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구하되 얽매이지 않기

by 비익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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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힘들게 회사에 들어갔건만 돌이켜 보면 회사 생활은 전반적으로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학창 시절 꾀병을 부리고 야간자율학습을 쨌던(!) 것처럼, 종종 아침에 '몸이 너무 안좋아요'라며 팀장에게 전화를 걸고 갑자기 출근하지 않았던 것이 수차례는 되는 것 같다. 어떨 때는 옷도 다 입고 문도 나섰는데 회사에 너무 가기 싫어 팀장에게 꾀병 통보를 시전하고는 그 차림새 그대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 때 나는 왜 그랬을까~ 왜 그토록 회사에 가기 싫었을까~


연기(!)에 대한 피곤함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가면을 쓰고 사회라는 무대에서 연기한다. 본능과 본성을 거스르고 좋은 사람인 척, 멋진 사람인 척, 쿨한 척 자신만의 연기를 펼친다. 회사라는 무대 위에서 직장 동료라는 다른 배우들과 회사형 언어의 대사를 주고받는다. 사회 생활에 만렙이 될수록 연기는 무르익고 몸에 밴 듯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된다. 그런데 나는 늘 그 연기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전화 통화를 할 때도, 속으로 몇 번씩 시뮬레이션을 거쳤다. 극 I인 나로서는 본능을 뛰어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런 피곤함이 쌓이고 쌓여 번아웃이 오게 되었을 때 결국 출근을 회피했던 것 같다. 차라리 빵꾸(!)는 낼 지언정 사람들에게 미숙한 연기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회사라는 무대 위에서 늘 멋진 모습만 보여주려 애썼다. 저 멀리 임원이라는 별 아니 그보다 더 높은 별을 향해 나는 매일 무대 위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어야만 했다. 내 인생은 완전히 회사라는 무대에 얽매여 있었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의 모습 딱 그대로였다. 어찌 이리 하나도 다르지 않을 수 있을까~


결국 탈이 나고 마음의 병이 심해져 병가를 냈다. 그리고 리프레시 휴직과 직권 휴직 등 회사에서 쓸 수 있는 온갖 휴직 제도를 탈탈 털어 오랜 기간 쉼을 이어갔다. 그렇게 1년반 정도를 쉬게 되었다. 이 기간동안 백 프로는 아니지만 월급도 일부 계속 나왔다. 이래서 사람들이 대기업 대기업 하나 보다. 내게 마음의 병의 발병의 큰 원인이 되었던 회사가 쪼끔 고맙기도 하였다.


쉬는 기간 부동산 공부와 투자를 시작하고 제2의 삶을 준비하면서 회사형 인간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은 서서히 희미해져 갔다. 이제 더 이상 회사가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었고 회사에서의 별이 내 인생의 목표가 아니게 되었다. 드디어 회사에서 반 걸음 걸어 나온 내 자신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2024년 1월, 오랜 휴직 기간을 마치고 회사에 복직하였다. 복직 전에 희망 부서를 적어내긴 하였는데 희망하는 부서와는 전혀 다른 '현장' 부서에 배치되었다. 그렇다. 그간 계속 '본사'에만 있었던 내가 처음으로 '현장'에 가게 된 것이다. 대기업에서 현장이 갖는 의미는 이렇다. 승진의 고속도로를 이탈하여 이제 지방 국도로 가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래도 살려는 드릴게. 짜르지는 않고 회사에 다니게는 해 드릴게' 뭐 그런 뉘앙스일 수 있겠다.


그런데 말이다. 2024년 11월에 희망퇴직을 할 때까지 약 1년 정도 현장 부서에 있으면서 나는 가장 행복했던 회사 생활을 보냈다. 갑자기 아침에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회사를 째는(!) 일도 전혀 없었고 팀원들과도 두루두루 잘 어울렸다. 몸을 쓰는 일도 곧잘 해냈다. 가끔 땀에 절은 내 자신에게 보람도 느꼈다. 그렇다. 더이상 회사에 '얽매이지' 않으니 역설적으로 회사 생활이 행복해진 것이었다. '칼출칼퇴' 하며 삶의 밸런스도 아주 완벽했다.


비로소 깨달은 것 같다. 추구하되 얽매이지 않는 삶의 지혜를 이제야 깨달은 것 같다. 비단 회사만이 아니라 투자 또한 마찬가지일 게다. 성투를 추구하되 너무 얽매이지만 않으면 된다. 그럼 투자도 행복하게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이 오십이 다 되어 삶의 지혜 하나를 이렇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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