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한 사철 게이신선
지하철과 전철, 노면전차. 이 세 노선은 레일 위를 달리는 철도교통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형태로 운행 중이다. 사실 이렇게 나눈 이유도 서로 다른 특징이 있기에 구분해놓았다고 볼 수 있다. 그나마 지하철과 전철은 그 경계가 약간 모호해서 전철이 지하 구간을 다니거나 지하철도 지상으로 다니는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노면전차가 전철과 지하철 모두 동시에 직결 운행한다는 생각을 하기는 쉽지 않다. 노면전차는 도로에서 차량의 영향도 많이 받는 데다가 열차 폭도 지하철이나 전철에 비해 좁기 때문에 규격에서부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면전차가 지하철이나 전철처럼 긴 편성으로 운행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기에 완전히 다른 열차로 느끼기 쉽다.
하지만 노면전차와 사철이 발달한 일본은 지하철과 전철이 이어지는 모습뿐만 아니라 노면전차와 전철이 하나의 노선처럼 움직이는 모습도 제법 볼 수 있다. 이렇게 두 개의 종류는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철도 교통은 그렇게 신기한 장면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두 종류의 경계가 아니라 세 종류의 경계를 모두 넘나든다면 말이 달라진다.
불가능할 것 같은 운행을 하는 곳은 교토 지하철 도자이선에서 시작해서 노면전차로 끝나는 게이한 전철의 게이신선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게이신선은 이렇게 노선도만 보면 지하철과 사철이 직결 운행하는 일반적인 일본 철도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지하철 구간을 운행할 때는 사실 전철에서 끝나면 끝났지 노면전차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다. 지하철 역이나 스크린도어 그 어디에도 특별히 어느 구간부터 노면전차가 된다는 표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사철이 지하철 사이사이 간격에 한 대씩 끼여서 운행해주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렇게 지하철이 되어 운행하는 게이신선이 지하 구간을 끝내는 역은 미사사기역으로, 이 역을 지나면 지하철과의 공동운행을 마치고 독자 노선으로 진입하게 된다. 물론 독자 노선은 지상으로 연결돼서 전철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제 독자적인 노선으로 진입한 게이신선. 역명판부터 지하철에서 봤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그렇게 하나의 경계를 지나면서 변화를 가져온 게이신선은 이제 전철의 모습으로 다음 구간을 이어나간다. 이렇게 지하철과 전철의 경계를 넘나드는 노선은 우리나라도 많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새롭게 느낄 수 있는 장면은 아니다.
하지만 종착역을 앞두고 게이신선은 일반적인 철도교통의 모습을 거부하는 신선한 변화를 가져온다. 비록 아주 짧은 구간이지만 도로와 하나가 되어 이동하는 노면전차의 모습으로 노선이 끝나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간에 따라 안내판이 달라지는 게이신선은 하나의 노선이라기보다는 세 개의 각기 다른 노선이 편의상 하나로 운행하게 된 것 같다. 게이신선은 전철 구간으로 이어지는 몇 개의 역을 제외하면 모두 전철과는 다른 특징을 가진 노선과 공용 운행을 하는 아주 특이한 노선이다.
게이신선은 전철 구간으로만 연결되면 다른 노선과의 접점이 없어서 접근성의 문제가 발생한다. 아무리 노선이 좋아도 유동인구를 기대할 수 없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에 게이신선은 부득이하게 다른 노선의 형태로 스스로 변화를 가져갔는지도 모르겠다.
게이신선과 접속하는 노면전차역은 승강장을 두 배 이상 키워서 게이신선 열차를 수용했고, 도자이선 지하철은 열차 폭을 노면전차화 시켜서 게이신선 열차가 지하철 구간을 운행하는데 걸림이 없게 만들어 주었다. 이처럼 게이신선과 접속하는 노면전차는 물론, 교토 도자이선 지하철의 양보도 있었기에 게이신선이 구간마다 변화된 모습으로 운행이 가능했다.
게이신선은 전철 구간도 일반적인 모습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구간이 많다. 특히 물 흐르듯 주변 지형에 영향을 끼치지 않고 굽이굽이 돌아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처럼 눈에 띌 정도로 심한 곡선 구간이 많은 게이신선은 시골 철도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덜컹거림과 쇳소리를 들을 수 있다.
쭉 뻗은 직선 구간이 아니기 때문에 열차는 서행을 거듭하는데, 그 덕분에 주변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게이신선에서 맛볼 수 있는 재미다.
그러던 게이신선이 마지막 역을 앞두고 마치 잘못 본 것처럼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처음에는 철도 건널목을 지나는가 했지만, 어느새 도로 중간을 차지해버렸고 자연스럽게 전철이었던 열차가 그곳에서 운행을 지속한다. 확실히 도로 위를 달리는 게이신선 열차는 전철 구간에 비해 조심스럽게 운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직선으로 쭉 뻗어있는 선로지만, 열차는 마치 곡선 구간을 운행하듯 천천히 나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노면전차 구간을 지나온 게이신선. 그래도 마지막 역에서 만큼은 전용 선로로 끝이 난다. 중간에 전차가 이동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게이신선 열차가 노면전차 구간을 지났는지 조차 모를 장면. 이처럼 게이신선 열차는 주변 분위기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키면서 조용히 이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