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내 삶의 뿌리, 흙이 되어준 사람들
삶의 기둥이 스승의 가르침으로 세워졌다면, 그 기둥을 단단히 붙잡아주고 바람으로부터 지켜준 것은 가족이라는 넓은 어깨였다. 내가 걸어온 모든 시간은 결코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밥상 위에 놓인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의 사랑은 언제나 따뜻한 밥상 위에 있었다. 밥상에 김이 오를 때면 어머니는 늘 남몰래 내 밥그릇 위에 콩 몇 알을 올려주셨다. 그 콩에는 편애가 아닌, 유난히 허약했던 아들을 향한 살가운 정이 담겨 있었다.
생일날이면 집안 가득 퍼지는 떡 찌는 향기가 가난한 집의 가장 큰 잔치였다.
“네가 좋아하니까, 이게 제일 좋다.”
웃음 섞인 목소리로 어머니는 늘 수수팥떡을 만들어 주셨다. 그 떡 보자기를 싸서 낯선 서울의 자췻방으로 가져가면 차갑던 도심의 방이 순식간에 고향의 온기로 변했다.
세월이 흘러 손주들이 태어난 뒤에도 어머니의 사랑은 여전했다. 새벽 안개를 가르며 씨암탉을 잡아 끓여주신 닭백숙 한 그릇. 도시의 아이들에겐 생소했지만, 그것은 손자들을 향한 그리움의 언어였다. 나는 그 국물을 삼키며 어머니의 마음을 함께 삼켰다.
가족의 헌신이 세운 토대
내 인생의 단단한 기초는 나 혼자의 힘이 아니라, 가족들의 묵묵한 땀과 눈물로 다져진 것이다. 넉넉지 않은 형편 속에서도 가족들은 나의 학업과 서울 생활을 위해 자신들이 누려야 할 많은 것들을 기꺼이 양보하고 희생했다.
어릴 적 유난히 병약했던 나는 새벽마다 응급실로 실려 가곤 했다. 그때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달려와 내 차가운 손을 꼭 잡아주던 이들도 가족이었다. 내가 학업에서 작은 성과라도 낼 때면, 본인들의 고단한 삶은 잠시 잊은 채 누구보다 환하게 웃으며 “네가 우리의 희망이다”라고 기뻐해 주었다. 그 믿음과 자부심이 낯선 도시에서 나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었다.
그러나 철없던 시절의 나는 그 헌신을 때로는 마음의 짐으로, 때로는 부끄러움으로 여겼다. 취업 면접장에서 집안 형편이나 가족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가난한 배경이 들킬까 봐 혹은 그들의 고생이 나의 앞길에 흠이 될까 봐 말끝을 흐리곤 했다. 그 비겁했던 순간이 지금도 가슴을 아프게 찌른다.
이제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당당히 말할 것이다. “가족들은 자신들의 꿈을 접어두고 저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저는 그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그들의 몫까지 더 열심히, 더 바르게 살겠습니다.”
그 깊은 사랑의 빚은 평생을 갚아도 다 갚지 못할 것이다.
아내와 동생, 그리고 ‘공동체의 어깨’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은 지금의 아내를 만난 일이었다. 초임 교사로 내 고향에 부임했던 그녀는, 내가 삶의 방향을 잃을 때마다 뿌리를 일깨워 주던 ‘살아 있는 고향’이었다. 그리고 장모님이 곁에 계셨기에 아내와 나는 안심하고 사회생활에 집중할 수 있었다. 두 아이를 정성껏 키우며 우리 부부의 삶을 지탱해 주신 헌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동생과 제수씨에게도 끝없는 감사와 미안함을 느낀다. 내가 도시의 불빛 아래서 꿈을 좇을 때, 그는 학업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함께 공직에 몸담으며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돌보았다. 그들 덕분에 나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을 가질 수 있었다. 아버지의 기억이 묻힌 그 땅에 다시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준 동생과 제수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생 부부뿐만 아니라, 마을을 지켜온 이웃들— 농한기에도 밭을 돌보고, 어르신의 안부를 살피며, 마을 행사를 이끌던 사람들—모두가 든든한 어깨였다. 누군가의 조용한 손길 덕분에 마을의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항구의 등대지기처럼 내 인생의 길을 비춰 준 사람들이었다.
가족의 넓은 어깨 덕분에 나는 넘어지지 않고 다음 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경험이 내게 분명히 가르쳐 주었다.
“치유는 결코 혼자 이루어지지 않는다.”
진정한 치유농장은 서로의 부족함을 덮어 주는 공동체의 어깨 위에서만 가능하다. 이제 나는 내가 받은 사랑을 되돌려 주고 싶다. 서툰 씨앗을 기다려 주는 흙처럼, 미숙했던 나를 묵묵히 기다려 준 부모님처럼, 나 또한 누군가를 기다려 주는 흙이자 그늘이 되고 싶다. 언젠가 그들이 각자의 속도로 싹을 틔우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수 있도록.
도시의 성공은 내 이름을 높였지만 마음을 비워버렸다. 보고서와 숫자는 늘 정확했지만, 그 속에서 사람의 온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하루하루 쌓이는 성취가 오히려 나를 무겁게 만들었다. 회의가 끝난 늦은 밤, 창밖의 불빛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남을까.’
그때 떠오른 것은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어릴 적, 아버지는 늘 흙냄새가 밴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그 손의 거칠음 속에 따뜻함이 있었다. 도시의 시간 속에서 잊고 지냈던 그 냄새가 문득 그리워졌다. 어느 봄날, 출장으로 들른 시골 마을에서 그 기억이 되살아났다. 밭머리에 서자마자 흙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농부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거친 온기, 들판 끝의 민들레 한 송이. 그 모든 것이 낯설게 마음을 흔들었다.
그날 밤 나는 알았다. 나는 오랫동안 머리로만 세상을 이해하려 했다는 것을. 삶은 논리가 아니라 감각으로, 말이 아니라 손으로 이해되는 것임을. 그래서 나는 다시 흙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도시의 성공이 채워주지 못한 ‘살아 있음’을 찾기 위해.
삶의 뿌리에서 피어난 철학
내 삶의 뿌리는 가족이 몸으로 보여준 책임, 성실, 그리고 희생이었다. 그 가르침은 훗날 내가 만든 치유농장의 철학이 되었다. 내가 꿈꾼 농장은 단순히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신뢰와 존중을 키우는 공간이어야 했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끝까지 지켜주는 품격 있는 장소여야 했다. 그 모든 첫 설계도는 나를 길러준 이 따뜻한 땅, 가족의 사랑에서 시작되었다. 내 농장은 그 사랑에 대한 가장 구체적이고 아름다운 응답이다.
그 사랑의 기억을 품은 채, 나는 다시 길을 나섰다. 도시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내 마음은 설렘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낯선 세상에서 무엇을 배우게 될지 알 수 없었지만, 흙의 기억이 내 안에 남아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 기억이 앞으로 나를 지탱해 줄 유일한 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