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들어가 새터(OT)에서 처음 술을 입에 댔다. 처음 먹는 것이었지만 꽤 '술술' 잘 넘어갔던 기억이 난다. 이후 각종 행사 후 '뒤풀이'는 늘 공식처럼 따라다녔고 그때마다 술이 늘 내 앞에 있었다. 쓴 맛보다는 벌컥벌컥 마시는 느낌이 좋아 소주보다는 맥주를 주로 마셨다. 그렇다면 주량은? 맥주 1000 아니 2000CC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아주 잘 먹는 것도, 아주 못 먹는 것도 아닌,, '술 세계'에서 나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존재였다.
종종 주량 이상 마실 때가 있었다.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갈 때가 있다. 억지로 마실 때도 있었고 자발적으로 마실 때도 있었다. 지금까지 10번 이상은 게워낸(!) 경험이 있다. 아니 그냥 토한다고 하자. 토하는 것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늘 눈물이 날 만큼 힘들었다. 토하면서 운 적도 꽤 여러 번 있는 것 같다. 세상의 온갖 설움을 짊어진 것 마냥 꾸역꾸역 힘들게 후회하며 토해냈다.
술을 마시고 나면 그 후유증이 꽤 오래 갔다. 술에 취하며 잠시 뽕(!)을 맞았던 나는 그 뽕이 풀리고 우울한 현실 세계에 다시 적응할 때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술 마신 다음 날은 정말 우울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술자리를 파하고 귀가할 때부터 우울해졌다. 시끌벅쩍한 모임에서 겨우 빠져나와 혼자 버스를 타고 귀가를 하는 때면 그 우울함이 한층 배가되었다. 그 때 나는 왜 그렇게 우울했을까~ 다시 현실을 마주하며, 다시 혼자라는 사실을 직시하며, 잠시 높이 올라갔던 정신추가 반작용으로 더욱더 낮게 떨어진 것일 게다.
어느 때부터 술을 마시지 않게 되었다. 술 마신 다음 날 아니 다음 순간의 그 크나큰 우울함을 느끼기 싫었다. 뽕을 맞고 잠시 현실 세계를 떠나 있기도 싫었다. 이 우울한 현실을 영원히 떠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언제라도 또렷한 정신으로 현실 세계에 발을 디디고 서 있고 싶었다. 술에 숨어 도피하기 싫었다. 모임도 마찬가지다. 과거 외로움을 가리기 위해 가리지 않고 각종 모임에 참석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모임으로 결코 외로움이 가려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안 이상, 내 마음이 원하는 모임에만 선별적으로 참석을 하게 되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것도, 선별적으로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사실 모두 자기방어적 차원에서 비롯된 일이다. 원래 삶은 디폴트가 우울한 것이고 외로운 것이라 생각한다. 그 디폴트를 더 크게 느끼고 더 힘들어지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자기방어적 차원이다. 인간은 원래 혼자다. 물론 사회적 동물인지라 사회 생활을 오롯이 거부할 수는 없더라도 근본적으로는 원래 혼자다. 혼자 잘 서 있어야 한다. 혼자서도 꿋꿋하게 잘 살아야 한다.
오늘도 나는 자발적 외로움을 선택한다. 매순간 별 볼 일 없는 현실 속에서 깨어 있음을 선택한다. 삶의 극적인 상승장이나 하락장이 아닌 평온한 관망장을 유지하기로 한다. 말 그대로 '소확행'이면 충분하다. 평소보다 한 시간 더 자고 있어났을 때의 개운함, 입 안에 맴도는 커피우유의 달콤함, 글 한 편을 완성했을 때의 작은 성취감이면 충분하다. 술에 취하지 않고, 모임에 기대지도 않으며, 오늘 하루 24시간 온전히 점을 찍으며 살고 싶다. 아니 그렇게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