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저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할 뿐이고, 그 시간에 느끼는 두려움을 가까운 지인에게 말로 풀어내고 싶은 것이다.
빈아_ 그래. 결국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
(빈아 앞에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바로 코앞에 시작점이 있고, 다른 하나는 저 멀리 있다.)
혹자는 준비가 완벽하게 된 상태에서 시작하지 말라고 한다. 어차피 그럴 수는 없으니까.
(시작점이 가까운 길 앞에 서 있는 빈아.)
그러나 '시작'은 '그냥' 할 수 없다.
(시작점이 멀리 있는 길을 바라보는 빈아.)
자기 나름 준비하는 기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에 자기 불안을 낮추는 작업을 하면서 스스로에게도 계속 물어봐야 한다.
(그쪽 길로 방향을 튼다.)
빈아_ 나는 정말 이걸 하고 싶은 건가? 한참 해보고 나서 아닌 걸 알아도 괜찮을 수 있는가?
(멈칫, 멈추는 빈아의 발 클로즈업.)
그 기간이 길어지는 게 문제라면, 한번 생각해 보자. 무엇을 기준에 두고 보길래 그게 길다고 생각하는지.
(시작점이 가까웠던 길을 바라보는 빈아.)
그냥 시작해 보는 게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그게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빈아_ 뭐가 필요하지? 뭐부터 하면 되려나~
(길을 노트 삼아 계획을 적는 빈아.)
나는 인스타툰을 해야겠다고 결정하고 준비해서 실행하기까지 넉 달 정도 걸렸다. 그때 나는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자는 마음 반, 그냥 해보자는 마음 반이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어차피 글과 그림에 있어 백 퍼센트의 만족은 없으니, 이 정도 했다면 일단 해보자는 거였다. 그렇게 빈아와 백야 캐릭터를 탄생시켜 저작권을 등록하고 첫 게시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냥 무작정 시작한 걸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내게 필요한 준비 시간을 거의 다 쓴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그냥' 시작해 볼 정도로 불안과 두려움이 낮아진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 하고 싶냐는, 스스로가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이 선명해진 시기였다. 그러기까지 넉 달이 걸린 것이고, 그 시간이 남들이 보기엔 짧다, 길다 느낄지 모르겠지만 내겐 딱 적절했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때 자기에게 맞는 준비 시간, 정도를 알고 다른 것들과 비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충분히, 적절한 순간에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게 생각보다 나와 맞지 않았다는 것도 발견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그렇게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찾아내어 자기만의 길을 발견하게 되고, 그래서 중간중간 좌절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오히려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길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시야도 확보할 수 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한계를 정하지 않고 살기로 했다. 강도는 조절해야겠지만 종류는 제한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다채롭게, 준비하고 시작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내 길에 수많은 기록들을 남기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