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하고 싶은 주제, 기록하고 싶은 일상은 지금도 지나가고 있는데 이것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늘 어렵게만 느껴진다. 글을 쓰고 싶어 만든 매거진인데 글을 쓸 수가 없다니.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해있다. 이유가 뭘까. 그 이유 한번 찾아보고자 써지지 않는 글을 주제 삼아 글을 쓰고 있다. 이 역시 아이러니다. (바람꽃은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가보다. 결국 원고순서를 바꿨다.)
아침에 일어나 간밤에 카카오톡으로 보내준 이러저러한 링크들을 보며 일어나고는 한다. 음악은 늘 내 귀 혹은 스피커에 연결되어 흘러나오는 음악들은 생활 BGM이며, 출근길에 지인들의 주절거림이나 보고자SNS를 열지만 수많은 광고들과 광고 같은 광고들, 광고 같지 않은 광고들에 둘러싸여 잠시 허우적대다 웹툰을 보기도 하고 유튜브를 보기도 하고. 그렇게 아침 시작부터 머리가 혼잡해진다. 어느새 부턴가 ‘산만’은 그저 내 생활의 일부가 된 듯하다. 세상에 재미있는 게 너무 많아졌다. 그래서 세상이 재미없어졌다.
양질의 컨텐츠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컨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지만 나 역시 선뜻 정의내리기가 어려워진다. 잘 만들어진 컨텐츠는 또 다른 컨텐츠를 만들고 이것들은 플랫폼을 통해 멀리 퍼지며 그 곳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는 한다. 보통 그 바람은 우리의 손바닥에서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 내가 ‘산만’한 이유다.
2011년 종합편성채널(종편)이 야심차게 개국하였고 무수한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결과는 1%의 시청률도 넘지 못한 참패였다. 자극적이고 편향적인 보도들로 넘쳐난 뉴스들과 스타들에 치중한 예능들은 시청자들을 설득하지 못했고 ‘그래도 공중파’라는 인식만 강하게 만들어줄 뿐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여전히 몇몇 종편은 특히 뉴스분야에서 많은 지적을 받지만 2016년 JTBC가 보여준 뉴스보도방식은 매주 토요일 집회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취재진을 향해 박수를 칠만하게 만든다. 그들의 차별점은 단순했다. 뉴스가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 ‘신뢰’였다. 팩트에 기반한 사실을 전달하였고, 그것이 팩트가 맞는지 한 번 더 체크하였고 이 모든 것들을 시청자와 공유했다. 설사 실수가 있었다면 가감 없이 사과했다.
기본에 충실 하라는 말이 거창한 말이 아님을 실감한다. 화려하고 멋진 것들이 넘쳐나는 이 시점에서 살아남는 사람들은 결국 그 ‘기본’에 충실한 사람들이었다.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이건 수용하는 사람이건 기본에 기초하여 만들고 받아들인다. 이 기본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집요하게 확인해야 하고 고민을 거듭해야 하는 과정이라 단순한 말뿐만이 아님을 안다. 그래서 그 과정이 가장 어렵다는 말이 나오나보다. 나 역시 그러하다.
그리하여 필요한 것이 훈련이다. 술에 물 타듯, 꿀에 설탕 타듯 하는 가십의 천국 속에서 본질을 꿰뚫는 힘을 기르는 것만이 온전히 편안해지는 방법일 것이다. 고민을 거듭한 숙고 끝에 그러한 본질은 결국 ‘아날로그로의 회귀’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결론을 내렸다. 적어도 내 손바닥 위에는 지하철 몇 정거장만 지나면 까먹어버릴 글들뿐이다.
음악을 잘라듣기보다 음반 한 장에 담긴 아티스트의 메시지를 들어보고, 갈 곳이 없어 영화관을 가기보다 좋은 영화 한 편을 보고 일주일동안 곱씹어 보는 것. 그 것에 관한 글을 써보는 것, 읽는 데 한 달 혹은 두 달이 걸릴지라도 좋은 책 한권에 깊게 빠져보는 것. 친구들과 그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 이 모든 것은 인터넷이 발달하기 이전에, 스마트폰이 생겨나기 이전에도 활발하게 진행되던 ‘오프라인 소셜 네트워크’였다.
시간을 느리게 보내는 방법이 필요한 요즘이다. 컨텐츠의 홍수는 나라 밖 사람들조차 심리적으로 가까워지게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하루 혹은 한 해와 같은 물리적 시간을 참 짧아지게 만들었다. 물론 의료기술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늘어난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꺼낸 아날로그 카드는 요새 트렌드와도 어느 정도 맞물려 있다. 예능 프로에서 밥 한 끼를 가장 어려운 방법으로 먹는 것이 괜히 사람들에게 인기를 끄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닐 것이다.
얼마전 근교로 여행을 나가면서 책장 한켠에서 먼지만 쌓여가던 필름카메라를 집어들었다. DSLR이 1초면 맞춰주는 초점을 1분넘게 걸려가면서 감도를 조절하고, 셔터속도를 맞추고, 조리개를 변경해가며 한컷을 찍었다. 그마저도 바로 확인할 수 없어 기다려야 한다. 급할 것 없었다. 조급하게 좋은 사진을 얻기위해 아등바등하지 않았다. 내려놓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계산대로 잘 맞춰져서 찍혔다면 사진이 잘 나왔겠지, 잘못나왔다면 다시 맞추면 그만이다.
결국 가장 사소하고 일상적인 활동에서 기본을 지키는 것만이 이 복잡한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다음 원고는 조금은 차분한 마음으로 읽는 사람들이 믿고 읽을 수 있을 만큼의 깊은 사색에서 나온 것이길 기대하며 이 정신없고 혼란스러운 원고를 마무리 한다. 점점 나아질테니 기대해달라.
Maru 쓰다.
2017. 02. 15. 매거진쓰다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