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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by 퇴근후작가

달리기를 오랫동안 해오면서 종종 듣는 질문 중 하나는 "두세 시간씩 뛰면서 무슨 생각을 하세요?"라는 것입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한다'라고 답변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만, 답변을 할 때마다 왠지 모를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를 지금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면, 사실 달리면서 별다른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질문에 답을 드려야 하니 조금 지어내서 답변을 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달리면서 별다른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생각이라고 해봤자 페이스 조절에 대한 것들, 가령 "어, 지금 너무 빠르네" 혹은 "느리네" 같은 생각이나, 아니면 그냥 걸으면서도 할 수 있는 생각들, "어, 저기 풍경 괜찮네" 정도입니다. 아마 질문자분들은 두세 시간 동안 달리기를 하면서 그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 버티느냐는 생각에 질문을 하셨을 텐데, 생각보다 달리기는 그리 지루하지 않습니다.


이런 질문들을 왜 하실까 하고 생각해 보았을 때, 물론 가장 큰 비중은 '별로 궁금하지는 않지만 예의상' 묻는 것일 테고, 두 번째로는 실제로 달려보지 않았기 때문에 상상만으로는 두 시간이라는 시간이 꽤 길어 지루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상상과는 다르게 흘러갑니다. 그렇다고 정반대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예상치도 못했던 방향으로 말입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막상 뛰어보면 지루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엄청 흥미롭지도 않으며, 각자 느끼는 바가 다릅니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뛰어봐야, 즉 실행해 봐야만 알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 '실행'에 관해서는 저 또한 반성할 점이 많은데, 오늘 이 글감의 주제로 잡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지난 1년 동안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면서 상당한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독자 여러분께 간단히만 설명해 드리면, "재고"를 관리하는 일이었고, 재고라는 것이 항상 잘 맞는 것도 아니고 사실 재고가 안 맞는 날이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재고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완벽한 재고 관리 솔루션'?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 생각 없이 잘못된 재고를 더하거나 마이너스 처리하는 실행력이었습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실뜨기를 하다가 엉켜버릴 대로 엉킨 털뭉치는 가차 없이 자르고 다시 실뜨기를 시작하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실이 꼬이겠지만, 한두 번 꼬인 실은 풀기가 쉽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어떻게 하면 실을 뭉치게 하지 않을까?" 하는 기획과 개선이 아니라, "실이 꼬이자 바로 푸는" 실행력에 있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지금 직장에는 '미라클 모닝'을 함께하는 동료들이 적지 않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미라클 모닝은 출근 시간 전을 활용해 자기 발전에 시간을 두는 것인데, 저희는 그 주제를 운동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식사 시간이나 잠깐 티타임을 할 때 운동을 주제로 담소를 나누는 날도 많아졌는데, 어쩌다가 마라톤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겸사겸사 저도 마라톤을 취미로 한 지 3년 정도가 되었고, 주변 사람들이 제가 취미로 대회에 자주 나간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으니, 어쩌다 보니 다 같이 10km라도 함께 뛰어보자고 하면서 부랴부랴 대회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저야 10km 정도는 개인 최고 기록(PB: Personal Best)을 갱신하는 것이 아니고 완주를 목표로 한다면 그리 어려운 목표는 아니었으나, 난생처음 달리기를 취미로 시작한 팀원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궁금한 것도 많았는데, "어떻게 해야 10km를 안정적으로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러닝이 점점 대중화되어 가는 지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아시는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사실 10km를 완주하는 방법은 그냥 꾸준히 적당한 속도로 달리기만 하면 누구나 완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나이키 런 클럽(NRC)이라는 앱을 이용해서 각자의 달리기를 기록하고 누적 거리를 공유하였는데, 막상 달리기를 꾸준히 하는 팀원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나는 고민만 하지 말고 제발 뛰어"라고 일침을 날리고 싶었지만, 저의 본업은 마라톤이 아니라 직장에 있었기 때문에 원만한 대인관계를 위해 굳이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두 달 정도 우리는 각자 살고 있는 동네에서 달리기를 인증하고 기록하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사실 제가 생각하기에 다들 10km를 충분히 뛸 만한 훈련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결과는 어땠을까요? 10km를 완주하지 못했을까요?

사실 다들 성공적으로 10km를 완주했습니다. 그것도 각자가 예상한 기록을 훨씬 웃도는 수준으로 말입니다.

여기서 저는 한 가지의 메시지를 독자 여러분께 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행이라는 점입니다.


저희가 10km를 완주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고민 없이 10km 대회를 등록하고 참가했었기에 가능했던 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회를 등록하고 나서, 부족하지만 평소에 하지 않던 훈련을 했기 때문에 좋은 성적도 낼 수 있었습니다. 만약 훈련 기간 동안 고민하지 않고 매일 나가서 뛰었으면 이보다 더 좋은 성과도 있었을 수 있겠습니다.


달리기를 시작하려는 주변 사람들은 많은 걱정과 함께 질문을 합니다. "신발은 뭘 사야 해요?", "복장은요?", "얼마나 뛰어야 해요?" 등등. 그런데 달리기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냥 "바로 지금 100m만 뛰고 와야지" 하는 부담 없는 생각과 함께 집을 나서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막상 나가면 100m보다 더 뛰게 되고, 조금 더 걷게 되고, 오늘보다 나은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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