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의 일

김혜진

by 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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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대부분은 만족과 행복 같은 단어와는 무관하게 흘러가고 그런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쌓여 비로소 삶이라고 할 만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고 그는 믿었다.


- 생각해보면 자신에게도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다른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순간들이, 삶을 다른 방향으로 놓아둘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번번이 그것들을 그냥 흘려보냈다.

스스로에게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면서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자신을 막아서기만 했다.

어떻게 해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

그럼에도 아주 작은 것 하나쯤은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두 가지 마음이 들끓는 동안 그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가도록 내버려둔 걸지도 몰랐다.


- 오랫동안 그에게 회사는 시간을 나눠 가지고 추억과 기억을 공유한 분명한 어떤 실체에 가까웠다.

그의 하루이자 일상이었고 삶이라고 불러도 좋았다.

친구이자 동료였고 가족이었으며 또 다른 자신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자신의 일부이자 전부였던 것.


- 몇년 뒤면 준오도 자신의 일을 갖게 될 거였다.

그러니까 자신도 모르게 이끌리는 어떤 일을 발견하게 될 거였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일이 되는 순간,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달라지는지 알게 될 거였다.

그 일을 지속하기 위해 바라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 일을 계속하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바뀌어버리는지 깨닫게 될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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