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너의 여름은 어떠니>
- 하지만 그 나이엔 의당 그래야 하는 듯 알 수 없는 우울에 싸여 있었고,
내 우울이 마음에 들었으며,
심지어는 누군가 그걸 알아차려주길 바랐다.
환영식 날, 잔디밭에 모인 무리에서 슬쩍 빠져나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내가 거기 없다는 걸 통해, 내가 거기 있단 사실을 알리고 싶은 마음.
나는 모임에서 이탈한 주제에 집에도 기어들어 가지 않고 인문대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스스로 응석을 부리며 뭔가 흉내 내는 기분이 못마땅했지만,
숨은 그림 찾아내듯 누군가 나를 발견하고,
내 이마에 크고 시원한 동그라미를 그려주길 바랐다.
그런데 거기, 어두운 인문학관 통로에 선배가 있었다.
- 아마 그래서였을 거다.
훗날 누군가 내게 사랑이 무어냐고 물어왔을 때,
'나의 부재를 알아주는 사람'이라 답한 것은.
<벌레들>
- 어쨌든 견뎌내야 했다.
모두가 그러고 있으니까.
모두가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으니까.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 그런데 감동적인 노래를 들으면요,
참 좋다, 좋은데, 나는 영영 그게 무슨 노래인지 알 수 없을 거라는,
바로 그 사실이 좋을 때가 있어요.
<큐티클>
- 예전보다 내 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 몸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울에 갓 도착한,
스스로의 구매력을 어색해하던 스무 살 때보다 건강하다.
내가 나를 돌보는 느낌.
<호텔 니약 따>
- 어느 날 자리에서 눈을 떠보니 시시한 인간이 돼 있던 거다.
아무것도 되지 않은 채.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이 이상이 될 수 없을 거란 불안을 안고.
- 힘든 건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기다리는 게 지겨운거였어.
<서른>
- 이십대에는 내가 뭘 하든 그게 다 과정인 것 같았는데,
이제는 모든 게 결과일 따름인 듯해 초조하네요.
- 요즘 저는 하얗게 된 얼굴로 새벽부터 밤까지 학원가를 오가는 아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요.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