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어에서 아빠를 위해 챙겨 온 것들을 하나둘 꺼내 놓았다. 직접적으로 좋다 싫다 표현을 못하시는 아빠는 정면으로 쳐다보지 않고 비스듬히 옆으로 선채로 안보는 듯 보고 계셨다.
“아빠, 기념품 받은 거 우리 집에는 필요 없어서 몇 개 가져왔어요~ 여기에도 필요 없으시려나? “
“있으면 다~쓴다. 두고 가라~”
“작은 탁상시계. 벨트는 최서방이 선물 받았는데 벨트 잘 안 하잖아요. 가져왔어요. 손목시계도 있고, 아~아빠는 시계 잘 안 차시는데 괜히 가져왔나?”
“다~~~ 쓴다.”
절대로 내가 물건을 마다하는 법이 없으신 아빠다. 소박하게도 너무 반짝이는 새 물건은 아끼느라 꺼내 쓰지도 못하시는 분이 딸들이 주는 물건은 차곡차곡 그것이 무엇이든 받아 모아두신다. 그럼에도 아빠가 욕심내시는 것들은 거창한 것들이 아닌 작은 물건들이다. 심지어 포스트잇, 지우개를 갖다 드려도 좋아하시며 챙기신다. 어릴 적에는 아빠는 물욕 대마왕이라며 노골적인 욕심을 동생과 같이 흉보곤 했지만말이다.
이렇게만 보면 나의 친정집은 저장강박증 환자들 집처럼 물건이 그득그득 들어차 있어야 할 텐데, 부모님 집은 필요한 물건 외에는 밖으로 나와 있지도 않은 깔끔 그 자체이다. 아빠는 머리카락 한 올 바닥에 굴러다니는 걸 못 보시고 찍찍이를 들고 다니시는 분이시다. 씻고 나오실 때마다 물기 제거를 다 하고 나오시기 때문에 화장실 세면대의 수도꼭지는 항상 물때 없이 광이 난다. 책꽂이는 항상 겹쳐 꽂는 것도 없이 선단을 맞춰 정리되어 있고, 서랍에는 물건의 넘침이 없이 필요한 것들이 각 잡혀 정리되어 있다. 필요한 물건을 못 찾는 경우가 없고, 신중하게 고른 물건들은 오래도록 쓰셔서 딸들이 가져오는 물건 외에는 같은 종류의 물건을 여러 개 두지도 않으시고 틈틈이 집을 정리하셔서 치우고 버리신다. 아빠의 이런 성격 덕에 집안에 먼지가 쌓인 것은 드물고, 항상 깨끗하다. 아빠의 이 두 특성 덕에 우리 집에는 물건이 쌓일 수가 없다. 물욕은 있으시지만 새로운 것을 들이기 위해 숱한 고민을 반복하고 신중을 기해 결정하신다.
이런 아빠의 성격을 젤 많이 닮았다는 큰딸인 나는 자라면서 부모님께 떼를 써본 기억이 없다. 부모님께 여쭤봐도 나는 딱히 요구하는 바도 없고, 가리는 것도 없어서 수월하게 키우셨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 어린 내가 원하는 것이 없었을까? 많은 욕구가 있었겠지만, 자연스레 아빠에게 보고 배우며 욕심내지 말고 참아야 한다고 체득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빠도 어렸을 적 바란다고 해도 가질 수 없었던 그 환경에서 자연스레 참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빠와 나는 그래서인지 둘 다 성인이 되어 그동안 눌러두었던 욕구의 반작용처럼 물욕이 발현된 것 같다. 나도 아빠 못지않게 작은 것들에 욕심이 많다. 이를테면 필기구와 노트 같은 문구류는 지금도 아이들보다 사 모으는 것을 더 좋아한다. 용돈이 풍족치 않았던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20년 전에 한 자루 2000원씩이나 하던 하이테크 펜을 색깔별로 하나씩 사 모드는 재미로 필기했다. 문구점 입구에 주룩주룩 걸려있던 한 장에 50~100원 했던 엽서들도 목적도 없이 종류별로 모았다.
지금 우리 집은 아니나 다를까 조금만 내가 방심하면 책이 쌓이고, 각각 다른 세대인 여자 셋의 옷장은 터지기 직전이다. 내가 올해 들어 매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하나 둘 모인 화구들도 한가득이다. 이런 내가 요즘 고민하고 있는 것이 잘 비우기이다. 한창 유행했던 미니멀 라이프를 꿈꿔보기도 했으나, 책을 보면 볼수록 나에게는 절대로 이뤄질 수 없는 삶이라고 체념했다. 그들은 너무 극단적인 미니멀리스트였다.
하지만 아빠처럼 소소한 물욕을 채워가며 살 수 있으려면 반드시 비우기를 잘 해내야 한다. 집 안의 물건들을 비우는 것은 거의 내 마음을 비우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다. 어떤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집중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나머지는 미련 없이 뒤돌아보지 않고 버려야 한다. 그렇게 채우기 위해 비우는 나만의 미니멀 라이프를 항상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