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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아 Mar 22. 2024

진상 손님이 휩쓸고 간 자리

6.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_ (2-2) 서비스직의 숙명

[인스타툰 스크립트]

2024/03/22 업로드


6-(2-2) 진상 손님이 휩쓸고 간 자리 _ 서비스직의 숙명


어느 날, 혼자 매장을 보고 있을 때였다. 술냄새와 함께 들어온 손님 두 명이 매장을 돌아다니며 신발들을 건들기 시작했다.

(술냄새를 풍기며 매장에 들어오는 손님 2명.)


그러다 의자에 앉더니 마음에 드는 신발들을 가리키며 다 가져와보라고 했다. 사실 여기까진 늘 있는 상황이었고, 그게 내 일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힘들지 않았다.

손님1_저거 240 주세요! 저것도요!

손님2_나는 이거!

(손님들이 신발을 가리키며 빈아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신어보겠다는 신발이 하나둘씩 늘어가더니 어느 순간 매장 전체가 신발과 박스들로 가득 찬 게 아니겠는가. 들은 만취 상태로 그곳이 집인지 매장인지도 구분하지 못한 채 요구한 신발을 갖다 드리면 신어보지도 않고 다른 신발을 가리키길 몇 차례 반복하셨다.

빈아_여기요!

손님2_그거 말고 저거는 사이즈 있어요?

(빈아가 가져온 신발을 손님에게 주려고 하지만 다른 신발에 관심이 생긴 손님.)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던 그들은 내가 또다시 새 신발을 가져온 사이 매장을 나가고 없었다. 나는 3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그들의 술기운에 놀아난 사람이 되어버렸다.

(창고에서 신발을 가져온 빈아. 손님이 가고 없어 놀란 뒷모습.)


그날, 널브러진 상품들을 정리하며 깨달았다.

(신발과 박스들로 엉망이 된 매장.)


서비스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손님이 왕이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손님만 왕이 아니다. 그렇다고 직원이 왕도 아니다. 서로 인간 대 인간으로 존중해주기만 하면 된다.

(정리를 하던 빈아가 신발 하나를 잡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평온했던 하루가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기에 말 한마디, 태도 하나가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 생각보다 크다는 걸 서로 알 필요가 있다.

빈아_오늘 유독 피곤하네.

(퇴근하는 빈아. 피곤해 보인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물건을 살 때 매장 직원에게 더욱더 친절을 베풀었다. 오히려 직원으로서의 자세보다 손님으로의 자세를 더 배운 샘이다.

(옷을 사러 간 빈아. 직원에게 친절히 요청하는 모습.)


그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알게 되었으니까. 그들이 어 수 없이 자신을 낮춰야 하는 순간까지 마음 쓸 순 없어도 스스로를 지 않으며 살아갔으면 하니까.

(직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빈아. 자기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아르바이트 자체가 처음이었던 그때, 타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게 내게 어색하게 다가왔을뿐더러 정말 쉽지 않았다. 그러나 매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판매할 상품은 어떤 종류로 나뉘는지, 내가 맡은 업무는 무엇인지를 하루빨리 터득해야 후에 일하기 수월해질 거라 생각했고, 덕분에 첫 한 주는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곳은 규모는 작은 편이었지만 창고가 여러 곳에 흩어져 있어서 손님이 요구하는 상품이 어디 창고 어느 위치에 가야 있는지를 빨리 파악해야 했다. 특히 상품이 신발이다 보니 물건을 매장으로 가져올 때 손님이 원하는 사이즈의 위아래로 하나씩을 더 챙겨야 했다. 그러나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돈을 받고 일하는 입장에서 당연히 감당할 수 있는 업무였고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은 혼자 근무하던 중 진상 손님 2명이 들어왔을 때였다. 술냄새와 함께 들어온 그들은 매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모든 신발을 건드렸다. 그러다 의자에 앉더니 마음에 드는 신발을 이것저것 가리키며 신어보겠다고 했다. 사실 여기까진 특별히 힘들지 않았다. 늘 있는 상황이었고, 다행히 다른 손님들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한참을 신어보더니 갑자기 그냥 나가는 게 아닌가. 이것도 그럴 수 있는데, 그분들의 태도가 정말 별로였다. 거의 만취 상태로 보였던 그들은 그곳이 집인지 매장인지 구분도 못하는 상황이었고, 요구한 신발을 갖다 드리면 신어보지도 않고 다른 신발을 요구하길 몇 차례. 그 덕에 매장은 약 스무 의 신발과 박스들로 난장판이 되었고, 30분 만에 나는 그들의 술기운에 놀아난 사람이 되었다.


 그들이 가고 널브러진 상품들을 정리하며 느꼈다. 서비스직에서 손님만 왕이 아니다. 그렇다고 직원이 왕도 아니다. 서로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며 존중해주기만 하면 된다. 그 선을 지키면서 손님은 직원에게 필요한 것을 요구하고, 직원은 정확한 판단 하에 그 요구를 들어주면 된다. 누구 말 따나 직원도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니 말이다. 평온했던 하루가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말 한마디, 태도 하나가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 생각보다 크다는 걸 서로 알 필요가 있다.


 일을 하면서 판매직이 어떤 일을 하고 그게 나와 잘 맞는지 아닌지 등을 배우며 많이 성장할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사람에 대해 많이 배웠다. 그래서 내가 손님이 되는 상황이 오면 직원에게 그렇게 친절을 베풀었다. 오히려 직원으로서의 자세보다 손님으로의 자세를 더 배운 샘이다. 그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알게 되었으니까. 오늘 하루 힘들었어도 내 덕에, 내 한마디 덕에 조금 나아졌으면 하니까. 물론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게 있다고, 반대로 직원이 무례한 경우 나 역시 그리 친절히 대하진 않는다.


 파는 물건에 따라, 주요 손님 부류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만 서비스직은 결국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나를 낮춰가며 응대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와 함께 해야 할 것이 나를 잃지는 않는 것. 그래야 그 마음이 선순환을 일으켜 내 태도로, 말투로 드러나고, 그게 손님에게 닿아 매장 매출로 이어진다. 코로나 19로 인해 손님이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그 덕에 사람을 대하는 법을 잘 익힐 수 있었고, 돌아오는 친절도 온전히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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