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지 않는 삶의 중요성

by 비익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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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꽤나 스포츠 경기에 열광했다. 한창 졸릴 학창 시절에도 새벽 3시에 일어나 월드컵 중계를 시청하고 우리나라 팀의 패배에 어린 나이임에도 많이 침울해 했다. 이는 머리가 굵어져서도 마찬가지였다. 무려 24년 전이긴 하지만 2002년 월드컵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나라 팀의 첫 승, 첫 16강 진출, 8강 진출, (무려) 4강 진출, 그리고 준결승 독일 전에서의 패배 등 우리나라 팀의 일희일비에 나 자신도 덩달아 일희일비했다. 2002년 6월은 오롯이 월드컵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대학원 기말시험도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의 성적이 곧 내 삶의 성적표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한바탕 축제(!)가 끝나고 7월이 되자 내 삶은 급격히 평범하고 우울해졌다.


비단 월드컵 뿐이랴~ 올림픽도 아시안게임도, 왜 그 팀을 응원하는지 지금도 잘 모르지만 내가 응원하는 프로야구 팀의 경기도 그동안 내 삶의 일희일비를 크게 좌우했다.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금메달을 따면 기분이 좋아졌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게 왜 내가 기분이 좋은 일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시상식 맨 위에 올라서는 것도 아닌데, 내가 유명해지는 것도 아닌데, 내가 연금을 받아 생활이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이고 내 삶은 내 삶이라는 것을~ 우리나라 금메달 갯수가 내 삶의 질을 높여 주지 않는다. 여전히 나는 평범하다 못해 우울한 삶을 살고 있고, 스포츠는 그저 잠깐의 현실 도피처였던 것이다. 그걸 명확히 깨달은 순간부터 이젠 스포츠에 그렇게 열광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본다. 우리나라 경기를 꽤 챙겨 본다. 올해도 동계올림픽, WBC, 월드컵, 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스포츠 이벤트가 예정되어 있다. 아마도 나는 가능하다면 우리나라 팀의 생중계를 챙겨볼 것이고, 그게 여의치 않다면 하이라이트라도 챙겨볼 것이다. 하지만 예전만큼 일희일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스포츠를 그냥 그 자체로 즐기고, 우리나라 팀이 이기면 이겼구나 지면 졌구나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사실 축구 국가대표 팀의 경기를 '보는' 것보다 내가 운동장 한 바퀴를 뛰는 게, 계단을 오르는 게 훨씬 내 삶에 도움이 되고 생산적인 일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또하나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다. 내 삶의 이벤트들에서도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의 중요성이다. 한때 목숨을 걸었던 서울대 입학도, 회사에서의 승진도, 지금 이렇게 퇴직하고 백수(!)가 되어 보니 모두 부질없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 특히 회사에서의 승진 누락은 삶의 패배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꽤 오랫동안 내상(!)을 입고 우울증이 가중되기도 하였다. 근데 퇴직하고 난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별로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 그게 뭐라고~ 나는 그냥 나이고 내 삶은 원래 그냥 내 삶일 뿐인데 승진이 뭐라고 왜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혔는지 모르겠다.


인생은 새옹지마다. 지금 당장 좋은 일이 나중에 안 좋게 될 수도 있고, 지금 당장 안 좋은 일이 나중에 좋게 될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불합격했더라도, 패찰했더라도, 내가 누군가의 선택을 받지 못했더라도 그리 좌절하고 낙담하고 우울해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 삶의 순간순간에 점을 찍으며 매순간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잘 살아가는 것이다. 이에 올해는 더욱더 '기대하지 않는 삶'을 살기로 나 자신과 약속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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