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기후위기와 불평등_여성들은 어디에 있나

Written by 리나

나는 지식을 얇고 넓게 구하는 편이다. 진득이 앉아서 책을 끝까지 독파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이런 나의 성향에 잘 맞는 지식 습득 방식이 있다. 바로 강연을 듣는 것이다. 특히 작년부터는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강연과 세미나들을 편하게 집에서 온라인으로 볼 수 있었다. 괜히 욕심만 많았던 나는 일단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주제의 강연이나 토론을 발견하면 일단 한 번 보자는 심정으로 온라인 강연 참가를 많이도 신청했다. 컴퓨터 속 스피커(speaker)가 혼자 떠들도록 내 버려두고 나는 딴짓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런데 이 웨비나들, 아니 코로나19 이전부터 수많은 강연과 세미나들의 스피커들은… 왜 대부분 남자일까? 바쁘게 사느라고 잊고 지냈던 의문이었는데 최근 핫한 P4G 정상회의니, 그에 후속한 각종 세미나와 토론회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다시 깨달았다. 이 많은 세미나와 토론회에서 왜 여성들은 보이지가 않을까. 오늘 아침에 시청했던 서울대아시아연구소의 ‘P4G 정상회의의 성과와 과제’라는 토론회에서도 여자는 딱 1명만 보였다. 그것도 본인의 의견이나 주장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사회자 역할로 나왔던 것.


실제 환경 관련 봉사 단체나 활동가 모임에 가면 구성원 대부분이 여자인데도, 왜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은 남자들인 것인지 궁금하다. 나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사실 환경이나 기후 위기의 문제에 한정할 사항은 아니다. 내가 일하는 법조 분야에서도 스피커는 대부분 남성이다. 가사, 양육과 관련한 법률 분야 정도에서만 여성 스피커를 볼 수 있다. 


 사람을 돌보는 일은 주로 여성의 몫이다. 이들은 집안일을 해야 하고 아이와 노약자를 보호해야 한다. 집 안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간호사, 사회복지사, 노인요양보호사, 어린이집 교사 등 많은 경우 돌봄은 여성이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현장에서 사람들과 직접 대면하면서 일해야 한다.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창궐해도, 기후위기로 폭염 혹은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안전하고 냉난방 잘 되는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손가락만 놀리면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기후위기로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여러 나라의 경우를 보면 위기 앞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여성의 실태가 더욱 또렷이 나타난다. 유엔에 따르면, 기후 변화로 인해 난민이 된 사람의 80%가 여성이다. 2010년 파키스탄의 홍수 때에도 그랬고, 2004년 인도양 쓰나미 때에도 여성이 압도적인 비율로 목숨을 잃거나 난민이 되었다 (파키스탄 홍수로 인해 난민이 된 사람 중 70%가 여성과 아이들이었고, 쓰나미로 사망한 자는 여성이 남성의 3배 이상이었음. 성 평등 없이는 지속가능한 지구도 없다, 2020.03.27, 이숙희, 기후행동변화연구소, http://climateaction.re.kr/index.php?mid=news01&document_srl=177726). 이들은 갑작스러운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시설이나 환경에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연재해로 인해 생계 부담이 늘어나면 가족 내에서 가장 먼저 다른 가족들에게 양보 내지는 희생을 해야 하는 것도 여성이다. 나이 어린 딸을 결혼시키거나 성매매를 시켜 가족의 생계에 도움이 되게 하는 경우뿐 아니라, 교육의 대상에서 딸이 배제되는 경우도 많다. 딱히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다른 나라의 예를 보지 않더라도 곤궁했던 한국의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한국도 한국 전쟁 이후부터 산업화되기 전까지 많은 여성들이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럼 그러한 어려운 시절을 겪어낸 지금의 한국은 많이 나아졌을까? 안타깝게도 한국은 아직도 성별 임금 격차가 32.5%에 달하고 OECD 국가 중에서 격차가 높기로는 20년째 1등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OECD 평균은 13%,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61093.html). 임금뿐만이 아니다. 세계경제포럼이 2019년 발표한 성별 격차 지수는 0.672점으로 153개국 중 108위. 예전처럼 대놓고 하는 눈에 띄는 차별은 이제 없어졌지만, 아직 우리의 의식 밑바탕에는 여전히 남성이 좀 더 훌륭하고 좀 더 고생도 하고 좀 더 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많다고 하는 것이 남아있는 걸까. 나도 잘 모르겠다. 기후 위기가 급작스럽게 닥치게 되면,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리고 절대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일단 수중에 돈도 있고, 자신과 가족을 보호할 수 있는 환경으로 쉽게 갈 수 있는 지위와 능력을 갖고 있고, 하다못해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목소리를 내면 들어주기라도 하는 사람들부터 먼저 살아남는 것이 수순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이런 집단 속에 속할 수 있을까? 그들이 만약 배제된다면 그것은 훌륭하지 못해서, 그간 고생을 많이 안 해서, 이 사회에 기여한 바가 없기 때문일까?


다시 웨비나 이야기로 돌아와서, 기후위기 관련한 여러 토론회에 패널로 나온 사람들의 성비를 분석한 통계를 우연히 발견했다. 한 달 동안 있었던 크고 작은 토론회들을 모두 분석해 보니 패널의 80% 이상이 남성이었다. 언론사, 국회, 환경 NGO 등 다양한 단체에서 주최한 토론들이었음에도, 이들 단체들의 공식적인 발언들은 남성의 목소리를 통해 나오고 있었고, 기후 위기 역시 이들의 목소리를 거쳐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후 위기 분야에는 아무래도 남자들이 전문가로 많이 활동하기 때문이려나? 이 세상의 모든 다른 분야에서처럼? 정말 그렇다면 다수가 남성으로 이루어진 전문가들과 정책 담당자들이 기후 위기가 닥쳤을 때, 건강과 목숨을 담보 삼아 일하고 가족을 돌보아야 하는 여성들의 삶을 제대로 봐주기를 바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시와 농촌의 에너지 불평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