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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아 Dec 01. 2023

나를 닮은

[인스타툰 스크립트]

2023/12/01 업로드


당신이 당신이 아닐 때

(회사. 동료들과 회의를 하는 빈아. 퀭한 눈을 하고 억지로 웃으며 의견을 내고 있다.)


사람들이 좋아했다면,

(사람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고개를 돌렸을 때 마주한 유리창 속 당신의 얼굴에

(퇴근하기 위해 층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가는 빈아.)


그늘이 가득하다면,

(유리문으로 시선을 돌리며 스스로를 바라보는 빈아. 표정이 없이 그늘로 가득한 얼굴.)


그렇게 당신을 잃어가고 있다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빈아가 우두커니 서서 텅 빈 엘리베이터를 바라보고 서있다. 빈아의 뒷모습.)


오늘, 당신을 위한 작은 선물을 사자.

(회사를 나와 집에 가는 길. 빈아가 멈칫하고 한 상점을 바라본다.)


'그걸 살 건가요?'

(상점 안에서 바라본 빈아.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다.)


'당신을 많이 닮았네요.'

(옅은 미소를 짓는 빈아의 옆모습.)


 당신은 흔히 '보상 심리'라고 불리는, 퇴근 후의 소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배달 음식, 의류 쇼핑, 위스키 한잔... 어쩌면 그것들은 언제든 할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이지만, 쳇바퀴 굴러가듯 사는 이에겐 매일 저녁 찾아오는 그 혼자만의 시간이 유일한 낙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람과 일과 회사에 치여 살다가 나에게 작고 소중한 것들을 선물해 줄 때 그 잠깐은 정말 회복되는 듯 좋아져도, 결국 다음날 아침이 되면 오늘의 아침과 별반 다르지 않은 기분 상태가 되기 일쑤다. 소비도 소비 나름이고 그날 하루가 어땠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결국 반복되는 시간표 속에서 그저 오늘 하루를 잘 버틴 나에게 대견하다 토닥여주는 정도의 역할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가치 있었지만 동시에 허무했다.


 그런 삶이 잘 맞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내 주변에도 있다. 나는 아니었을 뿐이다. 그래서 보상 심리에 이끌려 퇴근 후 소비를 하는 것을 안 좋게 보지 않는다. 그게 그들을 버티게 하고 살게 한다면 해야 한다. 본인을 살리는 게 우선이니까. 다만, 그걸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 것인지만 한 번씩 살펴봐 주길 감히 바랄 뿐이다. 적어도 내가 아끼는 사람들은 나와 함께 오래도록 살았으면 하니까.


 생각해 보면 나도 직장을 다녔을 땐 저녁 시간을 그냥 보내기 참 아쉬워했다. 내일이 오면 또 출근을 해야 하고 가기 싫은 회사에 가야 하는데, 그러면 지금 이 시간만이 나의 유일한 자유시간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삶을 더 이상 반복하기 싫어, 물론 이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퇴사를 결정했다. 오늘의 퇴근과 내일의 출근 사이, 그 시간만이 온전한 내 시간이라면, 그렇게 여기고 있다면, 그 일은 그만둬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일로, 재밌는 일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처럼 젊을 때(사실 젊을 때라는 것도 틀에 박힌 생각이지만) 하고 싶은 것들에 도전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그런 삶을 살고 있다.


 그래도 그렇게 스스로에게 받은 선물들을 되짚어 보며 느꼈던 건, 그 선물들이 나를 많이 닮아 있어서 나를 대신 설명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들이었고, 그래서 그 소비를 통해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 이걸 소비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열심히 일했지, 하며 일을 하는 것을 납득하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나마 잠깐이라도 행복할 수 있었다.


 사실 언제까지 이런 삶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하고 싶으면서도 좀 더 다양하고 동시에 안정적인 삶을 꿈꾼다. 어쩌면 삶은 늘 이런 식이다. 자기가 선택한 일을 하면서 또 다른 걸 시도하고자 하는 꿍꿍이를 갖는 것. 나를 닮은 것들로 채워가며, 동시에 나와 다른 것들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 그러나 이것은 현시대를 살아감에 있어 놓쳐서는 안 되는 삶의 방식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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