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에서 했던 활동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적어보자면, 갓난아기가 입는 배냇저고리를 만들었던 게 그중 하나다.
(손바느질로 배냇저고리를 만들고 있는 빈아.)
처음부터 끝까지 손바느질로 정성스럽게 만들었던 옷이었다.
빈아_아기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직접 만든 배냇저고리의 냄새를 맡고 있는 빈아의 뒷모습.)
그리고 애니메이션 '모아나'를 모티브로 조각보 의상을 제작해 화보 촬영을 했었다. 그때 함께했던 선배들과는 아직도 연락하고 지낼 정도로 짧은 시간에 서로 많은 걸 얻었다.
(화보 촬영을 하고 있는 빈아팀.)
동아리 활동을 가장 활발히 했던 시기는 내가 3학년이었을 때였는데,
(칠판에 무언가를 적고 있는 빈아와 뒤에 앉아 있는 동아리 친구들. 빈아를 앞에서 바라본 모습.)
그때 나는 이미 학과 학생회장에 외부 패션 동아리 총무 일까지 하고 있던 상태였다.
(뒤를 돌아보며 웃고 있는 빈아.)
그 바쁜 와중에 동아리 활동에서 도전했던 건, 바로 창업이었다.
(칠판에 '2019 목표 / 창업 동아리 선정'이 적혀 있다.)
[인스타툰 스크립트]
2023/12/28 업로드
5-(5-4-2) 스쳐가는 기회와 짧은 망설임 _ 창업에 도전하다
약 4백만 원의 지원금을 타서 시작된 창업 활동은 학교 축제 때 플리마켓에서 판매하는 걸 목표로 상품 제작에 들어갔는데,
(바쁘게 움직이는 동아리 사람들. 일러스트레이터를 켜고 의뢰할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 가방을 만들 천을 고르는 사람, 샘플을 제작하는 사람이 있다.)
온갖 서류들에 시달리면서도 하나하나 완성되는 상품들을 보고 그렇게 설레고 가슴 뛸 수가 없었다.
(무거운 종이 더미를 들고 있는 동아리 친구. 그 앞으로 의뢰한 샘플들이 모여 있다.)
그중에서도 유독 우리가 공을 들였던 게 있었는데, 바로 한복 천과 면 소재를 뒤집어가며 쓸 수 있는 리버시블 에코백이었다.
동아리원들_너무 예쁘지 않니! 근데 너무 우리 취향인가? 이게 잘 팔릴까?
(완성된 가방을 보며 기뻐하는 동아리 사람들. 그러나 잘 팔릴지 걱정인 얼굴들.)
원가를 생각해 2만 원 초반대의 가격으로 판매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좋은 성적을 거뒀었다.
빈아_우리 가방 완판됐어!
(플리마켓. 빈아가 동아리 친구에게 얘기한다.)
그 비결은 3년간 함께했던 멤버들과 서툰 우리를 믿고 따라와 준 후배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 플리마켓을 시작으로 다양한 전시 활동을 이어갔고, 그렇게 우리 동아리를 세상에 알렸다. 지금도 그 동아리는 왕성하게 활동 중이고, 우리보다 더 멋진 후배들이 빈 곳을 메꾸며 단단히 다지는 중이다.
빈아_이번엔 이런 걸 만들었구나. 예쁘다.
(핸드폰을 보는 빈아.)
그 과정 중에 정말 힘들었던 순간을 말하자면, 공장에 의뢰하러 갈 때였는데, 그날 유독 비가 많이 내렸었다. 지하철 역에서 나와 공장까지 걸어가는 데 우산을 뚫고 들어오는 빗줄기에 온몸이 다 젖었더랬다.
(비가 엄청 내리고 있다. 옷이 젖은 채 비를 뚫고 걸어가는 빈아.)
그래도 그렇게 쏟아지는 비를 헤집고 나아가 실력 있는 분들을 만났고, 그렇게 멋진 가방이 탄생할 수 있었다.
(공장 사장님과 빈아. 악수를 하며 서로 믿는다는 사인을 보낸다.)
힘들기도 했지만, 가장 돌아가고 싶은 때가 언제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늘 그때라고 답한다.
(빈아가 누워있고, 학생회장, 패션 동아리 총무, 한복 동아리가 각각 적힌 팻말과 나무가 빈아를 둘러싸고 있다.)
2019년. 내가 가장 바빴고, 그래서 행복했던 때였다.
(빈아의 시선. 나뭇잎으로 부분 부분 가려진 하늘. 텍스트는 그 가운데에 배치.)
나는 대학 입학도 전에 입시 자료를 통해 우리 학과에 한복 동아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복 커리큘럼이 있고 심지어 한복 동아리도 있다는 것이 내게 있어 이 학교의 큰 매력이었다. 그래서 입학하자마자 올라온 동아리원 모집 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했다. 그렇게 3년간 알찬 동아리 활동을 하고 졸업했다.
동아리에서 했던 활동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적어보자면, 1학년때 배냇저고리를 만들었던 게 그중 하나가 되겠다. 배냇저고리는 갓난아기가 입는 옷으로 깃과 섶이 없는데, 크기도 작아서 금방 만들었다. 나에게 선물할 아기가 있다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손바느질로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완성된 옷을 보고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럽던지. 천 냄새가 마치 아기에게서 나는 냄새로 느껴졌다.
그리고 팀끼리 옷을 제작해 화보 촬영을 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 팀은 애니메이션 '모아나'를 모티브로 조각보가 포인트인 의상을 제작했고, 트로피칼을 배경으로 화보를 찍었다. 신입생이라 의욕이 앞섰던 내 모습이 가끔 아른 거리는데, 그때 만났던 선배 언니들과 여러 번 사석에서 만났을 정도로 우린 짧은 시간에 많이 친해졌다.
동아리 활동을 가장 많이 했던 시기는 내가 3학년이었을 때였는데, 나와 함께 1학년때부터 활동했던 동기들이 주축이 되어 창업 동아리에 지원했다. 거기서 1등을 해서 약 4백만 원의 지원금을 받게 되었고, 그걸 기반으로 학교 플리마켓에서 판매할 다양한 상품들을 제작했다. 가장 공을 들였던 건, 한복에 자주 쓰이는 양단으로 제작된 면과 면 소재의 면, 즉 양면으로 뒤집어서 쓸 수 있는 리버시블 에코백이었다. 원단을 알아보는 것부터 공장 섭외 및 의뢰, 로고 및 라벨 제작... 정말 쉼 없이 움직였던 시기였다. 에코백은 원가를 고려해 약 2만 원대로 판매했었는데, 완판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남겨주었다. 야심 차게 준비한 스티커나 메모지 등은 재고가 한가득 남은데 비해, 우리의 취향을 가득 담은 나머지 잘 팔릴까 싶었던 가방은 에코백 시가보다 더 높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완판 되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마음은 이렇게 알 수가 없구나, 싶다가도 우리가 그만큼 애정을 담아 제작했기 때문에 그게 시장성이 있었다는 판단이다.
지원금을 받는 창업 활동은 서류와의 전쟁이었는데, 3년간 함께했던 멤버들이 있었기에 잘 헤쳐나갈 수 있었다. 모든 게 처음이었던 우리였기에 이것저것 서툴렀지만, 한편으론 그랬기에 빛나고 가슴 뛰는 순간들로 가득 찼다. 그때 굿즈를 제작하고 의뢰했던 경험은 아직까지도 쏠쏠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가방은 다음 해에 컬러 리뉴얼을 거쳐 파우치까지 추가로 제작해 판매했고, 그때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어 다양한 전시 활동을 이어갔고, 그렇게 우리 동아리를 세상에 알렸다. 지금도 그 동아리는 왕성하게 활동 중이고, 우리보다 더 멋진 후배들이 빈 곳을 메꾸며 단단히 다지는 중이다.
그 과정 중에 정말 힘들었던 순간을 말하자면, 공장에 의뢰하러 갈 때 그날 유독 비가 많이 내렸었다. 지하철 역에서 나와 공장까지 걸어가는 데 우산을 뚫고 들어오는 빗줄기에 온몸이 다 젖었더랬다. 그래도 그렇게 쏟아지는 비를 헤집고 나아가 실력 있는 분들을 만났고, 그렇게 멋진 가방이 탄생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창업 활동을 했던 건 내가 3학년이었을 때였다. 3학년의 나는 이미 학과 학생회장이었고, 외부 패션 동아리 총무였다. 그때의 나는 과연 한 몸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몸이 여러 개인 것처럼 돌아다녔던 것 같다. 힘들기도 했지만, 누가 가장 돌아가고 싶은 때가 언제냐고 물어보면 나는 늘 그때라고 답한다. 2019년. 내가 가장 바빴고 그래서 행복했던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