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도 방랑객 Aug 21. 2020

고베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것들

일본 지하철 도시별 정밀 탐방 네 번째 이야기

  오사카를 중심으로 하는 간사이 지방에는 3개 도시에서 지하철을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것처럼 느껴지는 곳이 바로 고베 지하철이다. 그만큼 고베 지하철은 과장을 더해서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디자인의 열차가 운행 중이다. 그렇게 느낀 가장 큰 이유는 흑백 영화를 감상하는 것처럼 단색 계열로만 꾸며놓은 열차 외관과 역 승강장 모습이다.

  그 어떤 지역에서보다 노선 색에 충실한 고베 지하철은 노선 색 외에 다른 색은 찾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게다가 투박한 열차 디자인이 그 어떤 지역의 열차와 비교해도 고베 지하철이라는 것을 알 정도로 눈에 띈다.

  고베 지하철도 인근의 교토 지하철처럼 2개 노선에 불과하지만, 두 노선 모두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서로 같은 지역에서 운행하는 열차가 맞나 의심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는 별도로 표기하지 않는 '-' 이 들어간 노선 이름 역시 고베 지하철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고베 지하철 노선도.


  고베 지하철은 굵은 표기로 되어있는 초록색 노선의 세이신-야마테선과 파란색으로 되어있는 카이간선으로, 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남북축 노선과 동서축 노선이 아니라 U자 형태의 노선과 그 노선을 보조해주는 노선처럼 보인다. 노선도 상에는 이렇게 표기되어 있지만, 실제로 노선도 오른쪽의 카이간선 마지막 역인 산노미야-하나도케마에역도 사실 세이신-야마테선의 산노미야역과 거의 붙어있는 역이다.

  초록색 노선인 세이신-야마테선은 온통 초록색으로 꾸며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노선은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두 개의 명칭이 복합된 노선으로, '세이신'과 '야마테' 사이에는 '-' 표기가 추가로 들어가 있다. 사실 오사카 지하철에서 2개 이상의 명칭이 복합된 나가호리츠루미료쿠치선이 있지만, 거기에는 별도로 '-' 표기를 볼 수 없었다. 그만큼 고베 지하철의 세이신-야마테선은 조금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파란색 노선의 카이간선도 노선도를 잘 보면 보조 노선명이 추가로 붙어있다. 친절하게 우리말로도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노선명 뒤에 보조 역명을 표기하듯 괄호 속에 유메카모메라는 별칭을 붙인 점도 눈여겨볼 점이다. 일본어 '카이간'은 해안, '카모메'는 갈매기라는 뜻으로, 노선 명으로도 카이간선이 고베 연안 지역을 운행하는 노선임을 추측해볼 수 있다.


과거로 회귀한 듯한 디자인의 세이신-야마테선.


  초록색으로 꾸며놓은 세이신-야마테선 열차는 마치 시간을 멈춘 공간에서 운행하는 열차처럼 보인다. 수많은 열차가 운행하고 있는 일본에서, 세이신-야마테선 열차처럼 전면부를 삼등분한 듯한 디자인의 열차는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상당히 특이한 디자인이다.


2019년 2월 16일부터 운행하기 시작한 새 디자인의 열차.

                                                           기사 출처: https://response.jp/article/2019/02/13/319048.html


  이 디자인은 약 25년부터 운행해 온 세이신-야마테선의 역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이신-야마테선은 2022년까지 순차적으로 새로운 디자인의 열차로 바뀔 예정이기 때문에 이제 이 열차를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와 함께 스크린도어 설치(2023년까지 순차적으로)도 진행된다고 하니, 승강장에서 열차를 온전하게 담아낼 수 있는 시간도 그리 많지 않다.


고베 지하철 두 노선 색을 모두 담은 카이간선.


  반면 카이간선은 세이신-야마테선 열차와 달리 그래도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는 디자인을 가진 열차가 운행하고 있다. 이 열차는 세이신-야마테선과 달리 두 가지 색이 띠를 이루고 있는데, 위쪽은 이 노선의 색인 파란색으로, 아래쪽은 세이신-야마테선의 초록색으로 꾸며놓은 것이 특징이다. 불과 한 가지 색이 더 추가되었을 뿐인데, 세이신-야마테선 열차와 분위기가 달라진 것처럼 보인다.


노선 색 띠에 흰 글씨로 적혀있는 벽면의 역 표기.


  한편 고베 지하철의 승강장 벽면은 대부분 이처럼 노선 색으로 된 띠 형식의 역명판이 붙어있다. 특별한 디자인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단순하게 해 놓은 승강장 벽면을 보면서 처음에는 살짝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래도 다른 지역의 지하철은 최대한 지역 특색을 잘 나타내 보이려는 모습이 느껴졌기 때문에 너무 기대치가 컸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노선 색이 반영된 실시간 열차 안내판.


  노선 색을 강조한 곳은 승강장뿐만 아니라 대합실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세이신-야마테선의 경우 종착역 표기와 안내 문구를 녹색으로 표기하였고, 카이간선은 종착역의 역 번호를 파란색으로 표기하였다.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승강장과 열차를 봐 왔다면 이 안내판에서도 통일성이 느껴진다.


시트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고베 지하철.


  한편, 세이신-야마테선은 좌석 시트도 초록색으로 덮어놓았지만, 카이간선은 의외로 파란색 시트가 아닌 빨간색 시트로 되어있다. 그리고 두 노선 모두 좌석이 완전하게 구분되지 않아서 두 개의 좌석을 걸쳐 앉는 경우도 비일비재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카이간선은 등받이 부분에 홈이 있어서 구분을 하려면 할 수는 있겠지만, 25년 전 열차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세이신-야마테선 열차는 시트가 닳은 곳을 봐도 앉은 위치가 완전히 일정하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여성전용차량이 있는 고베 지하철.


  지역마다 또 회사마다 여성전용차량을 갖춘 곳도 제법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출퇴근 시간대에 한정해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고베 지하철은 열차가 운행하는 시간이라면 항상 이 여성전용차량이 적용된다. 그러니까 이 표시가 있는 열차는 무조건 여성에게만 허락된 공간인 샘이다.

  단, 어디든 예외가 있는 법이라, 여성전용차량에도 예외는 있다. 분홍색 글씨 아래 짙은 남색 바탕을 살펴보면 초등학생이나, 장애인(동반인 포함)과 같이 보호자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남자라도 이 열차를 탑승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이용객이 제한되어 있지만, 다른 열차 칸보다 더 북적일 때도 있어서 보다 한산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여성이라도 다른 칸으로 이동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광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고베 지하철.


  고베 지하철은 다른 지역의 노선보다 광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거의 모든 역에 걸쳐서 역명판 아래에는 광고가 들어가는데, 대부분 '앞(前)'으로 끝나는 것으로 보아, 역세권에 있는 상점이나 명소가 광고의 대상으로 보인다.

  오사카 지하철과 비교했을 때, 고베 지하철의 역명판은 통일성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이렇게 가져온 4개의 역명판을 살펴보면 디자인이 모두 다르다. 배치가 비슷해서 통일성이 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역 번호의 크기, 역 이름 색, 그리고 한자와 히라가나 표기, 영어 표기 위치 등 어느 하나 통일된 모습이 없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다. 일부러 통일성을 없앴다고 하기에도 교토 지하철 도자이선처럼 역마다 가지는 특징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도 저도 아닌 모습이 되어버린 것 같다.


역 번호가 이어지는 호쿠신 급행철도.


  세이신-야마테선은 신칸센과 환승이 가능한 신고베역까지만 해당하는 노선이지만, 그다음 역인 다니가미역까지 직결 운행하고 있다. 그런데 다니가미역은 다른 역과 달리 역 앞에 호쿠신 급행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데, 신고베역에서 다니가미역까지만 별도의 노선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렇게 별도의 노선으로 구분하지만 하나의 노선처럼 역 번호를 같이 사용하고 있다. 의외로 1번이 붙은 역 번호를 고베 지하철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호쿠신 급행이 사용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리고 호쿠신 급행은 단 한 구간에 불과하지만 소요시간이 무려 8분이나 걸리는데, 이 구간은 산을 넘는 구간이어서 긴 터널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구간임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회사로 운영하고 있는 것 같다.


P턴 노선이 있는 고베 포트라이너.


  고베에는 2개의 지하철 노선 외에도 포트라이너라 불리는 경전철이 있는데, 이 노선은 일반적인 철도 노선과는 차이가 있다. 포트라이너도 2개 노선이 있는데, 겹치는 구간이 있어서 마치 하나의 노선처럼 보인다. 그 가운데 주황색으로 된 노선은 자세히 보면 루프 형태(P턴 구간)로 되어있는데, 그곳에는 화살표가 표기된 것도 볼 수 있다.

  이 구간은 일방통행 구간으로 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마치 버스 노선의 회차점을 보는 것 같다. 시작 역인 산노미야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시민히로바(시민광장)역까지 하나의 노선처럼 운행하다가 한 노선은 고베공항까지 이어지는 일반적인 노선이고,  나머지 하나의 노선은 P턴 일방통행 구간을 거친 후 다시 산노미야역으로 향한다.


P턴의 시작과 끝 역.


  그 P턴의 시작은 시민히로바역으로, 이곳을 지나면 갈림길이 나온다. 그리고 다시 본선에 합류하는 구간에서는 입체 교차로를 보는 듯 승강장이 복층으로 되어있다. 이렇게 복층으로 승강장이 구성되어 있어서 상하행 열차 간 통행에 방해를 주지 않는 동시에, P턴 구간에서 고베공항 방면으로 가는 승객의 환승 동선도 최소화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일방통행이 있는 포트라이너.


  P턴 구간은 보이는 것처럼 단선 일방통행으로 되어있다. 이러한 모습도 타 지역에서 보기 드물기 때문에 아주 독특한 운행임은 분명하다. 또 고베공항으로 가는 열차와 이렇게 P턴하는 열차로 이원화해서 승객 빈도가 높은 산노미야 근교에 더 많은 열차를 투입할 수 있는 효과도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교토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