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아 Jun 22. 2023

나에게 수업 시간은

3. 내 인생의 동반자, 성실 _ (1) 필기의 기억

[인스타툰 스크립트]

2023/06/22 업로드


3-(1) 나에게 수업 시간은 _ 필기의 기억


나는 손으로 메모하는 걸 좋아한다.

(작은 스프링 노트에 메모를 하고 있는 빈아. 주변에 메모지들이 펼쳐져 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들 내 손을 거쳐 종이에 남기까지 여러 거름망을 거쳐 정돈되는데, 그 과정과 더불어 글씨를 쓰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 즐거움을 준다.

(빈아의 실루엣 안에 보고 들은 것들이 종이에 써지기까지의 과정이 표현되어 있다. 외부의 것이 눈과 귀, 뇌를 거쳐 심장에 들렀다가 펜을 잡은 손으로 오고, 종이에 남겨진다.)


메모가 좋아진 이유는 학창 시절 필기 했던 습관과 연결된다.

(교실에 걸린 칠판, 시계, 시간표가 보이는 배경. 스피커에서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다.)


당시 학원을 거의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겐 학교 수업과 인터넷 강의가 전부였고 그 전부를 담으려면 손을 바삐 움직일 수밖에 없었는데,

(선생님의 뒷모습. 그 너머로 보이는 빈아. 열심히 필기를 하고 있다.)


그 모습 덕분인지 나는 선생님과 친구들로 하여금 수업을 잘 듣는 성실한 학생이 되었다.

(쉬는 시간, 빈아에게 '필기 좀 보여줄래?' 하고 말하는 친구.)


완벽주의에 갇혀있던 나에게 수업 시간에 자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래서 수업을 열심히 듣는 건 온전히 내 선택이었다.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버텨지는 일이었고, 정말 졸리면 키다리 책상에서 서서 들으면 되었다.

(교실 뒤쪽에 있는 높은 책상에서 서서 수업을 듣는 빈아. 피곤해 보이지만 눈을 부릅뜨고 수업을 듣고 있다.)


그 태도가 성적으로 이어지든 그렇지 않든, 수업시간만큼은 선생님과 교감하며 배움의 기쁨을 충실히 느꼈다.

(그렇게 서있는 빈아와 눈이 마주치는 선생님. 서로 똘망똘망하고 다정한 눈을 하며 쳐다본다.)


이마에 써진 '성실'이라는 단어가 스스로를 힘들게 했을지라도, 커가면서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그때의 기억들이 나를 다독여줬다.

(이마에 '성실'이라고 쓰여 있는 빈아. 공부하기 위해 앞머리를 핀으로 넘기고 있다.)


나는 그렇게 열심히 했었다고, 진심이었다고, 치열했다고. 그러니 내 눈앞에 닥친 것도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텍스트만 넣어 내용 강조.)


 나는 글과 관련된 모든 것을 사랑한다. 그래서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가 전부 들어가 있는 문학 수업을 참 좋아했다. 이과였지만 국어 수업이 더 재밌었고, 비록 정형화된 해석 방법으로 인해 작품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막히게 되더라도 그저 그 작품들과 함께하는 순간들이 좋았다. 필기할 게 많은 과목들도 좋아했는데, 특히 역사 수업은 전 수업시간부터 기다리기까지 했었다. 역사는 차마 교과서에 다 담을 수 없는 방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을 통해 들을 수 있는 번외편들이 많았다.


 필기는 열심히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었다. 학원을 거의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겐 수업시간이 정말 소중했고, 그 간절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행위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필기하는 것 자체가 좋아졌다. 내가 들은 내용을 내가 봐도 잘 요약해서 썼을 때, 그 작은 희열들이 수업을 더 재밌게 들을 수 있게 했다. 여백에 필기들이 채워질 때마다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고, 그건 내가 열심히 들었다는 증표와도 같았다. 그래서 수업시간엔 졸려도 절대 자지 않고 선생님의 말씀들을 내 나름대로 정리하며 받아 적었고, 다들 그 모습이 는지 놓친 내용이 있을 때면 필기한 것을 보여달라는 부탁을 자주 해왔다. 특히 선생님들 사이에서 수업을 열심히 듣는 학생으로 각인되었고, 내 이마엔 '성실'이라는 단어가 적히게 되었다.


 이러한 성실함은 스스로를 힘들게 하기도 했지만, 커가면서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그때의 기억들이 나를 다독여줬다. 나는 그렇게 열심히 했었다고, 진심이었다고, 치열했다고. 그러니 내 눈앞에 닥친 것도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어쩌면 필기를 넘어 무언가를 배우는 그 순간 자체를 좋아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들어오는 것만큼 내보내지지 않더라도 새로운 것들을 흡수하며 몰입하는 시간들이 너무 소중해서 펜을 잡고 있는 손을 더욱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필기하는 실력도 늘어났고, 그 습관은 대학을 입학해서도, 외부 강연을 들을 때에도 요긴하게 쓰였다.


 사실 필기를 보여달라는 부탁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자지 않고 열심히 수업을 들었고, 그래서 얻은 것들인데 선생님 앞에서 대놓고 푹 잔 친구가 내 노력들을 공짜로 앗아가 버리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싫은 티를 낸 적도 많았고, 심지어 그런 친구가 나보다 성적이 좋을 때면 몰래 질투하기도 했다.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좀 더 다정하고 너그러웠다면 어땠을까, 도움이 되는 것만으로도 거기서 오는 이타심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만의 청소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