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리즘 #에코페미니즘 #페미니즘 #페미니즘고전소설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순전히 '독서 모임' 과제였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다음 번에 읽을 책을 추천해주고 그 책을 2주 동안 읽고 오면, 독서 모임을 통해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독서 모임 중에 '여성인권운동'을 하신 선생님이 계신다. 그분께서 이 책을 추천하셨다.
[이갈리아의 딸들]을 읽으며 너무 많은 충격을 받았기에 2주 안에 읽기 턱 없이 부족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아, 내가 경험했던 이 모든 것들이 불필요한 것이었으며, 시간 낭비였고, 차별이었다.'라는 생각이 드니, 살아온 세월 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차별과 낭비의 시간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갈리아의 딸들]에서의 세상은 현실 세계와는 정반대인, 어쩌면 판타지 같은 이야기이다.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뒤집었고, 여성이 우월한 세상이다. 여성이 통치하며 여성이 지배하고 여성이 출산은 하지만 육아와 가사의 임무는 남성에게 있다.
사실, 소설 속 세계가 너무 통쾌했다. 그리고 더 많은 남성들이 이 책을 봤으면 했다.
32쪽에서부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파티장에 초대된 소년들은 여성(*움:이갈리아 용어)들에게 선택받기 위해 실크 소재의 옷을 입고 구두를 신고 반짝거리는 핸드백을 들고 온다. 그러나 신발 뒤꿈치가 닿아 고통스럽다. 또 겨드랑이에 땀이나 실크 블라우스에 자국이 날까 화장실에 서둘러 들어가 양 겨드랑이를 화장솜으로 닦아낸다.
나는 여기서 궁금증이 생겼다.
페트로니우스라는 남성(*맨움:이갈리아 용어)은 소설 속 나이는 16세로 소년이다. 페트로니우스는 밤 중에 해변을 걸어 다닌다. 그 해변에 석상이 있고 그가 고민거리를 석상에 이야기하러 나간 것이다. 그러나 그날 밤, 그는 여성(*움)들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그는 너무 수치스러워 숨기려 했지만, 소년감성의 예민한 아버지 덕에 걸리고 만다.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된 페트로니우스의 어머니는 그에게 처신을 어떻게 한 거냐며, 더욱 나무란다.
그리고 상처 받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폭행을 당한 남자(*맨 움)는 엄청나게 모욕적이며, 더럽혀진 멘움은 누가 원하겠냐고 그냥 잊어버리고 살라고 한다. 그리고 더 이상은 해가 진 후엔 바닷가에 가지 말라고 한다.
중학생 때, 만원인 지하철에서 내 엉덩이를 만지던 아저씨가 있었다. 그때는 그게 어떤 건지 잘 몰랐다. 그저 사람이 많은 공간이어서 손이 내 엉덩이에 닿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수치스러워 나는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자리를 옮길 수가 없었다. 무섭고 수치스럽고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고등학생 때는,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느 남학생이 나를 뒤따라 왔다. 우리 집 근처에는 경찰서가 있어 범죄자가 있을 거라 생각도 못 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 집 앞까지 따라왔고 내 뒤에서 목을 졸랐다. 다행인지 내가 낸다고 지른 목소리에 우리 아버지는 집 앞에 고양이가 있는 줄 알고 나오셨다.
그렇게 그는 도망갔다. 그 후로 나는 집 밖에 한동안 나오질 못했고 두려움에 떠는 나를 위해 우리 가족은 이사를 갔다.
이런 일들이 나만 겪은 줄 알았다. 여성들과 이런 경험을 이야기하면, 대부분 "너도?" "나도."라는 반응이다.
직장 내에서 혹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성폭행, 성희롱을 당한 여성들을 사회가 얼마나 무관심하고 모욕적으로 만드는지 생각하게 했다.
"옷을 야하게 입지 마라.", "밤늦게 돌아다니지 마라."
모두 피해자인 여성을 탓하였다.
수치스러우니 덮어두자고, 말하지 말라고, 강간당한 여자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고..
그건 그녀들의 잘 못이 아니다. 범죄를 저지른 그들이 잘 못 된 것이다.
후에 이 책에서는 차별을 받은 남성들이 '멘움해방주의' 운동을 펼친다. 마치, 현시대의 여성인권을 이야기하는 '페미니즘'과 맞닿을 것이다. "너도 당해봐라."라는 식의 '미러링'으로 보여 준 이 소설 속 이갈리아의 세상이 그 어떤 목소리보다 더 큰 파장과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이 소설처럼 멋진 상상력으로 보여주는 것이 보다 건강하고 효과적인 미러링이라 생각한다.
주인공 페트로니우스가 '멘움해방주의'운동에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이야기는 이러한 설정 요소들이 우리 사회를 뒤집어 비판하는 대목이라 더욱 재미있다.
이 책이 나온 지 40년이 지났다. 이 세상이 얼마나 변화가 있는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조금씩 더 나아질 거라 생각한다. 남성 혐오, 여성 혐오가 아닌 평등과 공존을 외치는 또 평화를 향하는 동등한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구찌에서 이번에 선보인 신상 팬츠이다. 주목할 것은 사진 속 스터디 장식이 박힌 가죽이다. 이 제품을 "Pants"라는 품목으로 판매하고 있다. 전면은 남성의 하반신 주요 부위만 가릴 수 있고, 후면은 두 끈으로만 이어져있다.
이 컬렉션을 보고 나는 [이갈리아의 딸들]이 생각이 났다. 소설 속 남성들, 멘움들은 페니스 가리개인 *페호(이갈리아 용어)를 입는다. 마치, 여성들이 브래지어를 입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멘움들은 페호가 매우 거추장스럽다고 한다.
1996년, 톰포드가 구찌를 디렉팅 했을 때의 캠페인이다. 현재의 구찌와는 완전히 동떨어진다. 이것을 2019년에 구찌가 캠페인으로 가지고 나왔다면 매출 하락은 물론 소비자들에게 뭇매를 맞을 것이다. 이때의 구찌가 글램하고 섹시했다고 하지만 여성을 소유하는 남성 모델의 포즈가 역겨울 뿐이다. 그 당시, 작품은 작품으로 봐야 한다는 주의가 있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 하지만, 시대는 계속 변하고 있다.
2013년에 젠더리즘을 표방하는 캐주얼 브랜드의 디자이너로 근무한 적이 있다. 사이즈는 넉넉했으며 여성과 남성 구분 없이 입을 수 있었다. 여성 옷에서는 그 어떤 곡선을 주지 않았다. 편안함을 추구했고, 편안함 속에서 찾는 내추럴한 멋스러움을 고객에게 전달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당시 매출은 그리 좋지 않았다. 실패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겠지만, 그중 하나는 시대를 앞선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15년 경에 아더 에러(Ader Error)라는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사이즈를 ①,②로 구분하여 남녀 모두 입을 수 있는 옷을 판매하였다. 그 후로 아더 에러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였다. 남성용, 여성용 사이즈 구분을 없앤 것만이 성공 비결은 아니었을 것이다. 신선한 디자인과 독특한 브랜드 색채로 많은 마니아 층을 가진 트렌드의 선두 브랜드가 되었다.
젠더리스는 유니섹스와는 다른 개념이다. 유니섹스는 남성과 여성의 제품을 동시에 전개하는 한편, 젠더리스는 이러한 성의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전개하는 것이 특징이다. 즉, 남성과 여성의 옷을 구별하지 않는 것이 바로 젠더리스인 것이다.
라코스테는 2019 S/S (Spring/Summer) 시즌 '하이퍼 젠더 패션'을 선보였다. 남성과 여성 스타일의 경계를 허문 콘셉트의 룩북이다. 라코스테의 테니스 룩과 90년대 스트릿 패션을 섞은 듯한 모습이다. 여성도 빅 사이즈의 티셔츠를 쿨하게 연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뷰티업계도 변화하고 있다. 남녀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페이스, 립, 아이 제품이 나오고 있으며 화장품 모델을 남성을 앞세우는 등 뷰티계에도 '젠더리스' 바람이 불고 있다. 국내에선 최초로 'LAKA'가 젠더리스 메이크업 브랜드로서 떠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뷰티와 패션 업계에서는 남녀의 구분이 매우 엄격했다. 브랜드들은 대부분 옴므 라인을 따로 만들어냈고 백화점에선 남성과 여성복 층을 달리하였다. 경계가 조금씩 허물어지면서, 이러한 사회적인 인식 변화와 페미니즘 대두로 '여자다움', '남자다움'이 어떤 것인지 점점 모호해진다.
영국 시장조사기관 민텔(Mintel)은 뷰티 글로벌 트렌드 가운데 하나로 '각 브랜드가 나이, 성별, 체형에 기반한 소비자 타겟팅을 멈추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참고: 인터비즈
전 세계적으로도 젠더리즘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면서 젠더 뉴트럴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패션에도 영향력을 드러나고 있음을 최근 열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배우 겸 엔터테이너인 빌리 포터가 오스카 시상식에 입고 온 드레스가 2019년 2월, 가장 화제가 되었다. 누구보다 화려하고 모든 사람들이 집중할 수 밖에 없었던 레드 카펫 위 빌리 포터의 드레스 때문일 것이다.
사진만 봤을 때 "남자가 드레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깨뜨리지 못한 우리들의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
그가 입은 이 드레스는 디자이너 크리스천 시리아노 작품이다. 턱시도와 드레스의 조합부터 획기적인데 이 드레스를 남성이 입으로써 최초의 젠더 파괴 베스트 드레서가 되었다. (참고: Flatter)
2018년 11월에 개봉한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에 나온 배우 에즈라 밀러(Ezra Miller)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 배우 수현과 영화를 찍었고,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어 더욱 유명해진 그는 독보적인 그만의 경계 없는 패션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콘셉트의 화보를 찍어 더욱더 화제가 되었다. 자신을 퀴어로 구분하는 그(퀴어는 성 정체성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는 할리우드만 바꾸고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잡지 플레이보이에서 보여 준 에즈라 밀러는 토끼 머리띠를 한 '바니 보이'로 변신했다. 그는 화보 촬영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남녀를 반으로 구분 짓는 사회의 방식이 일종의 비극으로 생각한다. 나는 서로가 사랑한다는 점에서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남성들에게만 젠더 파괴 패션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배우들의 젠더 영역을 파괴하여 연출된 화보가 눈에 띈다. 코르셋을 조이는 듯한 몸에 꼭 맞는 옷이 아닌 편안하고 시크한 그녀의 모습에서 더욱 여유롭게 당당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젠더리스의 영역은 패션, 공간, 문화 등 다양한 분야로 뻗어나가고 있다. 현재는 성 고정관념이 유연해지고 있으며 더불어 젠더리스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생겨 지속 가능한 패션의 일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국내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일상 속의 성차별과 편견을 헤쳐나가게 될지 궁금하다.
참고: 인터비즈, Flatter
사진: Vogue.com, 핀터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