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2

노희경

by 브런치킴

21. 사랑만 하기에 인생은 너무나도 버겁다


- 그때는 몰랐다. 그대와 주고받았던 모든 것들이 마냥 별스러워 엄살인 줄도 모르고 악을 쓰듯 독하게 킁킁거렸다. 그때 그대는 참으로 냉정했었다. 원망스러웠던 그 순간이 이제야 맞춤 맞은 순리였음을 알겠다.

나를 버려주어 고맙다, 그대.



-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내 드라마 주인공은 참으로 상대에게 용기 내어 잘도 묻는데 나는 그대에게 묻지 못했다.


내 잘못을 돌아볼 용기가 없었다.


어리석다.


사랑한 대상을 미워할 대상으로 바꿀 오기는 있으면서.


모든 겨울처럼 밤이 깊은 겨울이었다.


며칠째 몇 주째 연락이 안 되던 그대를 찾아 나섰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얇은 추리닝 바람이었다.


20년간 나는 그때의 내 행색을 다급함이라고 애절함이라고 포장했지만, 이제야 인정한다.


상처주고 싶었다.


나는 이렇게 너보다 순정이 있다.


그런데 너는 나를 버렸다.


그렇다면 무참히 무너져주겠다.


내 옆에 머물러 있어야 할 네가 기어이 날 그냥 스쳐만 지나가겠다고,


네가 상처준 어린 이 사람을 똑똑히 기억하렴.


나는 눈 오는 그대의 집 앞에서 밤을 새워 오들거렸다.


- 어른이 된다는 건


상처 받았다는 입장에서


상처 주었다는 입장으로 가는 것.


상처 준 걸 알아챌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




- 인생을 살면서 절대 잊혀질 것 같지 않은 장면들이 잊혀지고,


절대 용서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용서되면서 우리는 여자로 혹은 남자로 성장한다.


누구는 그러한 성장을 성숙이라고도 하고 타락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나는 다만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 은수는 그 남자의 처지보다 순수가 버거웠을 것이다.


사랑이 변하고, 권태가 일상이 되고, 키스도 무료해지고, 생계가 치명적인 걸 이미 아는 여자에게 사랑만이 전부인 남자는 부담스러웠을 뿐이다.


이제 이 나이에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고 상우처럼 묻는 남자가 내게 온다면, 나 역시 은수처럼 당연히 그 남자를 피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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