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면전차는 전철이나 지하철처럼 한 번에 많은 승객을 실어 나를 수도 없고, 독립적인 선로로 다른 교통수단의 영향을 받지 않고 운행할 수도 없기 때문에 대도시보다 중소도시에서 어울리는 대중교통이다. 중소도시는 아무래도 대도시에 비해 유동인구가 적어서 운행을 아무리 효율적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벌어들이는 수익은 한계가 있다.
한편 일본은 중소도시라고 하더라도 간선 철도(주로 국철 소속이었던 JR) 망은 잘 갖춰져 있다. 이 간선 철도망을 통해서 대도시와 중소도시를 연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는 간선 철도망을 중심으로 유동인구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노면전차는 이런 유동인구 동향을 잘 이용해서 노선에 반영하고 있다.
JR역을 끼고 있는 노면전차 역.
노면전차 역은 대부분 그 도시의 주요 역을 품고 운행하고 있다. 그 역이 때론 종착역이 될 수도 있고 중간역이 될 수도 있지만, JR 노선을 벗어나서 독자적으로 운행하는 노면전차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JR에 많이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사철도 잘 발달하지 않은 중소도시에서 만큼은 JR이 다른 교통수단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히 크다.
그렇다고 JR이 중소도시의 모든 지역을 역세권으로 만들어 줄 만큼 넉넉하게 운행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기에 노면전차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면전차는 JR에 비해 짧은 역 간격을 유지해도 운행에 큰 문제가 없고, 역 시설도 버스 승강장처럼 간단하게 설치해도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JR역을 끼고 있는 노면전차 역의 역명판.
이렇게 JR을 끼고 있는 역은 마치 버스 정류장을 보는 것처럼 '~역 앞(駅前)'이라는 역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역(駅)'이라고만 된 역도 있다. 우리나라 지하철 역의 경우 도시 이름이 들어가는 역은 '서울역'과 같이 유독 명칭 뒤에 '역'이 붙는데, 이는 우리나라 지하철 역과 유사한 면이 있다.
JR이나 일본 지하철 그리고 사철에서는 노면전차의 역이름에서 볼 수 있는 '역'이 들어간 역을 찾기 어렵다. 예를 들어 도쿄역의 경우 역명판에는 '도쿄'만 적혀있을 뿐, 서울역과 같이 '서울역'이라고 적힌 역명판은 찾아볼 수 없다. 차내 방송 역시 '도쿄'만 나올 뿐, '도쿄역'이라고 방송하지 않는다. 노면전차는 이런 다른 철도교통과의 차별을 두기 위해서 버스 정류장과 같은 형태의 표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큰 규모의 노면전차 승강장.
노면전차 승강장은 마치 전철역 승강장을 보듯 멀리서 보더라도 충분히 눈에 띌 정도로 규모가 크다. 때론 노선별로 승강장을 구분하기도 한다. 그만큼 다른 역에 비해서 기대 승차인원이 월등하게 많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JR 역을 낀 노면전차 승강장은 그 외의 승강장에 비해 항상 승객들로 붐비고 있다. 그만큼 JR 역은 노면전차에게 있어서 승객을 공급해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JR역을 낀 노면전차(가고시마).
지역별로 노면전차가 얼마나 JR과 연계해서 운행하는지 지도를 보면서 살펴볼까 한다. 노면전차가 운행하는 도시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자리한 가고시마의 경우 가고시마라고 들어가는 역만 3곳이 있는데, 그곳은 한결같이 노면전차도 함께 운행 중이다.
JR역을 낀 노면전차(구마모토, 나가사키).
또 다른 규슈 지역의 노면전차를 운행하는 도시에서도 JR과의 연계는 상당히 중요해 보였다. JR노선이 거점 지역을 띄엄띄엄 운행해주면 노면전차는 그 사이에 있는 도심을 연결해주는 식으로 상호 보완하는 모습이다. 같은 구간이어도 JR은 역이 없지만 노면전차는 역이 많이 있는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JR역을 낀 노면전차(다카마츠, 고치, 마츠야마).
이는 섬을 하나 건너 자리 잡고 있는 시코쿠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시코쿠에서 운행 중인 노면전차 역시 JR과 연계해서 운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시코쿠는 다른 지역에 비해 인구밀도가 낮아서 그런지 노면전차가 사철 역할을 대체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노면전차의 노선이 다른 지역에 비해 길다.
JR과 나란히 움직이면서 상호 보완하고 있는 노면전차(고치).
그래서 유독 JR과 노면전차가 평행하면서 움직이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여기서 유심히 볼 점은 역의 위치인데, JR의 경우 역간격이 상대적으로 긴 편에 속하고, 노면전차는 반대로 짧은 편에 속한다.
이렇게 서로 세분화된 운행을 통해 JR은 표정속도를 빠르게 하여 도시 간 간선 교통망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었고, 노면전차는 도시 내 지선 교통망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승객들은 자신의 이용 목적에 맞게 열차 또는 전차를 선택할 수 있다.
JR역을 낀 노면전차(히로시마).
노면전차 노선만 8개나 되는 히로시마 역시 JR과 긴밀하게 연계해서 운행 중이다. JR보다 좀 더 도심에 가까이 붙어서 다니는 노면전차로 인해 JR역이 있는 곳은 터미널 식 승강장으로 된 역이 많다. 아무래도 터미널 식 승강장이 역과 최대한 가까이 붙일 수 있어서 접근성도 뛰어난 데다가 승강장을 넓혀서 승객들이 서로 뒤엉키는 것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만든 것 같다.
JR역을 낀 노면전차(오카야마).
다른 지역도 노면전차의 종착역을 JR역이 있는 곳에 자리한 곳이 많은데, 한결같이 승강장이 넓고 역에 최대한 붙어있음을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역이 히로시마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는 오카야마다. 노면전차의 역간격이 거의 신칸센 승강장 길이 정도 되는 거리임을 감안해볼 때, 노면전차의 역간격이 얼마나 짧은지 느낄 수 있다.
JR역을 낀 노면전차(하코다테).
홋카이도에 자리한 하코다테 노면전차는 다른 지역의 노면전차 승강장과 달리 하코다테역 광장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노면전차 승강장이 있다. 다른 지역과 달리 노면전차 하코다테역은 종착역이 아닌 중간역인데도 불구하고 하코다테역에서도 잘 보일 정도로 규모가 제법 크다. 비록 역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도 JR역이 노면전차 승객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