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오십을 앞두고

by 비익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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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77년생이다. 어렸을 때는 내 '생년'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행운이 숫자 7이 반복되는 연도. 그래서 그랬나, 생의 고비마다 역사적 운빨(!)이 꽤나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1995년에 수능을 치렀다. 94학번인 1993년 때 수능이 처음 도입되고 세 번째 연도였던 만큼 수능이라는 시험에 대한 데이터가 어느 정도 쌓이고 시험 체계도 꽤 안정이 잡힌 상태에서 시험을 치렀다. 만약 내가 두 해 일찍 태어나 1975년생이었다면 수능 첫 세대로서 수능을 1년에 두 번 치를 뻔했다. 여름과 겨울 두 번 수능을 치른 1975년생 선배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96년 대입 때 즉 내가 대학에 지원할 때부터 서울대와 연고대 지원일이 분리되었다. 즉 96년부터 서울대와 연고대를 복수지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공부를 아주 끝내주게(?) 하지는 못했던 나는 서울대와 고려대에 복수지원 하였다. 만약 서울대를 떨어지더라도 고려대라는 안전장치(!)가 있던 셈이었다. 마음 편히(!) 시험에 응한 결과 운좋게 두 곳에 모두 합격하였고 큰 고민 없이 서울대를 선택하였다. 당시에 나는 '서울대'가 유일한 삶의 목표였으니까 말이다.


서울대 96학번 때부터 '복수전공' 제도가 도입되었다. 복수전공은 학점을 똑같이 이수하고 전공을 두 개 따는 것이다. 그 전에는 '부전공' 제도만 있었다. 나는 지리학과로 서울대를 입학했고 이후 언론정보학과 복수전공을 신청하고 해당 전공 과목을 수강해 나갔다. 그 결과 졸업할 때 지리학과와 언론정보학과 두 개의 전공을 취득할 수 있었다. 참 운이 좋은 세대이다.


IMF도 살짝 피해나갔다. IMF가 왔던 1997년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아직 취업과는 거리가 멀던 때였고 IMF가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는 철부지 학생에 불과하던 때였다. 시대의 엄혹함을 느끼지 못한 채 캠퍼스 안에서 안온한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IMF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2000년 이후에 사회에 나왔다.


삐삐와 시티폰과 핸드폰을 모두 사용해 보았다. 카세트 테이프와 CD와 MP3를 모두 사용해 보았다. PC통신의 갬성(!)도 느껴보았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갈 때의 두려움과 설레임도 느껴보았고, 2002년 월드컵 4강 때 거리 응원도 해 보았다. 아날로그 감성과 디지털 감성을 모두 경험한 흔치 않은, 복 받은 세대라 생각한다.


이제 그 운 좋았던 X세대가 내년에 오십이 된다. 만 나이로는 48이지만 우리나라 나이로 치면 50이 되는 것이다. 믿기지 않는다. 내가 벌써 오십이라니,, 여전히 유혹에 많이 흔들리고 하늘의 명령이란 것은 1도 알지 못하는데 벌써 '지천명' 오십이라니,, 자다가도 깜놀할 노릇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 한다. 제2의 인생의 시작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인생의 절반을 한참 전에 넘겼다고 생각한다. 100세 아니 80세까지 살 수 있을까~ 만약 살 수 있다면 지금처럼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80세까지만 건강하게 살아도 참 다행일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10년쯤 전에 이미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했고 지금 한창 후반전을 뛰고 있는 중이다.


실로 귀한 하루하루다. 다/행/히 그 하루하루를 온전히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쓸 수 있는, 나는 '백수'다. 백수임에도 매일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에, 이렇게 대낮 시간에 여유 있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나름 운이 좋았던 세대로서 소설 '운수 좋은 날'의 주인공처럼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아직 내게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30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다. 낮고 겸손한 자세로 이 세상과 이 세상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서, 시간에 끌려가지 않고 시간을 이끌어 가면서, 그리고 운을 끌어당기며 그렇게 행복하게 남은 인생을 살고 싶다. 순리대로 살면 될 거라 생각한다. 50이라는 숫자에 익숙해지자, 그리고 2026년이라는 숫자에 익숙해지자~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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