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을 읽고
버지니아 울프는 이 책에서 여성들이 고정적인 수입과 자기만의 방, 즉 물질적으로 독립 가능한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것들이 갖춰져야 안정적으로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인용한 아서 퀼러쿠치 경의 말이 이 사실을 통렬하게 알려주는데, 이를 다시 여기에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지난 100여 년간 위대한 이름을 남긴 시인들은 누구인가? 콜리지, 위즈워스, 바이런, 셸리, 랜더, 키이츠, 테니슨, 브라우닝, 아널드, 모리스, 로제티, 스윈번…… […] 엄연한 사실은 저 열두 명 중에서 아홉이 대학 출신이었다는 것이다. […] 남은 셋 중에서, 여러분이 알다시피 브라우닝이 유복했던 건 엄연한 사실이다. 여러분한테 이렇게 묻고 싶다. 만약 그가 잘 살지 못했더라면, 『사울』이나 『반지와 책』을 쓰는 일은 해낼 수 있었을까. 러스킨이 그의 아버지 사업이 번창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현대 화가들』을 쓰게 되었을까 싶다. 로제티한텐 작은 개인 수입이 있었고, 게다가 그는 그림도 그렸다. […] 분명한 것은 […] 이 시대의 가난한 시인들이, 또 지난 200년 동안에도 아주 작은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169-70쪽)
하지만 나는 이것이 비단 여성에게만, 그리고 글쓰기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글쓰기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방식의 자기표현을 추구하든, 그것을 추구하는 모든 이에게 공통으로 해당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혹 자기표현 욕구가 강해 이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물질적 조건의 중요성을 다소 간과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물질적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곤 한다. 그들은 지금 한 번이라도 자신을 더 표현해야지, 물질에 집착하며 그것의 노예가 되려 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그래서 물질적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표현을 하기 위해 물질적 조건을 일궈내야 함을 그들은 알아야 한다.
책 정보: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33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