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아_외국 바이어 상대하는 팀이라 그런가 팀원분들 모두 영어 이름까지 갖고 계시고 담당하는 나라도 다르네? 이것부터 외워놔야겠는걸?
(이전 알바가 적어두고 간 인수인계 내용을 보고 있는 빈아.)
해외 영업팀 알바는 주로 의류 샘플 제작과 관련된 모든 일을 보조하는데, 쉽게 말해 원단이 하나의 옷이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내 손길이 닿았다.
빈아_중량이 200이 나와야 하는데...
(원단 스와치를 잘라 저울로 무게를 측정하고 있는 빈아.)
9 to 6의 출퇴근도, 회사 생활도, 엄청난 업무량도, 감당해야 할 책임의 강도도 모두 내게 낯설게 다가왔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며 사람들 틈이 끼어 있는 빈아.)
그러나 장담컨대, 나는 그곳에서 일하는 내내 행복했다.
(팀원분들과 일하며 웃고 있는 빈아.)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뿐이지 함께 일하는 팀원분들과 알바 친구들이 너무 좋아서 계속 버틸 수 있었다. 나는 그 회사의 정직원이 아니었음에도 한 명의 팀원으로써 소속되어 있는 느낌까지 들 정도로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대했다. 퇴사하는 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을 정도로 5개월이란 시간 동안 사람, 일, 그리고 그 공간에 정이 들었다.
(타 팀 알바 친구들과 쇼룸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최대 6개월까지 일할 수 있는 곳을 한 달 앞서 그만둔 이유는, 일이 힘들어서도 아니고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도 아니었다. 막학기 직전 여름방학을 앞두고 어학 공부를 하며 내 시간을 갖고 싶어서였다.
빈아_퇴사라니, 실감이 안 나…
(퇴사 당일. 빈아가 아쉬워하고 있다.)
그러나 바쁘게 일하다가 갑자기 모든 게 멈춘 상황에 몸이 당황했는지, 나는 거의 두 달 동안 병원을 오가며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부병으로 고생했다.
빈아_이 더위에 갑자기 매일 운동을 하고 땀 흘리는 걸 반복해서 피부가 약해진 것 같은데. 그것보다 공허함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크게 작용한 것 같아. 워커홀릭인가?
(피부과 진료를 받고 나오는 빈아.)
나는 사람들 틈에서 내 몫을 해내며 그걸 인정받고 성취를 느끼며 정도 나누는, 즉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을 해야 행복한 사람임을 그 힘든 여름을 지나고서야 제대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일이 힘듦에도 웃고 있는 과거를 떠올린다.)
업무가 힘든 곳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는 곧 전우애로 똘똘 뭉칠 수밖에 없었고 나는 그걸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그런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더랬다.
빈아_그곳은 나를 위해, 내가 있어야 할 곳이었어.
(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긴 빈아.)
의류 벤더 분야는 알바 모집 공고가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올 정도로 힘들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그 소문이 정말 사실이라는 건 입사 후 일주일만 지나도 알 수 있다. 특히 해외 영업팀은 내가 일했던 곳 기준으로 한 팀당 알바가 1명씩 배치되어 있었는데, 한 3명씩 구성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만한 업무량을 자랑했다.
해외 영업팀 알바는 주로 의류 샘플 제작과 관련된 모든 일을 보조하는데, 쉽게 말해 원단이 하나의 옷이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내 손길이 닿았다. 먼저, 출근 직후 문서 수발실, 택배 보관함 등을 돌며 우리 팀에게 온 물건을 수거하고 전달드린다. 만약 대봉에 원단이 담겨서 오면 원단에 적힌 정보를 확인한 후 팀원분께 공유하고, 그중 일부를 잘라 중량을 재며 스와치를 만든다. 그리고 샘플 제작에 필요한 양만큼 추가로 잘라 팀원분께 전달하고, 그게 공장으로 여러 번 오갈 때마다 픽업 장소로 전달한다. 그때 샘플에 들어가는 상표를 기계를 통해 직접 원단에 입히는 작업도 하고, 무늬가 들어가는 옷이면 원단의 리핏(반복되는 패턴 부분)을 찾아 그 역시 잘라서 샘플을 만든다. 거기에 어떤 컬러가 들어가는지 보고 컬러칩에서 스와치를 잘라 붙이는 작업도 한다. 옷은 매장에 걸려 판매되기 직전까지 샘플이 여러 번 업데이트되는데, 그때마다 샘플 사이즈를 측정하는 것도 내 몫이었고, 각 팀 간의 물건 전달은 물론 그 외 모든 잡무도 담당했다.
처음엔 팀원분들의 성함과 영어 이름, 담당하시는 나라까지 외워야 해서 그것만으로도 정신없었다. 심지어 이전 알바가 직접 인수인계를 해주고 가는 방식도 아니었고, 그분이 종이 몇 장에 적어두고 간 게 전부였기에 도대체 거기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파악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다 해봐야 아는 것. 거기 있는 모두가 내게 친절하고 자세하게 알려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같은 층에 근무하는 다른 팀 알바들이 내 또래여서 편하게 물어보며 업무를 익힐 수 있었다. 일이 낯설어서 그렇지 알고 나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어서 나중엔 척하면 척인 아르바이트생이 되어 거뜬히 자기 몫을 해내는 일원이 되었다. 나중엔 팀장님이 직접 리서치 업무를 주셨는데, 식은땀을 흘리며 긴장하긴 했지만 그 역시 무사히 해냈다(퇴사하는 날 말씀해 주셨는데, 딱 보아하니 이 정도는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하셨다나).
내가 바쁜 걸 좋아하는 편이라 그랬을 수도 있는데, 체력적으로 정말 힘들긴 했지만 함께했던 팀원분들이 너무 좋아서 버틸 수 있었다. 그 회사의 정직원이 아니었음에도 한 명의 팀원으로써 소속되어 있는 느낌까지 들 정도로 나를 진심으로 대해주셨다. 그래서 내가 일을 배우고 익히는 속도 또한 빠를 수밖에 없었고, 그걸 좋게 봐주셨기에 잘할 수 있었다. 퇴사 당일, 양손 무겁게 들고 나왔던 샘플 선물들과 팀원분들의 따뜻한 문자들, 함께 일한 타 팀 알바 친구들의 응원까지, 여러모로 잊지 못할 5개월이었다. 그 감사의 마음을 담아 나오기 며칠 전 샘플들이 이리저리 뒤섞여 있는 케비넷들을 대대적으로 정리했다. 사실 정리하고 싶어서 한 것도 있었는데, 종이를 자르고 풀칠을 하는 작업조차 할 시간이 없는 분들이라 그게 내 몫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알바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루어졌으면 해서 그 내용을 파일로 만들어 전해드렸다(그 파일은 바로 팀원 간 공용 폴더에 저장되었고, 그걸 보고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최대 6개월까지 일할 수 있는 곳을 한 달 앞서 그만둔 이유는, 일이 힘들어서도 아니고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도 아니었다. 막학기 직전 여름방학을 앞두고 어학 공부를 하며 내 시간을 갖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바쁘게 일하다가 갑자기 모든 게 멈춘 상황에 몸이 당황했는지, 나는 거의 두 달 동안 병원을 오가며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부병으로 고생했다. 더운 여름, 갑자기 매일 운동을 하며 땀 흘리고 샤워를 하는 것을 반복해서 피부가 약해진 걸 수도 있는데, 무엇보다 그곳에 대한 그리움에 공허해져서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지 않았나 싶다. 나는 사람들 틈에서, 내 몫을 해내며, 그걸 인정받으며, 성취를 느끼고, 정을 나누는, 즉 내가 필요한 곳에서 일해야 행복한 사람임을 그 힘든 여름을 지나고서야 제대로 깨달을 수 있었다. 업무가 힘든 곳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는 곧 전우애로 똘똘 뭉칠 수밖에 없었고 나는 그걸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그런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