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아 Jun 30. 2023

1,000자 내로 나를 소개하라니

3. 내 인생의 동반자, 성실 _ (4) 믿을 구석

[인스타툰 스크립트]

2023/06/30 업로드


3-(4) 1000자 내로 나를 소개하라니 _ 믿을 구석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

(노트북 화면. '자기소개서'라는 글자 밑에 노래 가사가 쓰여있다.)


'타타타'라는 노래의 첫 소절이다. 대입, 취업 등을 목적으로 자기소개서를 써야 할 때마다 떠올랐던 노래다.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는 빈아. 팔짱을 끼고 있다.)


그런 생각도 잠시, 나는 자소서의 초안을 작성하는 데 큰 어려움 없었다. 오히려 문항별로 약 1000자 안에 나를 다 보여줘야 한다는 것에 실망했을 정도.

(빈아가 쓴 글이 종이에 가득하고, 종이가 둘둘 말리며 글이 넘치는 것을 표현. 빈아가 글을 많이 쓰고 있음을 표현.)


써야 할 내용들을 겨우 정한 다음 그걸 입시 전형의 틀에 어느 정도 맞추면서 나만의 문체를 살려 글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과 함께 불필요한 부분들을 지우고 고치며 글자수를 맞췄다.

(교무실에서 선생님과 나란히 앉아 자소서를 보고 있다.)


'대학은 과연 이 모든 내용을 다 볼까? 이렇게 정성을 다했는데 읽히지도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멈칫하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데에 집중했다.

(전 장면에서 빈아에 포커스. 시무룩한 뒷모습.)


3년 동안 알차게 했던 학교 생활이 생활기록부에 녹아 있었고, 그중에 몇 가지 중요한 활동을 꼽아 자소서에 길게 풀어내면서 나의 노력과 필력에 나름의 자부심도 가졌다.

(교무실을 나오며 마음을 다잡는 빈아. 종이들을 안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천장을 바라본다.)


사실 그것밖에 믿을 게 없었다.

(서류를 잡은 손 클로즈업. 종이들을 꽉 쥔 손이 조금 떨려온다.)


어떤 중요한 시험을 앞둘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최선을 다했다 싶으면 그다음부터는 스스로를 믿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를 토닥이는 빈아.)


그렇게 나를 믿고 나아갔고, 서류 합격 소식이 들려온 학교들에 맞춰 면접 준비에 들어갔다.

(담임 선생님이 '현빈아! 서류 붙었어!' 하며 빈아를 껴안고 있다. 선생님에게 안겨 약간 울먹이는 빈아의 얼굴 클로즈업.)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본격적으로 대입 준비에 들어가면서 담임 선생님과 상담에 들어갔다. 나는 패션전공하고 싶었고, 그중에서도 한복 수업을 하는 대학교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것이 목표였다. 선생님은 수시로 지원할 대학 리스트를 만들어 주셨고, 여러 번의 상담 끝에 최종 6개를 정했다. 내가 가고 싶은 대학은 내 성적에서 상향 지원해야 하는 곳이었는데, 사실 그곳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물론 상대적으로 수능엔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라도 합격하길 간절히 바랐지만, 그 학교에 합격하지 않았다면 다른 대학에 바로 들어갔을지 확답할 수 없다.


 사실 생활기록부에서 내신 점수만 가릴 수 있다면 나는 분명히 상위권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 누구보다 비교과 활동들을 많이 했다. 수시로 가기 위한 전략이었지만 학교에서 하는 프로그램들을 놓치면 불안해졌기 때문에 하나하나 부지런히 챙겼다. 그 대학 생활까지 그대로 이어지면서 그때 열심히 살았던 습관이 어디 가지 않고 체화됐음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했던 활동들은 '패션'이라는 하나의 큰 방향성을 갖고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패션 디자이너라는 꿈을 가졌기 때문에 패션 동아리, 섬유 관련 논문, 미술 프로그램, 디자인 서적 독후감 등 연관성 있는 활동들을 최대한 많이 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대입 수시 지원 때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내가 정말 하루를 한 달처럼 살았음을 다시금 느꼈다. 문항별로 나에 대한 소개와 함께 그걸 뒷받침해 주는 학교 활동들이 들어가야 하다 보니 어떤 활동이 나를 가장 성장시키고 깨달음을 주었는지를 정해야 했는데, 너무 많은 활동을 해서 그중에 무엇을 써야 할지 고르는 게 일이었다.


 수시 지원 일정이 여름방학 이후로 꽉 차있었기 때문에 방학 시간을 활용해 서류를 준비했는데, 수시 합격이 간절했기자소서를 계속 수정하고 들여다보느라 며칠간 공부에 온전히 집중하진 못했다. 초안을 생각보다 빨리 쓰긴 했지만 그 이후 선생님의 첨삭에 따라, 그리고 나의 만족의 한계점에 맞춰 수정하는 과정이 길었다. 원래 문서는 '최종', '최최종', '진짜 최종'이 있는 법이다. 초안을 쓰고 담임 선생님께 첫 첨삭을 받았을 때가 생각난다. 1번 문항에 나를 '그 학생'으로 표현하며 3인칭을 썼는데, 선생님께서 이대로 가보자며 나의 아이디어와 문체를 존중해 주셨더랬다.


 '대학은 과연 이 모든 내용을 다 볼까? 이렇게 정성을 다했는데 읽히지도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작고 소중한 나의 의욕을 잃어버릴 뻔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데에 집중했다. 3년 동안 알차게 했던 학교 생활이 생활기록부에 녹아 있었고, 그중에 몇 가지 중요한 활동을 꼽아 자소서에 길게 풀어내면서 나의 노력과 필력에 나름의 자부심도 가졌다. 사실 그것밖에 믿을 게 없었다. 어떤 중요한 시험을 앞둘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최선을 다했다 싶으면 그다음부터는 스스로를 믿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그렇게 나를 믿고 나아갔고, 서류 합격 소식이 들려온 학교들에 맞춰 면접 준비에 들어갔다.


 어느 날엔가 담임 선생님께서 나를 조심스럽게 복도로 불러내셨는데, 나에게 서류 합격 통지서를 보여주며 두 팔 벌려 안아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때 나보다 더 기뻐해주셨던 선생님의 표정이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물론 결론적으로 다른 학교에 합격했지만 그렇게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 준 분들이 있었기에 원하는 대학에 붙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때 그랬었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