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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줄어서가 아니라,
말의 결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온기가 빠진 순간, 관계는 이미 균열을 시작한다

by Billy

관계가 멀어질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대화의 양이 아니다.



말은 여전히 오간다.
필요한 이야기는 하고,
일상적인 보고도 이어진다.


겉으로 보면
관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말의 질,
정확히 말하면
말의 결이 달라진다.


예전처럼
많이 대화하지 않아도 괜찮다.
관계는 원래
시간이 흐를수록 안정되고
말의 양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문제는
그 줄어든 말 안에
온기가 함께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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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는 이어지지만
감정은 오가지 않는다.


필요한 말만 남고
불필요한 마음은 빠진다.


웃음은 있지만
여운은 없고,
공감은 있지만
호기심은 사라진다.


이때부터
관계의 틈이 생긴다.
아주 미세하게,
눈에 띄지 않게.

가장 분명한 신호는
질문이 줄어드는 순간이다.


“오늘은 어땠어?” 대신
“알겠어.”
“왜 그렇게 느꼈어?” 대신
“그럴 수 있지.”


질문이 사라진다는 건
상대를 알고 싶다는 마음이
조용히 빠져나갔다는 뜻이다.


그 틈은 말없이 넓어지고
관계는 점점 건조해진다.


pexels-clickerhappy-823.jpg

감정의 흔적도
이 지점에 남는다.
크게 다툰 기억은 없는데
왠지 서운함이 쌓이고,
특별한 사건은 없었는데
예전으로 돌아가기 어렵게 느껴진다.


이건 상처가 아니라
온기가 빠져나간 흔적이다.


사람의 온도 역시
이때 달라진다.


예전에는 말 한마디에도
따뜻함이 묻어났는데,
이제는 말이 정확해질수록
차분해지고, 건조해진다.


정확하지만 차가운 말들은
관계를 유지하지만
살아 있게 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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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대화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대화의 온도로 유지된다.


얼마나 많이 말했느냐보다
그 말이
상대를 향해 열려 있었는지가 중요하다.


말의 결이 달라졌다는 건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함께 있음’에서
‘기능적인 연결’로 바뀌었다는 신호다.


이 변화는 소리가 나지 않아서
우리는 종종 너무 늦게 알아차린다.

그래서 관계를 지키는 데 필요한 건
말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결을 되돌리는 일이다.


다시 질문하고,
다시 귀 기울이고,
다시 상대의 온도를 느끼려는 시도.



관계의 균열은
대화가 사라질 때가 아니라
대화에서 마음이 빠질 때 시작된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아직 늦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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