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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아 Mar 08. 2024

자책과 흔한 위로

[인스타툰 스크립트]

2024/03/08 업로드


"사람은 누구나 실수해." 맞는 말이다.

(실수로 인해 자책하고 있는 빈아를 위로하는 누군가.)


그런데 이런 흔한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자책하게 될 때마다 어떻게 했는가? 빨리 극복해야만 그나마 덜 심각해진다고 여겨 치유의 속도를 마음대로 조정하진 않았는가?

빈아_맞아. 나 괜찮아! 빨리 극복할게!

(위로의 말을 듣고 되레 쓴웃음을 짓는 빈아.)


그러나 그건 착각이다.

(벽에 스크레치가 그어진다.)


한번 생긴 스크레치는 제대로 들여다보고 치유해 주지 않으면 그 흔적이 오히려 선명해지기만 한다. 그리고 그 선명해진 기억이 두고두고 나를 괴롭힌다.

(스크레치가 점점 커지더니 빈아에게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러니 실수했다면, 그래서 자책했다면 그 감정을 충분히 느끼는 시간을 가져보자. 더 이상 빨리 회복하려고 애쓰지 말자.

(커진 스크레치를 바라보는 빈아의 뒷모습.)


일의 심각성이나 감정의 어둠이 얼마나 큰지, 아님 생각보다 작은지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 해결책 또한 보일리 없다.

(스크레치와 빈아 사이에 가시 달린 돋보기가 있다. 스크레치가 실제 크기보다 크게 보였던 이유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차피 다시 되돌릴 수 없고 더 잘할 일만 남았다. 다시 반복하지 않게 그 일을 통해 배울 점에 집중하고, 그 순간 느낀 불편한 감정이 자연적으로 치유되길 기다리며 그 상황에서 당황했을 스스로를 다독이고 안아주고, 혼내는 시간을 가지자.

(가시 달린 돋보기의 방향을 반대로 돌리는 빈아. 가시를 보호의 용도로 바꾼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흔한 위로의 말'을 해주는 것이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바깥으로 향한 가시. 스크레치를 메꾸는 빈아.)


그러면 그 말은 더 이상 흔해 빠진 말이 되지 않는다.

(가시가 털로 바뀌며 따뜻한 온기가 더해진다.)


 우리는 어쩌면 매일 실수한다. 그리고 자책한다. 순탄하게만 흘러간 것 같은 하루도 돌이켜보면 나도 모르는 새 가벼운 상흔이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우린 자책의 크기가 크든 작든 그 순간을 잘 벗어나고 극복하는 게 중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해. 그러면서 배우는 거지. 잘하려다가 그런 거잖아. 괜찮아, 결국 잊혀.’


 이런 말들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계속 곱씹게만 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어떻게 했는가? 정말 저렇게 생각하며 다독여지지도 않는 마음을 부여잡고 꾸역꾸역 살아갔는가? 나는 어릴 때부터 완벽하게 잘 해내는 사람이고 싶었기 때문에 자책을 밥먹듯이 했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앞으로 내밀기 바빴다. 빨리 회복해야 그나마 덜 욕먹는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나도 그만큼 빨리 회복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한번 생긴 스크레치는 제대로 들여다보고 치유해 주지 않으면 그 흔적이 더 선명해지기 마련이었다.


 요즘 나는 오히려 자책이라는 감정을 충분히 느끼는 시간을 갖는다. 이젠 더 이상 빨리 회복하려고 애쓰고 싶지 않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판단해 본 바, 그럴수록 상황은 더 악화되기만 하고, 그 선명해진 기억이 두고두고 나를 괴롭힐게 뻔하기 때문이다. 힘들더라도 정면으로 직시하고 수용하면 그 상황과 내 감정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게 되고, 그래서 일의 심각성이나 감정의 어둠이 얼마나 큰지, 혹은 생각보다 작은 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비교적 명확해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차피 다시 되돌릴 수는 없고 더 잘할 일만 남았다. 다시 반복하지 않게 그 일을 통해 배울 점에 집중하면 되고, 그 순간 느낀 불편한 감정이 자연적으로 치유될 때까지 기다리며 그 상황에서 당황했을 스스로를 다독이고 안아주고 혼내는 시간을 가지면 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똑같이 '흔한' 말이라도 무작정 빨리 벗어나려고 튀어나오는 말들보단 부드럽다. 가시가 자기에게로 향해있는지도 모르는 채 이미 상처 입은 곳에 더 난잡한 스크레치를 남기고 있다면, 그 날카로운 끝을 조금 다듬어서 바깥을 향하게 하면 된다. 그러면 그 가시는 다른 부정의 기운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때로는 털이 되어 따뜻하게 안아주는 존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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