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된 면접 시간이 되어 화면을 켠 순간, 너무 놀라 흰자가 사방으로 다 드러나게 눈을 떴다. 지원자와 면접관 모두 합쳐서 한 12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화면에 보이는 게 아니겠는가.
빈아_다대다 면접이었어???
(빈아의 방.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빈아. 놀란 표정이다.)
당황도 잠시, 빨리 정신을 차리고 면접에 집중했다. 이름과 나이, 성격, 지원 동기 등 간단한 자기소개를 마치고 들어오는 질문들에 차분히 답변을 해나갔다.
빈아_준비를 열심히 하길 잘했어.
(질문에 답변을 하는 빈아.)
그때 유독 나에게만 질문하셨던 분이 계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들어갈 팀의 팀장님이셨다.
(면접관 중 빈아에게만 질문하는 사람 클로즈업.)
후에 들려오는 얘기로는 내가 학교에서 해왔던 활동들이나 알바 경험을 봤을 때, 힘든 일도 잘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서 뽑았다고 했다.
빈아_제대로 알아보셨습니다.
(팀원분들과 얘기를 나누는 빈아. 속으로 생각한다.)
뭐든 해놓길 잘했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했다.
빈아_내가 해온 것들이 어떻게든 나를 돕는구나.
(팀장님이 빈아의 이력서를 보고 있다. 빈아가 했던 활동들에 그때 당시의 빈아의 모습이 띄워진다.)
그렇게 첫 알바를 했던 곳에서 나와 9 to 6 출퇴근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이 그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다.
빈아_곧.... 퇴근이야.....
(벤더 회사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빈아. 힘들어 보인다. 시계를 보며 6시가 되길 기다리고 있다.)
컨버스에서 일한 지 약 7개월이 됐을 무렵이었다. 어느덧 모든 일이 손에 익고 어떤 변수든 바로 처리할 수 있는 노하우가 생겼던 시기, 어쩌면 그 잔잔함을 견디지 못해 다른 걸 해보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던 게 아닌가 싶다. 그때 내 기준에서 패션 전공생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디자인실 피팅 알바와 그 외 직무의 팀원 알바였는데, 원했던 디자인실은 신체 조건 때문에 지원하지 못하고 있었다.
키 작은 사람은 지원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현실에 씁쓸함을 느끼고 있던 어느 날, 의류 벤더(국내외 패션 브랜드에게서 생산을 위탁받아 대신 의류를 제작해 주는 곳) 기업의 해외영업팀 알바 모집 공고가 눈에 들어왔고 곧바로 서류를 만들어 지원했다. 힘들기로 워낙 유명한 곳이어서 일하기도 전에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크긴 했지만, 그곳을 버티고 나면 내가 그 전과는 조금 달라질 것 같았다. 더 사회인에 가까워질 것 같았달까. 그땐 사회가 원하는 틀에 나를 끼워 맞출 시기였으니 말이다. 실제로 패션 업계에서 벤더 기업에서의 경험은 '힘든 걸 잘 버틸 수 있는 사람'을 설명할 수 있는 증거였다. 그렇다 보니 워낙 사람이 빠지고 들어가는 게 일상인 곳이었고, 그래서 지원서를 넣자마자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
면접은 코로나 19로 인해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나름 셔츠에 재킷을 차려입고 노트북 앞에 앉은 나는 미리 준비해 둔 예상 질문과 답변을 훑어보며 초긴장상태로 면접 시간을 기다렸다. 약속된 시간이 되고, 안내받은 곳에 접속했더니 무려 12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화면에 나타나는 게 아닌가. 나는 처음에 그 사람들이 다 면접관인줄 알고 안 그래도 엄청 긴장하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런데 그중 나를 포함한 4명은 지원자였고 나머지가 면접관이었다. 즉, 다대다 면접이었던 것이다. 다대다도, 그렇게 많은 면접관도 예상하지 못했던 나는 당황했던 것도 잠시, 빨리 정신을 차리고 면접에 집중해야만 했다.
면접의 시작은 자기소개였다. 떨리는 목소리가 음성 오류로 들리길 바랄 정도로 엄청 떨면서 말했던 기억이 난다. 이름과 나이, 성격, 지원 동기를 말하고 나니 출퇴근 소요시간, 영어 성적 유무, 엑셀 실력, 힘든 일인데 잘할 수 있는지 등을 물으셨고, 차분히 하나씩,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답변을 해나갔다. 그때 그 많은 면접관들 중 유독 내게만 질문하셨던 분이 계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들어갈 팀의 팀장님이셨다. 팀장님이 나를 직접 뽑았다는 것이 두고두고 뿌듯하고 좋았다. 그곳에 적합한 인재로 인정받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후에 들려오는 얘기로는, 내가 학교에서 해왔던 활동들이나 알바 경험을 봤을 때 힘든 일도 잘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서 뽑았다고 했다. (제대로 알아보셨던 것이다.) 나는 회사까지 지하철로 4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살았고, 영어 성적도 없었고, 엑셀은 어느 정도 했지만 함수를 다룰 정도는 아니었다. 힘든 일은 무조건 잘할 수 있다고 답했을 뿐이다. 그것들이 다 아무렴 괜찮을 만큼 내 경험들이 나를 돋보이게 해주고 있었다. 뭐든 해놓길 잘했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했다. 면접자 중 나만 셔츠에 재킷을 입고 있었던 것도 합격에 영향을 미쳤으려나.
그렇게, 지원서를 넣고 면접을 보고 합격 연락을 받는 것까지 고작 3일이 소요되었고, 나는 첫 알바를 했던 곳에서 나와 9 to 6 출퇴근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이 그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