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함을 말하지 않는 선택은 결제가 아닌 연체다
관계가 망가질 때
항상 큰 사건이 먼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말하지 않은 감정 하나에서 시작된다.
서운함을 느꼈지만
괜히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지금 말하면 더 커질 것 같아서,
혹은 상대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 감정을 잠시 미뤄둔다.
문제는
그 ‘잠시’가 반복될 때다.
감정은
미뤄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표현하지 않았을 뿐,
마음 안에서는 그대로 남아
천천히 쌓인다.
이때부터
관계에는 보이지 않는 빨간불이 켜진다.
관계의 틈은
이 지점에서 생긴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웃고 대화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눌러앉아
상대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간극을 만든다.
감정의 흔적은
이렇게 쌓인다.
한 번의 서운함은 작지만,
말하지 않은 서운함이 누적되면
그 흔적은 생각보다 깊다.
나중에 어떤 말이든
그 흔적 위에서 해석되기 시작한다.
사람의 온도도 변한다.
예전엔 그냥 넘길 수 있던 말이
갑자기 날카롭게 느껴지고,
사소한 행동이
괜히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감정이 과열된 것이 아니라
미납된 감정이 내부에서 발효된 결과다.
우리는 흔히
“참았으니까 괜찮다”고 말한다.
하지만 참았다는 건
결제했다는 뜻이 아니라
청구를 미뤘다는 뜻이다.
감정의 미납은
언젠가 반드시 청구된다.
그리고 그 청구는
대부분 가장 예상치 못한 순간,
가장 사소한 계기로
폭발처럼 날아온다.
상대는 당황한다.
“그게 그렇게 큰 일이었어?”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 말은 지금의 감정이 아니라
그동안 쌓여 있던 모든 미납분의
총액이기 때문이다.
성숙한 관계는
서운함을 느끼지 않는 관계가 아니라
서운함을 제때 처리하는 관계다.
감정이 작을 때 말하고,
온도가 낮을 때 풀고,
틈이 벌어지기 전에 건네는 것.
감정을 말한다는 건
싸우자는 게 아니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미리 정산하겠다는 태도다.
말하지 않은 감정은
관계를 지켜주지 않는다.
오히려 관계를 가장 늦게,
가장 크게 무너뜨린다.
감정은
미루는 순간부터
빚이 된다.
그리고 그 빚은
언젠가 반드시
관계 앞으로 청구된다.
지금 느끼는 작은 서운함을
지금 말할 수 있는 용기.
그게 관계를 살리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