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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아 Jun 23. 2023

나를 살게 한 순간들

3. 내 인생의 동반자, 성실 _ (2) 야간자율학습

[인스타툰 스크립트]

2023/06/23 업로드


3-(2) 나를 살게 한 순간들 _ 야간자율학습

*야자: 야간자율학습


내가 다시 그때처럼 열심히 살 수 있을까, 싶은 시기가 있다. 바로 고등학생 시절이다. 고등학생 때 나는 수업이 끝나면 매일같이 야자실에 갔다.

(늦은 오후, 야자실 건물을 바라보는 빈아.)


칸막이가 있는 책상이 빼곡히 채워진 그곳은 나의 수험생활의 전부였다. 학원, 독서실을 거의 이용하지 않았던 터라 선생님의 감독과 친구들의 에너지로 채워진 분위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학교에 최대한 오래 있었다.

(칸막이 책상이 보이는 야자실 공간.)


1교시 수업 시작 전에 있었던 아침 자습 시간부터 수업 시간, 방과 후, 그리고 야간 자율 학습 시간까지 더하면 하루 종일 학교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간표 그림. 머리에 띠를 두르고 퀭한 눈으로 공부하는 빈아.)


그래서 나에게 집은 그저 잠만 자는 곳이었다.

(달이 그려져 있고, 침대에 쓰러져 자고 있는 빈아의 뒷모습.)


특히 야자실장을 맡았었기 때문에 야자를 마치고 내부를 깨끗이 청소한 후 모든 불을 끄고 나서야 집에 갈 수 있었는데,

(야자실 불을 끄는 빈아. 불 꺼진 공간을 바라본다. 밖엔 쓰레기 봉투가 있다.)


이 이야기는 훗날 나의 대입 자기소개서 1번 문항의 첫 번째 문장이 되었다.

(자기소개서 서류에 '항상 학교 야간자율학습실의 불을 끄고 나오는 학생이 있었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야자를 마치고 쓰레기장으로 가로질러갔던 운동장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때가 유일한 휴식시간이었는데, 깜깜해진 하늘에 별이 가득히 반짝였던 기억이 난다.

(쓰레기 봉지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는 빈아. 밤하늘에 별이 가득하다.)


야자실을 청소하고 나오며 모든 불을 끄는 순간엔 오늘 하루도 잘 버텼다고 스스로를 다독였고,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가로질러갔던 운동장에서는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며 끈끈한 우정을 쌓았다. 그리고 밤하늘의 별과 마주하며 작고 여린 나를 위로하는 빛을 온몸으로 느꼈다.

(친구와 어깨동무하고 걸어가는 빈아의 뒷모습.)


내가 나일 수 있었던 그 잠시 잠깐의 순간들, 그 순간들이 그때의 나를 살게 했다.

(어깨동무한 친구와 손 클로즈업.)


 아직 살아온 생이 짧지만 내가 그때처럼 열심히 살 수 있을까 싶은 시기가 있다. 바로 고등학생 시절이다. 어느 수험생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그때 공부에 들였던 나의 시간적 노력만큼은 엄청났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반강제로 이뤄진 루틴들이 나에게 잘 맞았고, 그걸 성실하게 해 나가면서 내 것으로 만들었다. 고등학교 3학년 기준으로 그때의 내 생활을 돌아보면, 아침에 일어나 1교시 수업시작 1시간 전까지 학교에 가서 아침자습 시간을 활용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 시간에 오겠다고 선생님과 약속했고, 덕분에 우리는 아침부터 열의를 불태웠다. 그러고 나서 점심시간까지 수업을 듣고, 점심 직후에 이어지는 영어 듣기 방송에 맞춰 3개 학년 중 제일 먼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6, 7교시까지 수업을 마저 들은 후 방과 후 수업까지 들었다.


 그렇게 저녁을 먹는 시간이 되면 급식실로 가 허기진 배를 달랬고, 야간자율학습실(이하 야자실)로 이동해 밤 10시 30분까지 자습을 했다. 그 하루동안 끝내기로 한 것들을 차례차례 마무리하다 보면 금방 시간이 지나가 있었고, 10시부터는 집에 가는 때만을 기다렸었다.


 시험기간엔 야자를 마치고 24시간 하는 카페에 가서 12, 1시 정도까지 더 공부한 후 집에 갔다. 집에선 집중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집엔 최대한 늦게 들어갔다.


 그래서 야자실 곳곳엔 나의 땀과 노력들이 묻어있었다. 그 안에 있으면서 나는 때로 파이팅 넘쳤고 때로 좌절했다. 친구와 같이 울기도 했고, 쉬는 시간마다 수다를 떨며 많은 추억을 남기기도 했다. 그 공간에 나밖에 없었다면 나는 그 시간들을 절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성실한 성향이었다 해도 '함께'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다.


 야자실을 청소하고 나오며 모든 불을 끄는 순간엔 오늘 하루도 잘 버텼다고 스스로를 다독였고,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가로질러갔던 운동장에서는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며 끈끈한 우정을 쌓았다. 그리고 밤하늘의 별과 마주하며 작고 여린 나를 위로하는 빛을 온몸으로 느꼈다. 지나고 보니 내가 어떤 걸 공부했고, 어떤 문제를 틀렸는지보다 내가 나일 수 있었던 잠시 잠깐의 순간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조각들이 모여 나를 성장시켰고 살게 했다. 그리고 그렇게 들인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대학에 붙을 거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이 절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닐 수 있었던 것이다.


 수시에 합격하기 위해 교내 활동을 열심히 했었는데, 덕분에 서 1번 즉, 학교 생활과 관련된 내용을 적는 문항의 첫 문장부터 다음과 같이 적을 수 있었다. '항상 학교 야간자율학습실의 불을 끄고 나오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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