥 삿포로 만 히라가나로 표기하고 있다.

  그만큼 삿포로 지하철은 JR과의 차별화를 위해서 도시 이름인 삿포로를 히라가나로 표기하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삿포로역이나 신삿포로역을 이렇게 통일성 있게 히라가나로 표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삿포로 지하철의 열차들(왼쪽부터 난보쿠선, 도자이선, 도호선이다).


  삿포로 지하철은 총 3개 노선인데, 열차는 노선 색에 맞춰 배경을 꾸며놓은 상태다. 열차 디자인은 살짝 차이가 나지만 공통점이 있다. 물론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전혀 인지하지 못할 수 있을 정도로 숨겨진 곳에서 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일반적인 궤도와 차이를 보이고 있는 삿포로 지하철.


  지금은 많이 바뀌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지하철은 콘크리트 침목과 평행한 2개의 궤도로 구성된 형태로 노반이 이루어져 있지만, 삿포로 지하철은 그 궤도가 3줄로 이루어져 있다. 양 측면에 있는 궤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철도에서 볼 수 있는 궤도보다 폭이 넓고 높이가 낮다. 오히려 중간에 위치한 의문의 선이 바퀴와 맞닿는 궤도와 더 유사해 보인다.

  중간에 위치한 선은 왜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어서 유심히 관찰하게 된 삿포로 지하철의 바퀴 부분. 그런데 오히려 몰랐던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이는 아직까지 스크린도어가 다 갖춰지지 않은 삿포로 지하철 설비 덕분이기도 했다. 오른쪽 사진에서처럼 삿포로 지하철의 바퀴는 철제로 구성된 바퀴가 아니라 버스를 보는 듯 고무로 된 바퀴로 되어있었다. 

  어쩐지 열차가 곡선 구간에서도 철도 특유의 쇳소리가 나지 않아서 이상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바퀴에 있었던 것이다. 이 고무바퀴가 맞닿는 궤도는 거기에 맞춰서 폭이 넓어지고 높이가 좀 더 지면에 가까이 붙게 된 것이었다. 아마도 중간에 있는 선로는 원래 천장에 주로 자리하고 있는 전기 설비로 보였다. 그러나 가장 마지막에 생긴 도호선의 경우 천장에 전기 설비가 있는 것을 보아 열차 유도 선로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무튼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고무바퀴를 지하철에 사용하고 있어서 경전철 같은 느낌도 얼핏 든다. 눈이 많이 내리는 삿포로에서 과연 고무바퀴가 운행에 지장은 주지 않을까 싶으나, 난보쿠선의 4개 역을 제외하면 모두 지하역이어서 날씨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다.


건물 출구와 공용해서 사용하고 있는 지하철 출구.


  한편 삿포로 지하철은 유독 다른 지하철에 비해 출구가 많은 역이 있다. 삿포로 지하철 3개 노선이 유일하게 모두 만나는 오도리역으로 출구만 무려 37개나 되는 아주 거대한 역이다. 이렇게 출구가 많을 수 있었던 이유는 독립적인 출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건물과 연결된 출구도 모두 출구 번호로 매기기 때문이다.

  시작인 1번 출구와 끝인 37번 출구만 봐도 별도의 출구 표기가 없다면 이곳이 지하철 출구인지조차 구분이 쉽지 않을 정도로 출구가 철저히 숨겨져 있다. 이렇게 건물을 활용해서 출구를 만들다 보니, 건물에서 외부로 나오지 않고도 쉽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물론 출구가 너무 많아서 출구를 찾는 것도 만만치 않은 것이 이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지하철역 출구 치고는 상당히 소박하다.


  그리고 출구가 대부분 건물과 이어지다 보니 에스컬레이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곳이 많다. 워낙 공간이 좁아서 두 사람이 지나가기에도 벅찬 출구도 많은데, 다행인 것은 승객이 잘 분산되어서 이 좁은 통로도 충분히 여유 있는 공간처럼 바뀐다는 점이다.


미로처럼 뻗어있는 오도리역 지하통로.


  지하에서도 헤매기 쉬울 것 같지만 워낙 안내가 잘 되어있어서 출구를 찾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지상 공간보다 훨씬 넓게 느껴지는 오도리역의 지하통로는 마치 또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출구 번호가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마치 공항의 탑승동에 있는 듯한 느낌도 있다.


지명의 영향으로 숫자가 들어간 역이 많은 삿포로 지하철.


  한편 삿포로 지하철은 유독 숫자로 된 역명이 많은데, 삿포로 자체가 계획도시로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구획을 나눈 영향으로 보인다. 이 숫자로 된 지명은 삿포로를 처음 온 사람에게는 상당히 당황스러움을 주지만, 여기에 익숙해지면 그 어떤 곳도 쉽게 찾아갈 수 있다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오도리 공원과 소세이(創成) 강을 기준으로 동서남북을 나눈 삿포로 지명.


  이 숫자를 나누는 기준은 오도리 공원과 소세이 강이다. 먼저 오도리 공원은 남과 북을 나누는 지명으로, 오도리 공원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북 1, 북 2 등의 번호가 매겨지는 지명이 된다. 반대로 남쪽으로는 남 1, 남 2 등으로 시작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실개천에 가까울 정도로 폭이 좁은 소세이 강을 기준으로 동과 서가 나누어진다. 오도리 공원과 마찬가지로 소세이 강의 동쪽으로는 동 1, 동 2 순으로 지명이 붙고, 서쪽으로는 서 1, 서 2 순으로 번호가 붙는다. 그리고 동서축 번호와 남북축 번호가 결합해서 지금의 삿포로 지명이 완성된다.

  남북축 번호가 앞에, 동서축 번호가 뒤에 붙어서 하나의 지명이 되는데, 그 지명은 교차로 신호등에 표기되어서 그곳의 위치를 나타내 주는 이정표가 된다. 거기에 맞춰서 지하철 역 이름도 숫자가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삿포로만의 독특한 지명 표기방식 때문에 만들어진 역 이름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삿포로만큼 숫자를 많이 활용한 역 이름을 찾기가 어렵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크린도어와 열차 선후두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