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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속에서 감정을 잃지 않는 법

기획자의 세계가 인간의 세계와 만나는 지점

by Billy

대기업에서 일하며 세상을 ‘구조’로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기획자에게 구조는 언어이자 믿음이었다.
모든 문제는 구조화하면 해결될 것 같았다.
그림을 그리고, 단계를 나누고, 변수를 줄이면 세상은 통제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사람은 구조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정해진 보고 체계와 효율적인 프로세스 안에서도 누군가는 감정에 휘청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의미를 잃어버린다.

논리로 완성된 기획서가 현장에서 무너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 안에 ‘사람의 온도’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효율적인 프로세스, 깔끔한 로드맵, 완벽한 보고서는 구조가 명확하지만 여백이 없다.
그 모든 ‘정확함’이 오히려 사람의 숨을 막는다.
성과는 남았지만 대화는 사라지고, 성과표는 채워졌지만 표정은 비어간다.

그때부터 나는 구조 속에서도 감정을 남기는 일을 고민했다.


기획이란 결국 사람을 위한 일이어야 하니까, 효율의 완성보다 중요한 건 ‘감정의 자리’를 남겨두는 것이다.
좋은 구조는 사람을 조율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머무를 공간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기획자는 세상을 설계하지만, 그 구조를 살아가는 건 결국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일에서도 글에서도
‘감정이 머무를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

기획자의 언어로 세상을 해석하되,
그 속의 감정을 잃지 않는 것.
그게 내가 일과 글에서 붙잡고 있는 유일한 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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